재판부 “범죄혐의 소명·증거인멸 우려 등 없어 구속수사 요건 찾기 어렵다”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사진=뉴시스>

[공공뉴스=김승남 기자] 사법농단 연루 의혹에 휩싸인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의 구속영장이 모두 기각됐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임민성·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7일 각각 박 전 대법관과 고 전 대법관의 구속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영장실질심사를 진행한 두 재판부는 ▲범죄혐의의 소명 ▲증거인멸의 우려 ▲도망의 염려 등 구속수사의 요건을 찾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박 전 대법관의 영장심사를 맡은 임 부장판사는 “범죄 혐의 중 상당 부분에 관해 피의자의 관여 범위 및 그 정도 등 공모관계의 성립에 대해 의문의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임 부장판사는 이미 다수의 관련 증거자료가 수집된 점, 피의자가 수사에 임하는 태도 및 현재까지 수사경과 등에 비춰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점, 피의자의 주거 및 직업, 가족관계 등을 종합 판단해 구속사유나 구속의 필요성 및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고 전 대법관의 심사를 담당한 명 부장판사도 “피의자의 관여 정도 및 행태, 일부 범죄사실에 있어 공모 여부에 대한 소명 정도, 피의자의 주거지 압수수색을 포함해 광범위한 증거수집이 이루어진 점, 현재까지의 수사 진행 경과 등에 비추어 현 단계에서 피의자에 대한 구속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헌정 초유의 구속 수사를 받을 처지에 놓였던 두 전직 대법관은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됐다.

그러나 이들의 구속영장 기각 결정에 검찰은 반발하고 나섰다. 앞서 이번 사건의 공범이자 하급자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구속영장은 발부됐기 때문.

이에 법원은 검찰이 두 전직 대법관과 임 전 차장의 공모관계를 소명했다고 보기에는 부족했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임 전 차장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 ‘윗선’의 부당한 지시를 어쩔 수 없이 따랐다는 취지의 진술은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박 전 대법관이 읍소 전략이 통했다는 분석도 있다.

박 전 대법관은 영장실질심사 당시 ‘어머니가 문에 기대어 서서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는 뜻의 고사성어 ‘기문이망(倚門而望)’을 언급하며 “나도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는 판사님께 달렸다”고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고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으로 사법농단 의혹 정점으로 꼽히는 양승태 전 대법관에 대한 검찰 수사도 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다.

검찰은 두 전직 대법관이 법원행정처장으로서 임 전 차장과 양 전 대법관의 연결고리 역할을 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한편, 박 전 대법관은 이날 새벽 1시께 구치소 정문을 나오면서 소감을 묻는 취재진에게 “재판부 판단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이어 고 전 대법관도 취재진에게 “추위에 고생이 많으시다”라고 짧게 말한 뒤 대기하고 있던 차량을 타고 귀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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