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재권 부장판사 “범죄사실 상당부분 소명, 증거인멸 우려”

[공공뉴스=김승남 기자] 사법행정권을 남용하고 일선 재판에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를 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됐다.

양 전 대법원장은 전·현직을 통틀어 헌정 사상 처음으로 검찰에 피의자로 소환된 데 이어 구치소에 구속 수감되는 사법부 수장으로 기록됐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대기장소인 서울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서울중앙지법 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4일 오전 1시58분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청구된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명 부장판사는 전날 오전 10시30분부터 5시간30분 동안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한 뒤 “범죄사실 중 상당 부분 혐의가 소명되고 사안이 중대하다”고 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다.

또한 “현재까지의 수사진행 경과와 피의자의 지위 및 중요 관련자들과의 관계 등에 비춰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서울구치소에서 대기 중인 양 전 대법원장을 상대로 곧바로 영장을 집행해 수감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2011년 9월부터 6년간 대법원장으로 일하면서 구속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등에게 ‘재판거래’ 등 반헌법적 구상을 보고받고 승인하거나 직접 지시를 내린 혐의를 받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 민사소송과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댓글사건 ‘재판거래’ ▲옛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확인 소송 개입 ▲헌법재판소 내부정보 불법수집 ▲법관 사찰 및 ‘사법부 블랙리스트’ ▲공보관실 운영비로 비자금 3억5000만원 조성 등 사법 행정권 남용 혐의로 제기된 대부분 의혹에 연루됐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일본 전범기업을 대리한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에게 심리계획을 누설하는 등 핵심 의혹인 징용소송 ‘재판거래’ 과정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사법부 블랙리스트’ 문건에서도 인사 불이익을 줄 판사의 이름 옆에 ‘V’자 표시를 하는 등 상당수 혐의에서 단순히 계획을 보고받는 수준을 넘어 직접 개입한 정황을 포착했다.

이에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에게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직무유기,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위계공무집행방해, 공무상비밀누설,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 등 40개가 넘는 개별 범죄 혐의를 적용해 지난 18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아울러 양 전 대법원장과 같은 날 영장심사를 받은 박병대 전 대법관은 구속을 피했다. 서울중앙지법 허경호 영장전담부장판사는 “종전 영장청구 기각 후의 수사내용까지 고려하더라도 주요 범죄혐의에 대한 소명이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고 추가된 피의사실 일부는 범죄 성립 여부에 의문이 있다”고 밝혔다.

박 전 대법관은 2014년 2월부터 2년간 법원행정처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청와대·외교부와 징용소송 ‘재판거래’에 가담하고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과 옛 통진당 관련 행정소송에 개입한 혐의를 받는다. 재임 기간 법원행정처가 만든 ‘사법부 블랙리스트’에 관여했다는 의심도 받고 있다.

박 전 대법관의 구속영장은 이미 지난달 초 한 차례 기각된 바 있다. 검찰은 박 전 대법관이 고교 후배인 사업가 이모씨의 탈세 혐의 재판 관련 정보를 10여 차례 무단으로 열람한 정황을 확인하고 두 번째 구속영장에 형사사법절차전자화촉진법 위반 혐의를 추가했다.

그러나 박 전 대법관에 대한 두 번째 구속 시도도 실패로 돌아갔다.

검찰은 10일간 양 전 대법원장을 구속 수사할 수 있고 이 기한은 한차례 연장이 가능하다. 늦어도 20일 이내에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보강수사를 마무리하고 양 전 대법원장을 기소할 예정이다.

한편, 법원이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한 가운데 양 전 대법원장을 구속시킨 명 부장판사에 대한 이목이 쏠리고 있다.

지난해 9월 서울중앙지법 영장 업무에 새로 합류한 명 부장판사는 양 전 대법원장보다 25년 후배다.

그는 사법연수원 수료 뒤 검사로 재직하다 2009년 판사 생활을 시작해 주로 일선 법원에서 재판 업무를 맡았다. 영장 전담을 맡기 전엔 중앙지법에서 형사2단독 재판부를 역임했다.

명 부장판사는 검찰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 여파로 중앙지법 영장전담 법관이 부족한 상황에서 구원투수 격으로 영장 업무에 투입됐다.

명 부장판사가 영장 전담 업무에 투입된 시기는 법원이 ‘사법농단’ 관련 영장을 줄줄이 기각해 검찰과 외부로부터 ‘제 식구 감싸기’란 비판이 한창일 때였다.

일각에서는 ‘검찰 출신’ 명 부장판사를 영장 업무에 투입한 건 그의 이력을 내세워 여론 비판을 누그러뜨리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검찰 출신인 만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핵심 인사들과 인연이 적은 것도 영장 업무를 맡기는 데 고려요소였을 것이란 분석도 있었다.

실제 명 부장판사는 영장 업무를 맡은 이후 양 전 대법원장의 차량과 고영한·박병대·차한성 전 대법관의 주거지,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했다. 이는 사법 농단 의혹의 핵심 인사들에 대한 첫 영장 발부였다.

특히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일은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법원 안팎에서 우세했으나 명 부장판사는 양 전 대법원장의 범죄사실 상당 부분이 소명되고 사안이 중대하며 지위를 봤을 때 증거인멸 우려가 높다는 이유로 구속 영장을 발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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