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기증:고귀한 생명 나눔의 실천→유가족 등 예우 및 지원 강화로 참여 확산

[공공뉴스=김승남 기자] # 장기이식을 기다리고 있는 A씨는 이식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간 게 다섯 번째다. 이번엔 왠지 느낌이 더 좋은 만큼 기대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자신보다 더 필요로 하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에게 기회가 돌아가도 원망은 없었다. A씨 또한 고통스러웠지만 아직 어린 나이 혹은 간절한 이가 더 많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 A씨는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다는 것을 몇 차례 경험해 왔던 터라 이번 병원 연락에 기대는 하고 있었지만, 과거보다 마음을 많이 내려 놓은 상태였다. 이후 조직 적합성 검사를 진행했고, A씨는 최종 적합 대상자로 판명이 났다. 이 같은 소식을 들은 A씨는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확실히 아프고 나니 건강한 것처럼 행복한 일은 없는 것 같다고 깨달았다고. ‘제2의 인생’을 살게 됐다는 기쁨에 A씨는 새로운 삶의 목표도 생겼다. 자신 역시 장기 기증자가 되는 것이 바로 그것. 또 A씨는 작은 욕심이지만 다른 이들도 기증에 동참해서 고통받는 이들을 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故 박용관씨. <사진제공=한국장기조직기증원>

장기를 기증하는 것은 이타적인 일로서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 자신에게 적합한 장기를 이식 받기 위해 기다리면서 병마와 싸우고 있는 환자들은 전 세계에 걸쳐 현재 수백만에 달한다.

하지만 장기기증이 쉬운 일이 아닌 만큼 장기를 기증할 의사가 있더라도 실제 기증까지 잘 이어지지 않는 실정. 때문에 장기기중에 대해 기증한 가족들, 기증자 스스로도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사회적 분위기가 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 장기기증으로 새 생명 주고 하늘나라로

최근 행인에게 폭행당해 뇌사에 빠진 군인이 장기기증으로 5명의 환자를 살린 후 짧은 생을 마감했다.

29일 유족 등에 따르면, 고(故) 박용관 상병은 휴가 중이던 지난 12일 새벽 김해 시내 한 도로에서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다가 행인 A씨로부터 뺨을 맞았다.

박 상병은 폭행 직후 바닥에 머리를 부딪쳐 뇌사 상태에 빠졌다.

A씨는 박 상병 일행이 시끄럽게 떠들어 때렸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상병은 이후 한 대학병원에서 2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회복하지 못했고 21일 사망 판정을 받았다.

박 상병 유족은 고심 끝에 그의 심장·폐·간·췌장·좌우 신장을 장기기증하기로 결정했다. 기증 장기는 사망 판정 당일 환자 5명에게 무사히 이식됐다.

박 상병 아버지는 “힘든 선택이었지만 평소 정이 많은 아들의 생각도 가족의 뜻과 같을 거라고 생각했다”며 장기기증을 결정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유도 선수 출신에다가 태권도 3단인 아들이 이렇게 사망할 정도의 체력이나 체격이 아니다”며 “군인이라는 신분 때문에 단 한 번의 저항도 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박 상병 유족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려 군인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적 제도를 마련해달라고 촉구했다.

이처럼 뇌사에 빠진 군인이 장기기증으로 5명의 환자를 살리고 하늘나라로 떠난 가운데 올해도 어김없이 전국 곳곳에서 장기기증에 대한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앞서 7일에는 전북대학교병원에서 장기이식을 기다리며 투병해오던 한 여성이 타인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장기를 기증하고 영면했다.

전북대병원 장기이식센터에 따르면, 뇌출혈로 쓰러진 30대 여성 환자 육모씨가 입원 치료를 받았으나 뇌사 상태에 빠지자 환자 1명에게 자신의 폐를 기증했다.

육씨는 말기 신장질환으로 4년 전부터 혈액투석을 받으며 장기이식에 유일한 희망을 걸어오다 지난해 12월27일 뇌출혈로 쓰러졌다. 이에 병원 중환자실에서 집중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5일 뇌사판정을 받았다.

유족은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장기기증을 결심했으며 전북대병원에서는 가족들의 뜻에 따라 사경을 헤매던 환자에게 육씨의 폐를 이식했다.

육씨의 가족은 “가족들 모두 장기이식을 오랫동안 기다려왔기에 환자들의 심정을 잘 안다”면서 “심성이 착하고 남을 도와주길 좋아했던 고인도 장기기증으로 다른 환자가 새 생명을 얻게 됐다는 소식에 누구보다 기뻐할 것”이라고 했다.

유희철 전북대병원 장기이식센터장은 “슬픔을 딛고 중환자를 위해 어렵고 숭고한 결정을 내려주신 유가족에게 고개 숙여 깊은 감사를 표한다”며 “장기를 기증받은 환자도 조속히 쾌유해 고인과 유족의 뜻을 받들어 건강한 생활을 누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16년 전 장기기증으로 4명의 생명을 살렸던 고(故) 안병순씨의 동생 안병연씨가 누나의 뜻을 이어 장기기증에 나섰다.

안씨는 2002년 7월 교통사고를 당한 뒤 장기를 기증한 병순씨의 남동생이다. 당시 안씨는 “누나가 평소 장기기증을 하고 싶다고 했다”며 뇌사 판정을 받은 병순씨의 신장과 각막을 기증하도록 했다. 그의 선택으로 4명의 생명이 살았다.

이후 안씨도 누나의 선행에 뒤이어 순수 신장기증자로 나섰다. 순수 기증이란 가족이 아닌 타인에게 장기를 기증하는 것을 뜻한다.

안씨는 “누나처럼 세상을 떠나며 장기기증을 통해 생명을 살릴 수도 있지만 보다 앞서 생명을 나누고 싶다”며 “나이가 더 들면 신장을 기증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지금 이렇게 건강히 살아서 신장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안씨의 신장은 17년 동안 만성신부전증을 앓아온 장모씨에게 이식된다. 장씨는 “새해에 가장 큰 복을 받게 됐다”며 “가장 소중한 선물을 전해준 기증인에게 평생 감사한 마음을 갖고 살아가겠다”고 감사를 전했다.

지난해 9월14일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앞에서 열린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서울시의회 장기기증 희망 등록식에서 참가자들이 장기기증 희망 스티커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국민 70% “장기·인체조직기증 의사”..서약률 2.6% 불과

장기나 인체조직을 기증할 뜻이 있는 국민이 10명 중 7명에 달한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질병관리본부는 장기·인체조직 기증에 대한 국민의 인식 변화를 알아보기 위해 지난해 12월26일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18 장기·조직기증 인식조사’ 설문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장기·인체조직 기증 의향이 있다고 말한 응답자는 66.5%(665명)에 달했다.

기증 의향이 없는 응답자들은 ▲신체 훼손에 대한 거부감(33%) ▲막연히 두려워서(30.4%) ▲절차 이외의 정보가 부족해서(16.5%) ▲주변에서 실제 사례를 접한 적이 없어서(11.7%) 등을 거부 의사의 이유로 꼽았다.

장기기증에 대해서는 97.5%가 ‘들어본 적이 있거나 어느 정도 혹은 잘 알고 있다’고 답해 인지도가 높았지만, 인체조직기증 인지도는 45.7%로 절반에 못 미쳤다.

우리나라는 현재 약 3만명 이상의 환자가 장기이식을 받고자 대기하고 있으나 뇌사 장기기증은 인구 100만명당 9.95명에 불과해 스페인 46.9명, 미국 31.96명, 이탈리아 28.2명 등 해외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부족한 상황이다.

우리나라 국민의 장기·인체조직 기증에 관한 인식은 꾸준히 바뀌고 있지만 실제 기증희망등록 서약률은 전체 국민의 약 2.6% 수준에 그치고 있다.

아울러 뇌사 장기기증자 수도 계속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에 따르면, 뇌사 판정 후 가족 동의로 장기를 기증한 사람은 2016년 573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2017년 515명, 2018일 12월4일 현재 428명이다.

뼈, 연골, 인대 등 인체조직 기증자도 2016년 285명에서 2017년 128명, 2018년 현재 105명으로 2년 연속 감소세다.

실제 우리나라의 장기기증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에서 시행한 71개 병원 사망자의무기록조사(MRR)에 따르면, 2017년 중환자실 전체 사망자 9천928명 가운데 17.6%는 뇌사자로 추정됐다. 하지만 이 중 15.3%인 268명만이 최종적으로 장기를 기증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본인이 기증희망등록을 미리 했더라도 가족 1명이 동의를 해야 기증이 실제로 이뤄진다. 하지만 가족 중에 반대자가 나오면 기증 실현율이 크게 떨어진다.

특히 가족의 기증거부율은 2016년 46%에서 2017년 56%, 2018년 60%로 점점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와 인구가 비슷한 스페인의 경우 1990년대에는 기증거부율이 27∼28% 수준이었지만 최근 15%로 낮아졌다.

기증자가 감소하면 이식 대기자의 사망은 많아진다. 이식 대기기간 사망자는 2015년 하루 3.3명에서 2016년 3.6명, 2017년 4.4명으로 늘어났다.

이처럼 기증자가 감소하는 원인으로는 뇌사관리에 필요한 의료현장의 인력 부족, 기증자 예우에 대한 논란 등이 거론된다.

이와 함께 기증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는 드라마 등 미디어 콘텐츠가 많아진 것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조원현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원장은 “뇌사추정자 발생 시 가족들이 기증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지 않도록 인식을 개선하는 노력이 중요하다”며 “기증은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소중한 일이라는 인식이 확산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장기구득 코디네이터의 역량을 강화해 기증동의율을 높여나가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12일 서울 연세대학교 유일한 홀에서 열린 ‘생명나눔 주간 선포식 및 KODA(한국장기조직기증원) 글로벌 포럼’에서 참석자들이 생명나눔 주간 선포를 하고 있다. 생명나눔 주간은 장기 등 기증자의 이웃사랑과 희생정신을 기리고, 생명나눔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매년 9월 중 두 번째 월요일부터 일주일로 지정됐다. <사진=뉴시스>

# 9년간 서울 장기기증자 4400명..기증자 연령 20·30대 ↑

한편, 서울시 내 장기기증자는 최근 9년간(2010~2018년) 4400명으로 한 해 평균 490명 수준인 것으로 집계됐다.

서울연구원이 지난해 12월24일 발표한 서울인포그래픽스 제 276호에 따르면, 서울의 장기기증자는 최근 9년간 4400명으로 한해 평균 490명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증자 연령은 20·30대가 46.3%로 절반 가량을 차지했다. 성별은 남성이 57.5%로 여성 (42.5%)보다 높았다. 남성은 20대가 30.5%, 여성은 40대가 28.5%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많았다.

장기기증을 희망하는 서울시민은 37만명으로 이 중 15만명이 운전면허증에 표기를 신청했다. 인체조직은 10만명이, 골수는 9만 명이 기증을 희망하고 있다.

지난 9년간 한 해 평균 763명이 장기이식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9년간 장기이식은 6958건, 이식 받은 사람은 6865명으로 이식자(수해자) 연령은 50대가 33.4%로 가장 많았다. 성별은 남성이 63.3%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식된 장기는 신장 3312건, 간장 2475건, 안구 613건 순으로 조사됐다. 장기이식 대기자는 50·60대가 절반 이상을 기록했다.

2017년 1월부터 2018년 10월까지 2년 동안 1862명이 장기이식을 희망하며 기다리고 있다.

대기자 1862명 중 연령대는 50·60대가 61.3%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성별은 남성이 66.2%로 과반수를 점유하고 있다. 장기는 신장 대기자가 1300명으로 가장 많다.

국내 장기기증 거부율이 최근 몇 년 새 급증한 이유로 뇌사자 관리에 필요한 의료현장 인력 부족과 기증 후 기증자와 유가족에 대한 예우 소홀 등의 문제를 꼽히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장기이식법 개정을 통해 장기기증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재 뇌사자에게만 한정된 장기기증을 심정지 환자에게서도 이뤄질 수 있게끔 하고 기증자 본인의 의사를 가장 먼저 존중해 기증 문화가 안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

또 뇌사 관리에 필요한 의료현장 인력을 충원하고 정부차원에서 기증자 예우에 대해 더 관심을 기울여 장기기증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해소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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