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때리기대회:정신이 병들어가는 사회의 단면→낭비 아닌 나를 위한 힐링의 시간

[공공뉴스=김소영 기자] # 직장 생활 2년 차인 A씨는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뇌가 쉴 틈이 없다. 직장 상사의 지시를 따라가기 바쁜 것은 물론, 출·퇴근을 하거나 쉬는 시간에는 끊임없이 스마트폰을 만지면서 뇌를 계속 자극하기 때문. 많은 사람들과 스마트폰 너머로 관계를 맺고 정보를 주고받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A씨는 문득 주위 상황과 자신을 분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실제로 어떨 때는 현실이 버거워서 혼자만의 상상으로 도피하기도 했고, 분노가 차오를 때면 상상으로나마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 그러다 얼마 전 A씨는 힘든 하루를 마치고 평소처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하다 서울에서 열리게 될 멍때리기 대회 공고를 보고 관심이 생겼다. 몇년 전 멍때리기 대회라는 생소한 이벤트가 생겼을 당시 A씨는 쓸데없는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컸지만, 이제는 참가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 것. 하루 종일 혹사당한 내 뇌에 미안한 생각이 들면서 일분일초를 쪼개며 바쁘게 살아가는 숨 가쁜 일상에 잠시나마 휴식을 취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2019 한강 멍때리기 대회 포스터. <사진제공=서울시>
2019 한강 멍때리기 대회 포스터. <사진제공=서울시>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충격적인 사건, 사고의 홍수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우리 뇌는 외부의 자극을 처리하기 위해 끊임없이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오롯이 자신만을 위해 활동하는 시간과 휴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제대로 휴식할 시간을 잃은 현대인들은 제대로 쉬는 법 또한 잊었다. 특히 자기 전 침대에서까지도 스마트폰을 붙잡고 뇌를 쉬게 놔두지 않는다. 휴식 없이 돌아가는 기계가 오래 가지 못하고 망가지듯 쉬지 못하는 뇌는 결국 탈진해버릴 것이다.

이에 대한민국은 ‘치유’와 ‘힐링’ 열풍이 한창이다. 개인의 행복 추구와 삶의 질 향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바쁜 일상으로 지친 몸과 마음의 피로를 풀기 위해 휴식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 뇌의 휴식을 주는 ‘특별한’ 시간, 서울시 2019 한강 멍때리기 대회

일상에 찌든 삶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멍때리기 대회’가 올해도 어김없이 열린다. ‘멍때리기 대회’ 개최 소식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회는 문명의 이기로 혹사당하는 현대인의 뇌에 휴식을 주자는 취지로 ‘가치 없는 멍때리기’에 목적을 두고 있다.

7일 서울시 한강사업본부에 따르면, 오는 4월21일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잠원한강공원 센터 앞 녹지에서 ‘2019 한강 멍때리기 대회’를 개최한다.

서울시 한강사업본부는 멍때리기 대회 창시자인 웁쓰양과 협업해 한강 멍때리기 대회를 개최해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가치 있는 행위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멍때리기를 가장 잘 한 사람에게 상을 주는 현대미술작품이다.

대회는 아티스트 웁쓰양이 진행하는 개회 퍼포먼스를 감상한 후 기체조로 간단하게 몸을 풀고 나면 본격 시작된다.

참가 방법은 간단하다. 90분 동안 어떤 행동도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멍한 상태를 유지하면 된다. 하지만 승부를 가려야 하는 대회인 만큼, 멍때리기만의 특별한 평가 기준이 적용된다.

우승자는 심박수와 현장 시민투표를 합산해 1·2·3 등을 선정하는데 공정하고 철저한 평가를 위해 주최 측은 15분마다 참가자들의 심박수를 측정헤 심박 그래프를 작성하고 이와 동시에 현장에서 시민들이 대회 전 과정을 관람하고 투표로 참여한다. 심박그래프는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거나 점진적으로 하향곡선을 나타내는 그래프를 우수한 그래프로 평가한다.

대회 진행 중에 선수들은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대신 의사를 표시할 수 있는 여러 카드를 사용해 불편 또는 요청사항을 전한다. ▲빨간카드(졸릴 때 마사지 서비스) ▲파랑카드(목마를 때 물 서비스) ▲노랑카드(더우면 부채질 서비스) ▲검정카드(기타불편사항) 등으로 의사표현을 하면 진행요원이 해당 서비스를 제공한다. 멍때리기에 실패할 경우 ‘빨간 카드’를 받고 경기장 밖으로 끌려 나간다.

수상자는 한강과 어울리는 특별한 상장을 받게 되며 참가선수 전원에게는 ‘2019 한강 멍때리기 대회’ 참가인증서를 수여할 예정이다.

아울러 시민들이 현장에서 자유롭게 쉬며 즐길 수 있는 ‘멍랑운동회’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진행한다.

멍랑운동회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들을 열심히 하며 즐거움을 얻는 행사다. 복잡하게 묶인 넥타이를 시간 안에 가장 빠르게 풀어야 하는 ‘내타이 언타이’, 털실로 청와대 기와를 떠서 전시하는 ‘베틀 그라운드’, 페디큐어를 받고 가장 멀리 발톱을 깎아 보내는 ‘발톱 깎기 대회’,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관람하며 뽁뽁이를 터트리는 영화관인 ‘멍화관’, 흑돌 백돌의 숨막히는 대결 ‘알때리기’, 미세먼지를 타파할 수 있는 예쁜 마스크를 만들어보는 ‘미세한 염색’ 등이 준비됐다.

부대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은 기념 스탬프를 찍어서 모을 수 있다. 6개의 프로그램 중 5개의 참가 스탬프를 모은 경우 또는 우승자를 겨루는 행사에 참여해 일등을 할 경우 소정의 상품을 증정한다.

이와 함께 오후 1시부터 2시까지 여행분야 1위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에서 이전 한강대회에 참여했던 우키(앱티스트, 백욱희)를 게스트로 초대해 멍때리기 좋은 장소와 여행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방송을 진행한다. 멍때리기 대회에 참가하지 못한 시민들도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매번 도전하고 실패를 거듭하지만 또다시 신청하게 된다는 매력적인 무용(無用)의 축제 ‘2019 한강 멍때리기 대회’는 총 80팀을 모집하며 1팀당 최대 3명이 함께 참여할 수 있다. 선발자 중 당일 결원이 생기는 경우 현장 추첨으로 충원할 계획이다.

신청기간은 오는 12일 0시까지다. 접수는 멍때리기 대회 홈페이지·인스타그램·페이스북로 하면 된다. 최종 선발자는 15일 오전 11시 한강사업본부 홈페이지 새소식란에 발표하며 선발자에게 개별통보한다.

2019 한강 멍때리기 대회 운영 당일 비가오거나 미세먼지·초미세먼지·황사 주의보 및 경보 발령 시 행사는 일주일 연기돼 28일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같은 시간대에 진행할 예정이다.

박기용 서울시 한강사업본부 총무부장은 “시민들에게 바쁜 일상 속에서 특별한 쉼을 주는 멍때리기 대회를 추천한다”며 “앞으로도 한강공원을 다양한 문화와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이색 공간으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색적인 ‘멍때리기 대회’는 2014년에 처음으로 시작됐다. 특히 한 초등학교 학생이 초대 우승자로 선정되면서 이목을 끌었다.

당시 치열한 경쟁 끝에 초등학교 2학년 김모(9)양이 우승자로 선정됐다. 김양은 멍때리기 비결에 대해 “아무생각 안하는 것”이라며 “앞으로도 열심히 멍 때리겠다”고 우승 소감을 전해 웃음을 자아냈다.

가수 크러쉬도 2016년도 대회에 참가하면서 ‘멍때리기 대회’는 더욱더 이름을 알렸고 매년 꾸준히 진행되는 이색적인 대회로 자리잡았다.

지난해 5월27일 서울 성동구 서울숲에서 열린 유한킴벌리, ‘우푸푸 숲속 꿀잠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잠을 자고 있다. 이번 대회는 취업과 학업, 아르바이트 등으로 잠 잘 시간마저 쪼개는 청춘들을 위로하고 잠을 통해 여유를 가져보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사진=뉴시스>
지난해 5월27일 서울 성동구 서울숲에서 열린 유한킴벌리, ‘우푸푸 숲속 꿀잠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잠을 자고 있다. 이번 대회는 취업과 학업, 아르바이트 등으로 잠 잘 시간마저 쪼개는 청춘들을 위로하고 잠을 통해 여유를 가져보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사진=뉴시스>

# 한국 웰빙지수 23개국 중 ‘꼴찌’..스트레스지수는 ‘최고’

어떻게 보면 우습고 장난스러운 이 대회는 한국인의 ‘휴식 부족’ 문제와 맞닿아 있다. 현대인들에게는 뇌를 쉬게 하는 멍 때림의 시간은 사치다.

정신없이 바쁜 일상에서 학업, 취업, 업무, 복잡한 인간관계를 안고 사는 현대인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란 간단치 않다. 때문에 멍때리기 대회는 매년 폭발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현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며 씁쓸해하는 의견도 더러 눈에 띈다. 대회 자체의 취지는 특이하고 흥미롭지만 다들 얼마나 정신없이 살면 멍때리기 대회에 많은 관심이 쏠리는지 씁쓸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건강과 삶의 질에 대한 우리나라 국민의 인식이 23개국 중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지난달 27일 상하이저널은 미국 시그나 보험 그룹이 최근 발표한 ‘2019년 306° 웰빙지수 조사’에서 한국이 설문조사 참여 23개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전세계 평균 웰빙지수는 지난해 61.2점에서 소폭 상승한 62점으로 조사됐다.

올해로 다섯 번째 발표된 시그나 306° 웰빙지수는 주요 23개 국가 및 지역을 대상으로 신체건강, 사회관계, 가족, 재정상황, 직장 등 5개 부문 설문을 토대로 산출됐다.

점수가 가장 낮은 국가 및 지역으로는 한국이 100점 만점 중 53.2점으로 2015년을 제외하고 꼴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어 타이완(55.3), 터키(56.8), 홍콩(57.7), 싱가포르(57.8)가 최하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반면 중국의 웰빙지수는 64.4점으로 전체 5위에 올랐다. 태국(62.5)과 인도네시아(65.4)도 각각 4위, 8위에 안착했다.

특히 스트레스지수만 놓고 보면 한국과 타이완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두 국가의 스트레스 지수는 각각 97%, 96%로 전세계 평균 84%를 크게 웃돌았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홍콩 91%, 싱가포르 91%, 태국 91%, 중국 86%, 인도네시아 77%로 집계됐다.

일이나 돈 문제, 가족 관계 등 다양한 문제들로 해마다 한국인의 스트레스가 높아지고 있는 실정. 한국인이 일과 삶의 균형에서 일 쪽에 치우친 삶을 살며 ‘휴식’을 놓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직장인들 사이에서 ‘일 싫은 것은 버텨도, 사람 싫은 것은 못 버틴다’라는 말이 있다. 최근에는 직장 내 세대 갈등도 이슈가 되면서 조직 분위기와 업무 효율성 쇄신을 위해 세대 간의 통합과 화합이 인사의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최근 사람인이 직장인 379명을 대상으로 ‘일과 직장 내 인간관계’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직장인 81%는 일과 사람 중 퇴사에 더 영향을 미치는 것을 ‘사람’이라고 답했다. ‘업무 관련 스트레스’(28.2%)보다 ‘인간관계 스트레스’(71.8%)가 훨씬 심하다고 호소했다.

직장 내 인간관계 갈등이 원인이 돼 실제로 퇴사나 이직을 한 경험자는 절반 이상인 54.4%였다. 업무성과에 미치는 영향도 평균 66%로 집계돼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또한 직장 내 인간관계가 어렵다고 느끼는 비율은 62%였으며 주로 ‘선배(상사)와의 갈등’(79.1%)이 ‘후배(부하직원)와의 갈등(20.9%)’보다 4배 가까이 많았다.

직장인들이 선배(상사)와 갈등을 겪는 이유 1위로는 ‘업무 분장 등에서 자기에게만 유리한 비합리적인 결정이 잦음’(44%, 복수응답)이 차지했다. 다음으로 ‘자기 경험만을 내세우는 권위적인 태도’(40.4%), ‘업무를 나에게 미룸’(37.6%), ‘사적인 일 부탁, 잔심부름 등 지위를 이용한 갑질’(28.1%), ‘인격모독 발언 빈번’(19.9%), ‘업무 성과를 가로챔’(15.9%) 등의 이유가 있었다.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으로는 ‘가급적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피한다’(59.6%, 복수응답)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계속해서 ‘혼자 속으로만 참는다’(42.2%), ‘이직이나 퇴사를 준비한다’(35.5%) 등으로 자신들 보다 높은 지위에 있기 때문에 주로 소극적인 대응이 주를 이뤘다.

선배(상사)와의 갈등은 ‘스트레스 증가’(80.7%, 복수응답)는 물론, ‘퇴사 및 이직 결심’(53.5%), ‘업무 동기부여 약화’(48.9%), ‘애사심 저하’(45%), ‘업무 집중력 저하’(42.2%) 등으로까지 이어져 회사에도 영향을 주고 있었다.

후배(부하직원)와의 관계 갈등을 겪는 이들은 가장 큰 이유로 ‘업무 완성도 부족으로 일을 떠안게 됨’(45.3%, 복수응답)을 꼽았다. 이어 ‘시키는 업무만 하는 등 적극성 부족’(36.3%), ‘철저한 개인주의 성향으로 팀 내 화합이 어려움’(30.3%) 순이었다.

정신건강의 날인 지난해 10월10일 대구 중구 동성로 일대에서 열린 ‘2018 대구 정신건강 축제’에서 한 시민이 자기보고식 심리검사 및 생체신호 측정 체험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신건강의 날인 지난해 10월10일 대구 중구 동성로 일대에서 열린 ‘2018 대구 정신건강 축제’에서 한 시민이 자기보고식 심리검사 및 생체신호 측정 체험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삶의 쉼표, 생각을 멈추고 휴식을 통한 삶의 질 높이기

세계 최고의 자살율과 이혼율, 저출산율,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행복지수. 고단하고 버거운 삶, 바로 현대인들의 실상이다.

우리의 일상은 생각을 버리고 있기가 쉽지 않다. 특히 스마트폰 공화국에서 사는 현대인의 뇌는 하루 종일 바쁘다.

주어진 짧은 틈새 시간은 스마트폰으로 채워진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도, 길거리를 가다가도, 심지어 집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동안에도 스마트폰을 끊임없이 만진다.

끊임없는 피로와 압박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정작 본인은 돌아보지 못한다. 늘 무언가를 생각하느라 바쁘고 시간에 쫓기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휴식은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다. 

특히 끊임없이 뇌를 통해 무언가를 하기 바쁜 현대인들에게 잠깐씩의 멍때리기는 뇌가 스스로 휴식을 취하며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다.

멍한 상태는 뇌에 휴식을 주고 자기의식을 다듬는 활동을 하는 기회가 되며 평소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영감이나 문제 해결 능력도 갖게 된다.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가 힘든 세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복잡하고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한 템포 쉬어가는 멍때리기는 더욱 필요한 순간이 아닐까.

급하고 치열할수록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자신에게 휴식의 시간을 허락하자.

저작권자 © 공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