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직무 순직:사건사고 현장서 무방비로 노출된 공무원→예우 확대로 희생의 넋 기린다

[공공뉴스=김소영 기자] # 요근래 고등학생 A군은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눈에 보이는 직업 중에서 마음에 들거나 멋있다고 생각하면 막연히 그 직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고 싶다’는 의지만으로 직업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는 것이 현실. 때문에 앞으로 대학 전공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는 A군의 부담감과 압박감도 커져만 갔다. 그러던 중 지난달 발생한 사건이 A군의 진로 선택에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여느 때와 똑같은 학교생활을 보내고 있는 가운데 5교시 수업 중 느닷없이 ‘펑’하는 소리가 들렸고 이후 화재경보기가 울리자 전교생들은 운동장으로 긴급 대피했다. 불이 크지 않아 다행히 교실이 있는 학교 본관쪽으로는 번지지 않았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던 A군은 문득 무엇인가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소화기를 다루는 법조차 모를뿐더러 무조건 불이나면 119를 부르는 습관이 있다. 물론 이 방법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출동하는 데에도 어느정도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충분히 진압할 수 있는 불이라면 자신이 처리하는 게 더 빠르다고 생각했다. 또 남들에게 도움을 주는 직업이 직무에 대한 성취감도 더 클 것 같다고 생각한 A군은 부모님께 소방관이 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그러나 A군의 부모님은 소방관들의 근무 환경이 너무나 열악하다며 반대했다. 이에 A군은 위험이 보장된 만큼 복지도 잘 챙겨주고 있다면서 부모님을 설득했으나 집안 분위기만 냉랭해질 뿐이었다. 국민들은 무슨 일이 생길 경우 119나 112를 누르기 마련이다. 국민안전과 재산보호를 위해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숭고한 희생을 하고 있는,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는 현장직 공무원들의 안전과 복지가 더욱 향상될 수 있도록 A군은 바랐다.

지난해 5월3일 故 강연희 소방경의 영결식이 열린 전북 익산소방서에서 동료 소방관들이 헌화하며 마지막을 함께 하고 있다. 故 강 소방경은 취객을 구조하던 중 폭행 당한 후 스트레스를 호소하다 뇌출혈로 쓰러져 치료를 받던 중 숨졌다. <사진=뉴시스>

언제 어디서든 발생하는 사건사고. 그 순간엔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최일선에서 근무하는 현장공무원에게 위험은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소방직과 경찰직 공무원은 국민의 안전과 직결돼 있는 만큼 이들의 정당한 업무를 방해하고 위해하는 사람들에게는 강력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 특히 공무상 재해에 대해 국가의 책임을 강화해 현장공무원들이 안심하고 직무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지속적으로 조성할 필요성이 있다.

# 취객에 폭행당해 숨진 故 강연희 소방경 ‘위험직무순직’ 인정

구급 활동 중 취객으로부터 폭언과 폭행을 당한 뒤 숨진 고(故) 강연희 소방경이 위험직무순직을 인정받았다.

1일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공무원재해보상심의회의를 열어 강 소방경의 위험직무순직 유족보상금 청구 건을 승인했다.

인사혁신처는 당초 지난 2월15일 강 소방경의 순직이 공무원 재해보상법에서 정한 요건에 충족하지 않다면서 부결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에 유족들은 “취객 폭행 이후 강 소방경이 고통을 호소하다 사망했는데 이같은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했다.

이와 함께 동료 소방관들도 강력 반발했다. 구급대원의 직무가 위험하지 않다고 본데다 심사 과정에서 현장 전문가가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들은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강 소방경의 위험직무순직을 인정해달라며 릴레이 1인 시위를 이어가기도 했다.

소방공무원들의 반발에 이어 정치권의 지적이 이어지자 인사혁신처는 공무원재해보상연금위원회에 유족을 포함한 현장 전문가를 참여시켜 재심을 진행한 끝에 ‘위험직무순직’으로 인정하는 결론이 내려졌다.

위험직무순직 심의는 보통 1심에서 부결될 경우 재심에서 결과가 번복되는 경우는 10%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번 심의 과정에서는 현장 전문가들이 직접 참여하면서 위험직무순직 가결에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구급업무의 특성, 사건 발생 당시의 위급한 상황, 현장조사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번 재심 결정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위험직무순직은 생명과 신체에 대한 고도의 위험을 무릅쓰고 직무를 수행하다 재해를 입고 그 재해가 직접적 원인이 돼 사망한 경우 인정된다. 이는 재직 중 공무상 부상 또는 질병으로 사망한 경우에 인정되는 일반 순직과 구별된다.

공무원 재해보상법에 따라 위험직무순직은 순직보다 많은 유족연금과 보상금을 받는다. 소방공무원이 위험을 무릅쓰고 국민을 위해 헌신하다 순직했다는 공적 차별성에서 큰 차이를 갖고 있다.

앞서 강 소방경은 지난해 4월2일 오후 1시20분께 구급 활동 도중 익산시 한 종합병원 앞에서 취객 윤모씨로부터 폭언과 폭행을 당했다. 이후 구토와 경련 등 뇌출혈 증세를 보여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 받았으나 29일 만에 숨졌다.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은 지난해 8월 공무원급여심의회의를 열어 ‘고인은 업무수행 중 해당 사건으로 극심한 충격과 스트레스를 받았고 이로 인해 지병인 뇌동맥류가 악화한 것으로 보인다’며 강 소방경의 순직을 인정했다. 이후 유족들은 위험직무순직 여부를 심사해달라고 인사혁신처에 청구했다.

<사진=뉴시스>

# 산불진화 작업 중 숨진 정비사, 위험직무순직 첫 인정

이보다 앞선 올해 1월에는 산불진화 작업 중 헬기추락 사고로 사망한 정비사에 대해 처음으로 위험직무순직이 인정되기도 했다.

또한 소방훈련 도중 사망한 소방관에 대한 순직도 두 번째로 인정됐다. 이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위험직무순직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재해보상법이 제정된 결과다.

인사혁신처는 공무원재해보상심의회에서 산림청 산림항공본부 소속 고 윤규상 정비사와 부산진소방서 소속 고 이정렬 소방장의 위험직무순직 신청을 가결했다.

이번 순직인정은 지난해 9월21일부터 시행된 공무원 재해보상법에 따른 것. 공무원 재해보상법은 위험직무순직 범위에 ▲소방 공무원의 생활안전활동 ▲실기·실습 훈련 중 입은 재해 ▲어업감독 공무원의 불법어업 지도·단속 ▲산림항공기 동승 근무자가 입은 재해 등도 포함하도록 하고 있다.

윤 정비사는 지난해 12월1일 한강 강동대교 인근에서 산불진화를 위해 헬기 물탱크에 진화용수를 채우는 과정에서 헬기가 추락해 사망했다.

윤 정비사는 공무원 재해보상법 위험직무순직 범위 중 산림항공기 동승근무자로 분류돼 순직이 인정된 첫 사례다.

이 소방장은 지난해 5월10일 고강도의 소방전술훈련을 마친 직후 급성 심정지로 쓰러져 사망했다. 이는 위험직무순직 요건에 ‘공무원이 공무수행과 관련해 실기·실습 훈련 중 입은 재해’가 포함된 이후 두 번째 인정 사례다.

첫 인정 사례는 진압대원 실기·실습 훈련 중 사망한 충남소방본부 소속 고 김은영·문새미씨였다.

황서종 인사혁신처장은 “이번 공무수행 사망자에 대한 위험직무순직 가결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직무를 수행하다가 사망한 공무원들에 대한 당연한 예우”라며 “안전하고 따뜻한 공직사회가 조성될 수 있도록 재해예방 등에도 관심을 갖겠다”고 말했다.

고(故) 윤규상 정비사는 지난해 12월1일 한강 강동대교 인근에서 산불진화를 위해 헬기 물탱크에 진화용수를 채우는 과정에서 헬기가 추락해 사망했다. 사진은 경기 구리시 강동대교 인근 한강에 추락한 산림청 헬기가 인양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산림청>
고(故) 윤규상 정비사는 지난해 12월1일 한강 강동대교 인근에서 산불진화를 위해 헬기 물탱크에 진화용수를 채우는 과정에서 헬기가 추락해 사망했다. 사진은 경기 구리시 강동대교 인근 한강에 추락한 산림청 헬기가 인양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산림청>

# 위험직무순직 범위 넓히는 ‘강연희법’ 발의

한편, 소방관 등 위험직무에 근무하는 위험직무순직 공무원의 순직 범위를 넓히는 내용의 공무원 재해보상법 개정안이 3월27일 발의됐다.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4월2일 구급활동 중 취객이 휘두른 손에 맞아 뇌출혈 증세를 보이다 세상을 떠난 강 소방경의 이름을 딴 일명 ‘강연희법’을 대표발의했다.

현행 공무원 재해보상법 3조는 ‘위험직무순직 공무원’을 생명과 신체에 대한 고도의 위험을 무릅쓰고 직무를 수행하다 재해를 입고 그 재해가 ‘직접적’ 원인이 돼 사망한 이들로 규정하고 있다.

반면 지병이 생긴 공무원이 공무 중 큰 스트레스로 지병이 악화돼 사망하는 경우 그 스트레스가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위험직무순직 공무원으로는 인정되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 발의한 개정법안에서는 위험직무순직 공무원의 범위를 ‘직접적인’ 원인이 돼 사망한 공무원에서 ‘주된’ 원인이 돼 사망한 공무원으로 넓혀서 소방공무원 등 위험에 크게 노출돼 있는 공무원들의 순직을 적절히 인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 의원은 “소방공무원 등은 직접적 위험 외에도 업무와 관련해 지속적이고 고통스러운 장면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등 각종 스트레스성 지병을 호소하고 있다”며 “직접적인 사망 원인은 아니라고 해도 그것이 주된 원인이 돼 아까운 목숨까지 잃는 억울한 순직 경우는 최대한 구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주변에는 자신의 위험보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위해 힘쏟는 공무원들이 많이 존재한다.

사건·사고 현장에서 온몸을 던져 국민들의 생명을 구해낸 현장공무원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은 우리의 가슴 속에 기억되며 남겨진 이들은 그들을 기억하며 그들의 몫까지 살아가고 있다.

지금도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고 계시는 국가 공무원분들을 영웅이라는 그럴싸한 포장만으로 반짝이는 관심을 보이는 게 아닌 순직한 공무원들의 이름이 기억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공무상 재해에 대한 국가책임을 더욱 강화하는 동시에 공무원이 안심하고 직무에 몰입할 수 있는 근무환경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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