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질병코드화:“치료 필요” vs “질환자 낙인”→사회적 합의 통한 적당한 규제안 마련

[공공뉴스=김승남 기자] # “게임에 빠진 우리 아이, 어떻게 구제할까요?” 초등학생 자녀를 둔 A씨의 고민거리다. 요즘 초등학교 1학년만 돼도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니는 아이들이 다반사다. 스마트폰을 통해 게임을 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은데, A씨의 아들 B군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최근 B군의 장래희망이 프로게이머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아들이 게임을 좋아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단순히 취미나 여가생활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직업으로까지 생각하고 있다는 것에 A씨는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며 하고 싶어하는 것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게 해주는 A씨였지만, 요즘들어 학교 일과가 끝나자마자 PC방으로 달려가는 B군을 보고 있자니 이게 맞는 것인지, 제재를 해야 하는 것인지 아들 걱정에 고민은 날로 늘어갔다.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9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의 한 식당에서 게임업계 대표들을 만나 간담회를 갖고 게임산업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문화체육관광부>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9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의 한 식당에서 게임업계 대표들을 만나 간담회를 갖고 게임산업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문화체육관광부>

‘게임중독’을 치료가 필요한 질병으로 보느냐, 마느냐를 두고 논란이 뜨겁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오는 20~28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세계보건총회에서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를 질병으로 등재한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안(ICD-11)을 최종 의결할 것으로 예고하면서다.

국내 게임업계 등은 WHO의 게임장애의 정식 질병 등재 결정 자체가 게임 산업에 큰 피해를 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게임이 질병을 유발하는 물질이라는 인식이 덧씌워지면서 게임 산업에 대한 인식이 악화되고 인재가 이탈해 산업 전체가 위축될 수 있기 때문.

게임이 일종의 취미생활 혹은 여가 생활로 인정되지 않고 매번 ‘게임중독’이라는 타이틀로 옭아매는 게 안타깝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 정부·협회 등 ‘게임 질병코드’ 도입 반대 한목소리

e스포츠 산업을 본격 육성하고 있는 부산광역시가 WHO의 게임 질병코드 도입에 공식적인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게임 질병코드가 도입되면 부산시가 추진하는 e스포츠 진흥계획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을 우려한 데 따른 것이다.

부산시와 부산정보산업진흥원은 지난 17일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는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화’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는 앞서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한콘진)이 밝힌 반대 입장과 일치하는 것으로 향후 관련 기관 및 단체들의 다양한 대응이 예고된다.

부산정보산업진흥원은 부산 인디커넥트페스티벌조직위와 함께 지난달 28일 발족한 ‘게임 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 준비위원회’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부산시는 공동 대책위가 추진할 정책토론회, 포럼, 공청회, 항의방문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계획이다. 문화 콘텐츠 분야 협회와 단체, 인권 단체 등과의 협력방안도 마련하기로 했다.

부산시는 e스포츠 저변 확대를 위해 내년 상반기까지 서면 피에스타에 400석 규모 상설경기장을 조성하는 등 게임 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상설경기장에 국제 e스포츠 연구개발센터를 구축해 학술연구를 하고 국제공 인심판와 선수를 육성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장기적으로는 센텀1지구 게임 융복합타운에 경기장을 추가 조성해 게임, 가상·증강현실 등 문화콘텐츠산업과 연계한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게임 질병코드가 도입되면 시의 이같은 계획은 차질이 불가피하다.

이인숙 부산정보산업진흥원장은 “게임은 단순히 오락을 위해 소비하는 상품이 아니라 이용자의 경험으로 완성되는 하나의 문화”라며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으로 게임의 순기능이 저해되지 않도록 힘을 보태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진흥원은 게임 과몰입 상담치료센터 운영을 확대하는 등 게임 순기능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앞서 문체부와 한콘진도 지난달 29일 ICD-11에 ‘게임이용장애’가 포함돼 있는 것에 대해 WHO에 반대하는 입장을 전달했다.

문체부-한콘진이 전달한 의견서에는 ‘게임이용자 패널(코호트) 조사 1~5차년도 연구’ 결과와 함께 현재까지 발행된 1~4차년도 보고서 원문이 참고문헌으로 포함됐다.

이 조사 연구에서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간 한국의 10대 청소년 2000명을 게임이용자 청소년 패널로 구성해 게임이 이용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게임 과몰입의 원인은 무엇인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이는 게임이용자를 대상으로 한 최초의 장기추적 연구로, 사회과학과 임상의학 분야 패널을 각기 조사해 게임 과몰입의 인과관계를 종합적으로 규명했다.

문체부와 한콘진은 의견서에서 “청소년의 게임 과몰입은 게임 그 자체가 문제 요인이 아니라 부모의 양육 태도, 학업 스트레스, 교사와 또래지지 등 다양한 심리사회적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패널조사 연구내용을 핵심적으로 피력했다.

임상의학적으로 관점에서도 게임 이용이 뇌 변화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 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장애(ADHD)와 같은 질환이 있을 때 게임 과몰입 증상을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게임 과몰입에 대한 진단과 증상에 대한 보고가 전 세계, 전 연령층에 걸친 것이 아니라 한국·중국 등 아시아 지역에 국한돼 있고 청소년이라는 특정 연령층에 집중돼 있는 점에 대한 문제제기도 포함했다.

강경석 한콘진 본부장은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화는 게임 산업에 대한 극단적인 규제책으로만 작용할 뿐, 게임 과몰입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며 “이 사안에 대해 학계·업계 관계자들과 유기적인 공조를 통해 게임 과몰입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확산하는 데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WHO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화 이슈에 대해 한국게임산업협회에서도 반대하는 의견을 제출하는 등 민·관이 함께 대응하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 ‘게임 질병’ 등재여부 놓고 복지부 vs 문체부 입장차 여전

‘게임중독’을 의학적 질병으로 분류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WHO 총회를 앞두고 게임업계가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 주무 부처간에도 엇갈린 입장을 보이고 있다.

14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게임 이용 어떻게 볼 것인가’ 토론회에서는 WHO의 ‘게임중독’ 질병코드 등재 문제를 놓고 보건의료계와 문화산업계가 분명한 온도차를 보였다.

앞서 WHO는 ‘게임장애’를 질병코드로 분류한 ICD-11을 공개했다. ICD-11은 ‘게임장애’를 도박 중독과 함께 ‘중독 행동에 따른 장애’ 범주에 포함시켰다. 증상으로는 ▲게임 플레이 시간 조절 불가 ▲게임과 여타 활동의 우선순위 지정 장애 ▲게임으로 인한 부정적인 결과 무시 등을 기재했다.

ICD-11이 통과되면 5년 이상의 유예기간을 거쳐 각 국가의 보건정책에 반영된다. 보건복지부는 WHO의 방침이 확정되면 이를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문체부는 명확한 기준이 없다며 우려를 표했다.

복지부 산하 국립정신건강센터를 대표해 토론회에 참석한 조근호 정신건강사업과장은 “게임이용장애로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이 전체 게임이용자의 3% 안팎으로 수치는 많지 않으나 문제를 겪는 사람이 있다면 치료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게임이용장애는 게임을 즐기는 다양한 사람들 가운데 우려할만한 문제가 있는 일부에 적용하기 위한 장치”라며 “질병을 질병이라고 부를 수 없는 상황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질병코드에 등재된다고 곧장 과도한 규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게임중독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가능하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문체부 측은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박승범 문체부 게임콘텐츠산업과장은 10대의 92%, 국민 67%가 게임을 즐긴다고 밝히며 “청소년의 게임 과몰입은 게임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부모의 양육 태도나 학업 스트레스, 교사와 또래의 지지 등 다양한 심리사회적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게임장애 질병코드 등재에 따라 게임 산업에 약 10조원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하며 “명확한 근거 없이 무작정 게임을 질병코드에 등재하겠다는 것은 관련 산업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학부모단체인 인터넷스마트폰 과의존 예방 시민연대의 김윤경 정책국장과 게임 방송으로 1020세대에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유튜브 크리에이터 ‘대도서관’(본명 나동현) 도 참석해 입장을 피력했다.

김 정책국장은 “청소년 게임 과몰입에 대한 책임을 부모의 양육 태도 문제로 돌리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라며 “막대한 이익을 챙긴 게임회사는 기금을 조성해 게임 과몰입에 대한 부작용을 줄이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정부 역시 게임중독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관할 부서를 만드는 등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대도서관은 “기성세대가 게임에 대해 잘 모르고 중독을 유발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결국 게임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을 먼저 살펴보는 게 맞는 거 같다”고 말했다.

그는 “게임 과몰입으로 인한 사건 사고보다 학업 스트레스로 인한 사건 사고가 훨씬 많다.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을 억지로 막는다면 오히려 더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게임을 질병으로 단정짓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게임을 하는 입장에서 바라봤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자료=리얼미터>
<자료=리얼미터>

# 국민 10명 중 4명 “게임중독은 질병이다”

한편,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지정하는 데 대해 성별과 세대별로 찬반이 엇갈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게임중독을 술, 도박, 마약 중독 등과 마찬가지로 질병으로 분류·관리하는 데 찬성한다’는 응답이 45.1%로 나타났다.

이는 ‘놀이문화에 대한 지나친 규제일 수 있으므로 질병으로 분류하는 데 반대한다’는 응답(36.1%)보다 9.0%포인트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모름·무응답’은 18.8%였다.

여성과 50대 이상 장·노년층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지정하는 것에 대체로 찬성하는 반면 남성과 20·30세대에서는 반대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찬성 여론은 여성(찬성 50.1% vs 반대 28.0%), 50대(53.3% vs 32.2%), 60대 이상(47.1% vs 22.7%), 대전·세종·충청(60.8% vs 27.2%), 서울(48.6% vs 34.8%), 대구·경북(39.3% vs 27.7%), 부산·울산·경남(43.4% vs 35.8%), 중도층(51.1% vs 32.8%)과 진보층(46.5% vs 41.1%), 보수층(42.7% vs 35.6%)에서 우세했다.

지지 정당별로는 바른미래당(62.2% vs 20.7%)과 더불어민주당(50.8% vs 31.9%), 자유한국당 지지층(41.2% vs 36.1%) 등에서 우세한 양상이었다.

반면 반대 여론은 남성(찬성 40.0% vs 반대 44.4%), 학생(43.2% vs 49.9%), 20대(40.9% vs 46.5%), 30대(39.7% vs 45.4%), 광주·전라(32.6% vs 46.6%), 무당층(33.1% vs 52.3%)에서 많았다.

경기·인천(찬성 43.2% vs 반대 41.2%)과 40대(42.3% vs 40.9%), 정의당 지지층(43.0% vs 40.6%)에서는 찬반 양론이 팽팽하게 엇갈렸다.

이번 조사는 CBS 의뢰로 10일 진행됐다. 전국 19세 이상 성인 6187명을 상대로 조사해 최종 511명이 응답을 완료했으며 무선 및 유선전화를 통해 임의로 전화를 거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8.3%의 응답률을 기록했고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3%포인트다.

업계에서는 게임 과몰입이 질병으로 분류될 경우 게임산업에 막대한 피해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더욱이 그간 국내에선 강력범죄의 원인으로 게임을 지목하는 경우가 존재했던 까닭에 게임 과몰입이 질병으로 분류될 경우 게임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더욱 기세를 얻을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특히 과학적 증거나 사회적 합의가 부족한 상황에서 게임장애가 질병으로 등재될 경우 게임 이용자들이 게임 중독자, 정신건강 질환자 등으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게임에는 부작용도 있지만 긍정적인 면도 물론 존재한다. 청소년에게 단순 교우관계를 넘어 청소년기 사회화 과정의 핵심인 집단 형성의 경험을 제공하는 주요한 매개라는 측면에서 사회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실제로 게임을 통한 정서적 에너지의 발현과 유동을 경험하면서 유대감과 소속감을 가지게 되기도 한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게임을 통해 자신만의 창작 활동을 하며 장래에 대해 고민하는 유형도 있다는 것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단순히 게임중독이라는 낙인을 새겨 개인의 무한한 창의성과 가능성을 말살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

다만 게임을 과도하게 하면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거나 스스로 통제를 못하는 경우도 생기므로 적당한 규제는 필요하다.

PC방이 금연구역으로 지정되고 흡연부스가 있는 곳에서만 흡연이 가능 했듯이 성장통을 조금 겪더라도 게임중독의 원인을 해소할 수 있는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해결책을 마련해 게임 중독된 이들을 구제해주고 업계도 성장할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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