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다룬다면 감정없는 메마른 인간 취급 당하기 일쑤였다는 유 차장
대학시절 ‘마음 없는 공대생’이라며 소개팅 자리조차 들어오지 않아 상처
컴퓨터와 떨어진 삶 상상조차 못해..백발의 프로그래머가 되는 게 소원

[공공뉴스=이상명 기자] “사람이 하는 일을 컴퓨터나 휴대폰을 통해 좀 더 정확하고 빠르게 처리할 수 있도록 컴퓨터가 이해하는 언어로 글을 쓰는 사람을 프로그래머라고 합니다.”

프로그래머를 알기 쉽게 설명해 달라고 했더니 돌아온 유 차장의 대답이다. 현재 다니고 있는 N사가 두 번째 회사라고 한다. 프로그래머로 일한 지 올해로 18년 차.

“제가 하는 일은 프로그래머 중에서도 비즈니스 프로그래밍, 즉 기업이 사용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일입니다.”

매일 야근에 주말도 없이 일하느라 개인생활이 없지만, 컴퓨터와 떨어진 삶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유 차장이 지난 6일 서대문에 위치한 <공공뉴스>를 찾아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에 대한 깊은 애정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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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서대문에 위치한 <공공뉴스>에서 현재 N사에 근무 중인 18년 차 프로그래머 유모(46세)씨와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사진=공공뉴스 DB

“컴퓨터로 돈을 처음 받은 건 학교 다닐 때 산학협동 프로젝트 참여할 때부터네요.”

그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컴퓨터만 붙잡고 살았다는 유 차장이 가을 냄새가 물신 풍기는 창밖으로 잠시 눈을 돌린다. 연애할 시간, 사랑할 시간도 없었지만 첫 눈에 반한 여인이 있었고, 없는 시간 쪼개가며 만났다고 한다. 그렇게 예쁜 추억을 만든 지 3년이 되던 날, 그녀는 다른 남자가 좋다며 홀연히 떠나버렸다고.

“프로그래머는 개인 시간 갖기가 힘든 직업이에요. 그걸 이해 못한 여자친구가 떠나버린 거죠. 마음이 식었다고 오해했던 것 같아요. 입사한 그 해에 떠났거든요.”

그 상처가 너무 커서 한동안 일도 못하고 매일 술 마시며 괴로워하던 모습을 지켜보던 지금의 아내가 사랑으로 상처를 치유해 주었고 그렇게 연애 3년 만에 사내 결혼에 성공했다고. 그는 자신이 뭔가를 마음대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이 너무 신나서 이 일을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조립식 장난감의 확장판이라고 할까. 내가 조립하고 싶은 대로 모양이 나오는 것처럼 내 능력껏 내 마음대로 프로그래밍 할 수 있다는 점이 너무 좋았어요.”

처음 컴퓨터를 접한 건 친구 집에 있는 초기 애플 컴퓨터를 본 중학교 2학년 때, 당시 컴퓨터가 너무 갖고 싶었으나 가정 형편상 사지는 못했다고. 대학 입학 후 엄마를 조르고 졸라 300만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처음 컴퓨터를 장만했다며 어린애처럼 웃는다.

이런 컴퓨터 사랑때문인지 힘든 직업이지만 자부심도 크다.

“누군가 내가 만든 프로그램을 잘 쓰고 있단 말을 해주었을 때 정말 보람 있죠. 자부심도 들지만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의 결과물을 유용하게 사용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뭐, 물론 비싼 돈 내면서 사용해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요. 하하.”
물론 애환도 있다. 특히 이 세계를 모르는 평범한 일반인들은 그저 말만 하면 금방이라도 완벽한 프로그램이 나오는 줄 알고 있다는 점은 섭섭하면서도 가장 답답한 현실이라고.

때문인지 이 길을 가고자 하는 후배들에게도 꼭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컴퓨터를 전공하고 단지 취직 때문에 도전한다면 발 들이지 말기를 바란다고 말이다. 적성 안 맞아서 다른 일하는 사람이 열에 아홉일 정도로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 버티기 힘든 직종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덧붙인다.

“취직 때문에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을 선택해서는 안됩니다. 다만 새로운 기술에 흥미가 많다면 도전해 보라고 하고 싶어요. 프로그래머의 가장 큰 매력은 컴퓨터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내 맘대로라는 겁니다. 현실에서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있겠어요.”

하지만 유 차장의 꿈은 백발의 70세 프로그래머가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나이 먹으면 적성과 관계없이 관리직으로 돌리는 회사 문화가 너무 만연해 있어요. 머리 획획 돌아가는 어린 뇌보다 노련한 뇌를 무시 할 수 없는 직업도 많은데 말이죠. 프로그래머라는 직업도 이 중 하나가 아닐까 싶어요. 노련한 그레이 신사의 빠르게 움직이는 손가락을 기대해 주세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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