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 UN에 문제해결 위한 진정 제기..‘배상 이행 촉구’ 한목소리

[공공뉴스=이상명 기자] 일제강점기 강제징용된 피해자에게 일본 기업이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온지 1년이 됐음에도 불구, 일본을 향한 피해자들의 분노는 여전하다.

2018년 10월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씨 등 4명에게 각 1억원씩을 배상하라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한 법원의 최종 판단으로, 2005년 2월 소송이 제기된 지 13년8개월 만에 승소 판결이 났다. 

당시 대법 판결로 10대 나이에 일제 강제 노역에 동원된 피해자들은 수십년 만에 한을 풀게 됐다. 하지만 일본 측의 이행 거부로 1년간 실제 배상은 이뤄지지 못해 피해자들의 눈물도 마르지 않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대법원 강제징용 피해자 승소 판결 1년인 지난 30일 서울 서초동 민변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정부와 기업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했다. <사진=뉴시스>

◆日 강제징용 피해자들, 유엔에 ‘일본 배상·사죄 촉구’ 진정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회장 김호철)과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과거 청산을 위한 공동 행동’은 지난 30일 서초동 민변 대회의실에서 ‘일제 강제동원 배상판결 1년, 피해자의 인권 피해 회복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특히 이들 단체는 이 자리에서 유엔(UN)에 문제 해결을 위한 진정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대법이 일본 기업들의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손해배상을 인정한지 1년이 지났지만, 일본의 소극적 대응으로 진척이 없자 시민사회단체들이 피해자 인권 회복을 위한 행동에 나선 것.

시민사회단체가 강제동원 문제가 불거진 이후 유엔에 직접 진정을 제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민변 국제연대위원회 김기남 변호사는 “이번에 처음으로 유엔 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며 “유엔 인권위 특별보호관들이 일본 정부에 서한을 보내고 해결을 촉구하는 개입을 시작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이들은 강제동원 문제를 국제노동기구(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ILO)에 고발하기 위한 100만 시민 서명운동도 진행하기로 했다.

민변 등 단체는 이날 공동 기자회견문에서 “대법원 판결은 국제인권법의 성과를 반영해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에 대한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명확히 하고, 식민지배와 직결된 강제동원·강제노동이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며 “이 점에서 식민주의의 극복을 향한 첫 걸음을 내디딘 세계사적인 판결”이라고 밝혔다.

이어 “냉전과 분단체제 아래에서 피해자의 인권을 무시하고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이 강요한 ‘65년 체제’를 피해자들과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이 연대해 극복한 역사적인 성과”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이 지난 현재, 인권회복과 정의의 실현을 고대해 온 피해자들의 기대는 처참히 짓밟히고 있다고 단체는 분노했다.

이들은 “아베 정권은 한국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하고 사죄, 반성하기는커녕 ‘국제법 위반’을 운운하며 사법주권을 침해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피고 기업들에게 노골적으로 압력을 가해 판결의 이행을 방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일본 정부는 한국에 대한 경제규제와 노골적인 배외주의를 선동해 일본 사회 전체를 ‘혐한의 광풍’으로 몰아넣는데 앞장서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들은 “피고 일본 기업 일본제철, 미쓰비시, 후지코시는 판결에 따라 가해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하고 배상을 위해 먼저 나서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대화마저 거부한 채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글로벌 기업을 자처하는 기업들의 비겁한 행태를 강력히 규탄하며 피고 가해기업의 책임을 끝까지 물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시민사회단체는 한국 정부에 대한 비판 목소리도 높였다. 정부가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고 피해자중심주의에 입각해 강제동원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한다고 천명했지만, 지난 1년 동안의 노력은 이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

이들은 “한국 정부는 진상규명, 사죄, 법적 배상, 재발방지 등 과거사 해결의 기본원칙에 입각해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더욱 세심하게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강제동원 피해의 진상규명을 위해 한국 내에서 할 수 있는 조치들을 선제적으로 취하고, 소송 당사자뿐만 아니라 일부 소송을 제기하지 못한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을 포함해 해당 문제의 포괄적인 해결을 위한 고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지막으로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뒤 적지 않은 피해자들이 정의의 실현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뜨고 말았다. 피해자들에게 남겨진 시간은 얼마 없다”면서 “우리는 피해자들의 인권 회복이 실현되는 그 날까지 국제사회와 함께 연대해 행동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는 “다니던 국민학교 일본 교장이 ‘너는 공부를 잘 하니 일본 가서 공부하고 오면 선생 짓도 할 수 있다’고 했다”라며 “밥 두 숟가락 떠먹고 밥이 없으면 식당 가서 청소 해주고, 한국 사람을 동물 취급했다. 이를 생각하면 이가 갈린다”고 분노를 드러냈다.

이어 양 할머니는 “하루속히 사죄하고 아베는 반드시 우리 앞에서 무릎 꿇고 여러 사람 앞에서 사죄하길 바란다”고 했다.

일본 주류를 판매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게시된 서울 시내 한 마트 주류코너 모습. <사진=뉴시스>

◆강제징용 판결 그 후..수출규제·불매운동 지속

한편,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소송은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양 할머니를 포함한 5명이 소송을 제기한 것. 그러나 2008년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패소했다.

패소의 충격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2012년 한국 법원에 다시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 4명에게 각 1억5000만원씩, 유족 1명에게는 8000만원 등 총 6억8000만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2심도 미쓰비시 측 배상책임을 인정하고 배상액만 일부 조정해 양 할머니 등 피해자 3명에게 각각 1억2000만원, 이동련 할머니에게 1억원, 유족에게 2억208만원 등 총 5억6208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대법원도 2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대법원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따라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이 소멸했다는 미쓰비시 측 주장에 대해 기각했다.

그러나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우리 대법원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에 대해 일제 강점기에 강제동원한 우리 국민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을 내린 데 대해 “매우 유감이지만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했다.

특히 강제징용 배상판결 이후 7월1일 일본 정부는 한국과의 신뢰 관계가 훼손됐다는 이유로 우리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만드는 핵심 소재 3가지 품목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리지스트 ▲에칭가스 등에 대한 수출 통제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한국 반도체 산업을 고사시키려는 명백한 경제 압박이었다. 더 나아가 소위 우방국 리스트인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해 수출 통제를 하고 있는 핵심 물품들에 대한 수출 간소화 절차도 폐지했다.

일본 정부가 본격적인 보복에 나서면서 국내 소비자들의 일본제품 불매운동으로 이어졌다. ‘일본제품 안사고 일본여행 안가기’ 운동은 국민이라면 당연한 행동으로 여겨질 정도다.

그 결과 최대 해외 여행지였던 일본행 여객이 감소하고 전국의 일본 브랜드 상점은 매출 하락으로 이어졌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해제 및 강제징용 배상 판결 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는 한 우리 국민의 분노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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