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케빈에 대하여 포스터 네이버
영화 ‘케빈에 대하여’ 포스터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공공뉴스=이상명 기자] 이른바 한강 몸통시신 사건의 피의자 장대호가 최근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아 또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예상과 달리 사형선고가 내려지지 않은 까닭인데, 선고가 끝나자 유가족들은 “내 아들 살려내. 절대 안돼”라고 울부짖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는 후문. 피해자는 현재 임신 중인 아내의 남편이며 5살 아들의 아빠로 알려졌다.

이처럼 선량하게 살아가던 한 가장을 향해 흉기를 휘둘러 목숨을 빼앗은 것도 모자라 시신을 훼손해 고인을 두 번 죽이고도 “흉악범이 양아치를 죽인, 나쁜 놈이 나쁜 놈을 죽인 사건”이라며 “반성하지 않는다”고 막말을 쏟아내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살인이라는 극단적 방법으로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고 그 죄에 대한 댓가를 받기 위해 법의 심판대 위에 놓여진 채 법원을 향해 걸어 들어가면서도 반성은커녕 언론사 카메라를 보고 미소를 지어 보여 전 국민을 경악하게 만들었던 그.

보도가 나가자 관련 기사 댓글란에는 그에 대한 욕설이 난무했다. ‘쓰레기’ ‘미친X’ ‘괴물’ 등

‘괴물’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지난해 전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강서 PC방 살인사건 피의자가 떠올랐다. 사건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피의자 김성수를 ‘괴물’로 묘사하며 사람으로서 도저히 저지를 수 없는 만행에 인간 이하라고 손가락질하기 시작했다.

한참 누리꾼들의 댓글을 읽어 내려가다 순간 내 눈을 사로잡은 글 하나. 욕설로 난무한 댓글 속에서 유난히 나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피의자가 왜 이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었는지 우리 모두 이 사연에 동참하자며 수년 전 보았던 영화 ‘케빈에 대하여’가 생각난다는 내용이었다. 그 댓글이 나를 영화내용에 관심을 갖도록 이끌었고 마침내 유료결제 후 그 영화를 보게 됐다.

처음 이 댓글이 올라왔을 때 사람들은 쓰레기만도 못한 자를 편든다며 댓글을 적은 누리꾼에게도 형용할 수 없는 공격을 했다. 나 또한 잠시 ‘이 사람 피의자 편드는 건가?’ 라는 생각을 했으니까.

영화 ‘케빈에 대하여’는 단지 범죄자를 이해하자는 차원이 아닌 우리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 범죄를 저지른 그들의 상황, 그들의 장애나 병에 대해 폭넓게 이야기하고 나아가 사회 전체적으로 공론화 하자는 취지로 제작됐다.

혹자는 ‘반사회적 인격장애’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이 영화의 주 내용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감독의 의도를 이렇게 생각했다.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에 대한 관심 더 나아가 사회가 외면하고 싶었던 그들의 이야기를 이제는 공개하고 서로 나눔으로써 적극적으로 대처하자는 내용이 이 영화의 기획 의도라고. 
 
일각에서는 이런 의견에 대해 우려를 표하며 피해자 가족에게 깊은 상처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랑하는 가족은 죽었는데 왜 가족을 죽인 그들에 대해 알아야 하고 이해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말이다.

그러나 더는 이런 피해자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라 불리우는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대처해야 할 필요성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영화 주인공 케빈은 내 이웃일 수도 혹은 우리 가족, 나의 친구일 수도 있다. 무심코 지나친 누군가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살인자라면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위)일명 몸통시신 살인사건 피의자로 불리는 장대호와 강서PC방 살인사건 피의자 김성수 <사진=뉴시스>
(위)일명 몸통시신 살인사건 피의자로 불리는 장대호와 강서PC방 살인사건 피의자 김성수 <사진=뉴시스>

#케빈의 이야기

케빈은 아기 때부터 특별했다고 케빈의 엄마는 기억한다. 유난히 많이 울었고 유난히 떼를 쓰고 지독히도 삐딱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케빈의 아빠는 부족한 모정으로 인한 결핍이 케빈을 그렇게 만들어 갔다고 생각했고 느린 발달이 양육을 힘들게 하는 것일까 걱정한 끝에 각종 검사를 받아보지만 아이는 씩씩하다는 답변만을 듣는다.

엄마가 읽어 주는 동화책마다 모두 거부하던 케빈은 유독 ‘로빈 후드’의 활쏘기 장면만을 몇 번이고 다시 읽는다. 그 어떤 책읽기도 거부하던 아들이 ‘로빈 후드’만은 좋아하자 자신의 노력으로 아들 케빈과의 사이가 가까워졌노라 착각한 엄마.

케빈의 아빠는 ‘로빈 후드’를 좋아하는 아들에게 동화책 주인공처럼 씩씩하게 되라며 활과 화살을 사주고 케빈은 날마다 활쏘기 연습에 매진한다.

그러나 여동생 실리아가 태어나면서 케빈의 비뚤어진 욕망은 극으로 치닫게 된다. 여동생의 눈을 멀게 하고 여동생이 사랑하는 기니피그를 죽여 싱크대 배수구에 쳐 넣는다.

여동생을 사랑하는 아빠의 모습에 질투심을 느낀 케빈은 유일하게 믿고 따랐던 아빠를 생일날 아빠에게 선물로 받은 활과 화살을 이용해 쏘아 죽인다. 이어 여동생 실리아 마저 쏘아 죽인 후 학교 체육관을 찾아가 문을 걸어 잠그고 친구들을 향해 활시위를 당긴다.

#케빈의 엄마 이야기

유난히 힘든 육아과정을 거치며 자유로운 여행가였던 지난 시절을 그리워 하는 케빈의 엄마. 원치 않은 임신으로 원치 않았던 결혼생활이 시작되고 이어진 출산과 양육은 그녀 인생을 뒤바꾸어 놓는다.

울다 지친 아기 케빈에게 “네가 없을 때 난 더 행복했어!”라고 외치기도 한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육아. 다른 아이보다 유난히 말을 듣지 않는 아이. 그저 이 모든 게 자신의 잘못이라 여기며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는 케빈의 엄마.

그 자책감은 아들 케빈이 남편과 딸 그리고 친구들을 살해한 후에도 이어진다. 살인자의 엄마라는 이유로 길거리를 지나다 갖은 욕설과 함께 따귀를 얻어맞고도 모든 게 자신의 잘못인 양 인내하고 감수한다.

이 장면에서 범죄자 가족이 겪는 고통을 보았다. 물론 피해자 가족의 아픔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그들에 대한 시선 또한 편견을 버릴 필요가 있다. 그들의 잘못으로 그들의 자녀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살인범이 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케빈은 큰 죄를 저질렀고 벌을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그의 그런 잘못이 하고 싶지 않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어쩔 수 없이 병들어 버린 ‘뇌’로 인해 저지른 것이라면 우리는 그에게 어떤 벌을 내리고 무엇을 물어야 할까.

살인으로 수감된 케빈이 왜 그랬는지 묻는 엄마에게 한 말은 “나도 모르겠어”였다. 모자가 진심으로 나눈 첫 대화이기도 했다.

케빈이 앓고 있던 ‘반사회적 인격장애’ 환자들은 선천적으로 충동성과 감각추구 성향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의학계는 이런 성향이 뇌 안에 세로토닌 전달 기능에 문제가 생기면서 나오는 증상으로 추정한다.

뇌에서 감정 반응과 관련돼 있는 변연계-전전두엽 회로 기능이 떨어져 인지기능 중에서 공간지각 및 기억능력에 이상이 생겨 충동적으로 위험한 자극을 추구한다는 것.

또한 환경적인 요소로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비일관적인 양육태도나 학대, 폭력이나 방임 및 유기를 지속적으로 경험한 경우가 많았다고 전해진다.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져 나오는 엽기 혐오 범죄 사건들. 더 이상 목적없는 비난보다는 우리 모두를 살리고 범죄자로 낙인찍혀 버린 그들을 개선시킬 수 있는 폭넓은 대화의 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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