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단횡단:교통사고 주범은 보행자 ‘안전불감증’→조금 더 빨리 편하게 가려는 욕심 버리기

[공공뉴스=김소영 기자] # 최근 유치원생 딸이 감기에 걸려 기침이 잦아지자 반차를 낸 30대 직장인 김모씨. 김씨는 아침 일찍 병원에 가기 위해 택시를 불렀으나 오지 않아 버스를 타러 가던 중 저 멀리 건너편에서 버스가 오는 것이 보였다. 자주 오지 않는 버스를 눈앞에서 놓쳐 버릴까봐 걸음을 재촉하며 길을 걷는데, 아뿔사! 횡단보도의 초록불이 깜빡이고 있었다. 김씨는 딸에게 “빨리 뛰어”라고 외치며 횡단보도를 건너려는 순간 빨간불로 바뀌고 말았고, 급한 나머지 딸의 손을 잡아 끌며 무단횡단을 하고 말았다. 다행히 지나가는 차는 없었지만 아이는 “빨간불인데 건너면 어떻게 해!”라며 부은 얼굴로 김씨를 질책했다. 이 말을 들은 김씨는 무의식적 행동을 인지하고 아차 싶었다. 아이가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리 급했어도 건너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은 것. 결국 딸은 김씨에게 앞으로는 빨간불에 건너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고, 김씨는 아이에게 하지 말라고 하는 행동은 자신도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시민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도로를 무단횡단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시민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도로를 무단횡단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무단횡단 사고는 보행자가 횡단보도가 아닌 곳에서 횡단 중에 발생한 인적 피해 교통사고를 말한다. 특히 다른 교통사고 유형 중에서도 가장 위험하며 사망률이 높은 편이다.

무단횡단으로 발생하는 교통사고는 아직도 무단횡단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식이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초록불이 깜빡거릴 때 무리하게 뛰어서 건너다가 중간에 빨간불로 신호가 바뀌게 되는 경우, 횡단보도가 인근에 있지만 조금 더 빨리 가고자 횡단보도가 아닌 곳에서 무단횡단을 하는 경우, 보행자 신호가 빨간불로 건너지 말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고 무단횡단을 하는 등 무단횡단을 죄의식 없이 저질러 사고를 당하는 보행자가 많다.

더욱이 문제는 사람들은 남이 하면 그것을 따라 하려는 ‘행동감염’의 성격이 있다. 남들이 하면 무의식적으로 따라 하게 되는 것. 즉 ‘나 하나쯤이야’라는 안일한 생각이 다른 사람들까지 위험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셈이다.

# 빠른 길의 유혹, 최악의 선택 ‘무단횡단’

올해도 어김없이 무단횡단으로 인한 사망사고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지난 25일 부산에서 새벽 시간에 도로를 무단횡단하던 70대 남성이 관광버스에 치여 숨졌다. 또 14일에는 광주에서 유턴을 하던 차량이 무단횡단하는 70대 보행자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했다.

또한 2일에는 강원 원주에서 무단횡단을 하던 60대 여성이 화물차량에 치여 숨졌으며 1일에는 인천의 한 도로에서 무단횡단을 하던 50대 보행자가 승합차에 치여 숨지기도 했다.

이처럼 보행자의 무단횡단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지 않으면서 관련 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무단횡단하는 보행자를 치어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유죄가 인정된 60대 운전자에게 항소심 재판부가 원심판결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청주지법 형사항소2부(윤성묵 부장판사)는 20일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68)씨에게 금고 5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한 것.

A씨는 2017년 12월18일 오후 3시50분께 충북 청주시 흥덕구의 한 편도 2차로 도로에서 운전하던 중 화단식 중앙분리대가 설치된 도로를 무단횡단하는 B(79)씨를 좌측 사이드미러 부분으로 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사고 당시 A씨는 제한시속 70km인 도로에서 약 40∼50km의 속도로 주행 중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 사고로 B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기도폐색과 긴장성 기흉 등으로 끝내 숨졌다.

검찰은 “주의의무를 게을리한 과실이 있다”며 A씨를 재판에 넘겼다.

1심 재판부는 “도로 구조나 가로수의 상태 등에 비춰 시야 확보에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던 점 등 주의의무 위반이 인정된다”며 A씨에게 금고 5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A씨는 이 같은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그는 “주의의무를 게을리하지 않았다”며 “피해자의 사망 원인은 기도폐색과 기흉 등으로 교통사고로 인해 피해자가 사망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주장한 것.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과 달리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규정 속도를 지켜 주행한 피고인으로서는 중앙분리대 사이를 통과해 도로를 무단횡단하는 보행자가 있을 가능성까지 살피면서 운전해야 할 주의의무가 있다고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고 지점 도로와 중앙분리대의 구조, 사고 당시의 교통상황 등을 종합할 때 설령 피고인이 사고 직전 피해자를 발견했다 하더라도 충격을 회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피고인에게 업무상 과실치사죄에서 말하는 주의의무 위반이 없다고 할 것이므로,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해 무죄를 선고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2014년 9월 19일 서울시가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에서 무단횡단의 위험을 알리고 교통사고 피해를 줄이기 위한 ‘저승사자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2014년 9월 19일 서울시가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에서 무단횡단의 위험을 알리고 교통사고 피해를 줄이기 위한 ‘저승사자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보행자 안전 무방비

운전자가 주의할 틈도 없이 보행자가 급하게 도로로 뛰어드는 등 무단횡단하는 보행자의 잘못도 문제지만 신호등이 설치돼 있지 않은 횡단보도에서 발생한 사고도 적지 않다.

실제로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신호등이 설치된 횡단보도보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가 훨씬 더 많은 것으로 드러나 안전대책이 시급해 보인다.

특히 서울은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가 70%에 달하고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의 사고율이 1위를 기록했다.

김병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신호등 설치 유무에 따른 횡단보도 사고발생 현황’ 자료에 따르면, 신호등이 설치된 횡단보도에서의 교통사고 발생은 2014년 7608건에서 2018년 7665건으로 매년 비슷한 수준(0.7% 증가)이었다.

그러나 신호등이 없는 무신호 횡단보도에서의 교통사고 발생은 2014년 4524건에서 2018년 5058건 발생하며 11.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전체 횡단보도 교통사고 중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에서의 교통사고 비율은 2014년 62.7%에서 2018년 60.3%까지 떨어진 반면 무신호 횡단보도의 사고비율은 2014년엔 37.3%에서 2018년엔 39.8%로 2.5% 올랐다.

무신호 횡단보도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 역시 최근 5년간 488명 발생했으며 부상자 수는 2만5196명에 달했다.

또한 2014년 무신호 교통사고의 사상자는 4766명이었으나 2018년엔 5315명으로 4.8% 증가했다.

하지만 문제는 전국에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는 총 13만4436개(55.8%)로,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 10만6404개(44.2%)보다 2만8002개나 많은 실정이다.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의 비율을 살펴보면 서울이 69.2%로 가장 높았으며 대전(66.6%), 경북(65.8%), 전북(64.5%), 전남(62.7%) 등의 순이었다.

인천(43.1%)과 광주(38.8%), 경기(36.0%), 세종(22.2%)을 제외한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의 비율이 절반 이상을 기록한 셈이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의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인 서울(4209건)에서 사고발생 역시 가장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기(4000건)와 부산(1984건), 경남(1854건), 대구(1752건) 등에서도 사고가 많았다.

반면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의 비율이 적은 광주(763건), 인천(735건), 울산(672건) 등에서는 사고 발생이 적은 것으로 파악됐다.

김 의원은 “신호등 유무에 따라 교통사고 발생의 차이가 존재함에도 여전히 전국 많은 횡단보도가 신호등 설치가 되지 않은 채 방치돼 있다”며 “경찰청은 지자체 등과 적극 협의해 교통사고가 잦은 무신호 횡단보도에 대해 신호등 및 과속방지턱 등 도로안전시설 설치에 더욱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무런 안전장비 없이 손수레, 캐리어 등을 이용해 도로를 무단으로 횡단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아무런 안전장비 없이 손수레, 캐리어 등을 이용해 도로를 무단으로 횡단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무단횡단 사망자 절반은 65세 이상 노인

‘나 하나쯤이야’, ‘차 안 올 때 빨리’라는 안일한 생각에서 비롯되는 무단횡단은 어느새 사망을 부르는 교통사고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이 때문에 무단횡단에 대해 시각적인 경각심을 주기 위한 무단횡단 방지시설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시각적 정보에 대한 민감도가 떨어지는 고령층 보행자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욱이 신체약화로 인해 먼 거리를 돌아가는 것이 부담스러워 횡단보도의 신호와 상관없이 기다리지 않고 길을 건너는가 하면 횡단보도가 아닌 도로에서도 길을 건너는 노인들이 상당하다.

뿐만 아니라 폐지 줍는 노인들은 도로에서 리어카를 끌고 다녀 차량과 사고가 날뻔한 아찔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 서울에서 발생한 무단횡단 사망자 중 절반이 65세 이상 고령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의회 교통위원회 추승우 민주당 의원이 서울시로부터 제출받은 ‘무단횡단으로 인한 교통사고 현황’을 보면 무단횡단 사고 사망자는 2017년 75명, 2018년 55명으로 최근 2년간 총 130명이었다. 한해 평균 65명이 무단횡단으로 사망하는 것.

서울시의 무단횡단에 대한 방지 정책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사망자가 끊이지 않고 있다. 올해 사망자까지 집계되면 그 수는 더 많아진다.

특히 65세 고령층이 차지하는 비율은 전체의 55%로 절반이 넘는다. 65세 고령층 사망 비율은 2017년 39명, 2018년 33명으로 집계됐다.
 
추 의원은 “최근 2년간 평균 65명이 무단횡단으로 사망하고 사망자의 55%가 65세 고령층에서 발생하고 있다”며 “단순히 무단횡단 방지시설을 구축하는 것보다 연령별 맞춤형 대책을 세워야 한다. 각 자치구와 협의해 해당 지역의 특성과 연령층에 대한 세부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동차는 움직이는 흉기다. 엄청난 속도의 쇳덩이와 맨몸으로 맞서는 것은 상대가 안 되는 싸움이다.

그러나 마치 당연한 권리처럼 많은 이들이 무단횡단을 시도한다. 바쁘다는 핑계로, 혹은 멀리 있는 신호등 때문에 불편해서 무단횡단을 하는 보행자들 때문에 운전자들은 깜짝 놀라게 되고 횡단보도의 역할은 무용지물이 돼 버린다.

무단횡단 및 횡단보도 교통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통법규를 준수하는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조급함과 편리함을 내세워 무단횡단을 하고 있는 보행자는 조금 불편하더라도 안전확보를 위해 반드시 횡단보도를 이용하고 횡단보도가 없는 구간인 경우 반드시 좌우를 살펴 안전을 확인한 후 건너야 한다.

빠른 길에 대한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선택한 무단횡단이 최악의 선택이 되지 않도록 올바른 보행습관을 들이는 것이 자신의 안전을 지켜주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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