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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명의 ,쉼표
[이상명의 ,쉼표] 위로와 사랑을 배우다
이상명 기자 (114@00news.co.kr)  2020. 01. 10

[공공뉴스=이상명 기자] 최근 지인의 강아지가 세상을 떴다. 엄마를 잃은 어린 아이에게 마음을 나눌 존재를 찾다 강아지를 원해서 입양한 지 3년 째.

화창한 주말 아침,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늦잠을 자고 부스스 일어났음에도 꼬리 흔들며 왈왈 짖어대는 소리와 함께 달려들던 흰색의 생명체가 보이지 않았다고 당시를 말한다.

두리번 거리던 순간, 욕실 앞에 쓰러져 있던 강아지를 발견하고 부랴부랴 동물병원으로 옮겼지만 끝내 사망하고 말았다는 것. 사망의 이유조차 모른 채 그저 기도가 막혀 질식사 했다는 말만 들었다고 한다.

사진=이상명 기자
<사진=이상명 기자>

엄마의 존재를 대신해 지인의 어린 자녀가 때로는 의지를 하고, 때로는 동생처럼 사랑하던 강아지라는 말에 마음 한 곳이 아련해진다.

아이는 밥도 먹지 않고 눈물만 보이며 다른 강아지의 입양조차 거부한다고 하니, 아이의 슬픔을 무엇으로 대신할 수 있을까.

지인 아이의 소식을 듣고 수십 년 전의 내 기억을 꺼내본다.

우리 집에서 기르던 강아지는 아니었지만 (단독주택 2층거주) 1층에 사시던 아주머니가 기르던 강아지와 나의 인연에 관한 이야기다.

아주머니는 홀로 아들 셋을 기르고 계셨는데 내 또래의 아이들이었다. 우리 집 1층으로 이사 온 며칠 후 하얀색 털을 가진 예쁜 강아지를 키우기 시작했다.

그 집 아이들은 강아지를 데리고 많은 장난을 쳤던 기억이 난다. 나름 예뻐하는 방식이었겠지만 내가 바라보는 강아지는 힘들어 보였으니까.

아래층 남자 아이들이 놀러나갈 때면 1층으로 내려가서 강아지를 안아주곤 했다. 때로는 내 간식을 나눠 주기도 하고, 추운 겨울이면 내 가슴에 품어주기도 하며 서로를 의지했던 것 같기도.

부모님이 모두 일을 하셨던 나는 늘 혼자였지만 아래층 강아지가 온 후로는 외롭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학교 갈 때도 집에 올 때도 나를 반겨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생각에 발길이 너무나도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어느 여름 날 저녁, 학원을 끝내고 집에 오는 길에 멀리서 꼬리 흔들며 내게 달려오는 아래층 강아지가 보였다. 냉큼 달려가서 한아름 안아줬더니 마치 강아지가 나를 보며 웃는 듯 행복했던 순간으로 내 기억에 오래도록 남아있다.

그리고는 강아지를 내려주고 나란히 걷는데 부지불식간에 커다란 개가 달려와서 아래층 강아지를 물로 이리저리 흔드는 게 아닌가.

짧은 반바지를 입고 있던 나는 강아지를 구해주고 싶었지만 나조차 물릴까 무서움에 그저 그 광경을 바라만 보고 있었을 뿐 속수무책이었다. 아래층 강아지는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순식간에 피범벅이 되고 말았다.

주변에 있던 동네 아저씨가 와서 그제야 커다란 개를 쫓아버렸지만 때는 이미 늦은 후.. 헐떡헐떡 숨은 쉬고 있었지만 예쁜 모습은 아니었다. 처참함 그 자체.

아래층 아주머니와 아이들에게 상황 설명을 했지만 그 때는 동물병원이라는 자체가 흔하지 않았고 동물이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는 생각조차 드문 세상이었다.

빨리 병원에 데려가서 살리자는 내 말에도 왜 남의 강아지를 데리고 이 사단을 벌여서 죽을 정도로 만드냐는 핀잔만이 이어질 뿐.

끝내 아래층 강아지는 내 곁을 떠났고 아침 등교 때고, 하교 때고 나는 다시 혼자가 됐다.

지금은 재활용을 버리는 날이 따로 있고 쓰레기는 따로 처리하지만 당시엔 재활용과 쓰레기의 개념이 없었다. 쓰레기통 안에 모든 걸 넣어 버렸고 그것을 쓰레기차가 와서 한꺼번에 쓸어 담아 실어가는 시스템이었다.

과자를 먹고 봉지를 버리려고 집 앞 쓰레기통을 연 순간..

지금 이 순간에도 차마 그 순간을 말로 잇기가 힘들다. 내 첫사랑이었으며 마음을 주었던 첫 번째 존재가 쓰레기통 안에 자질구레한 냄새나는 오물들과 섞여 있는 것을 본 심정을 어찌 글로 표현할 수 있으랴.

어린 가슴에 그 광경은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이요 아픔이었다. 아래층 아주머니에게 묻어주자고 제안했지만 듣는 둥 마는 둥.

눈물이 범벅이 된 나는 ‘뭉치’를 쓰레기통에서 꺼내 우리 집 마당에 묻었다. 살아있을 때는 없었던 이름 ‘뭉치’. 솜뭉치같이 예뻤던 그 아이를 그렇게 마음에서 보내준 기억이 난다.

요즈음에는 반려견들을 가족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저 하찮은 동물 따위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는 듯 하다.

지인도 자녀가 기르던 강아지가 죽자 애완동물 전문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르고 화장을 해서 그 뼈를 유리병에 담아 왔다고 한다.

생전 찍어두었던 사진을 액자에 넣어 유리병과 함께 아이 책상에 놓아주었더니 그치지 않고 울던 울움도 이제는 서서히 멈춰간다고.

지인이 찍어 보내 준 장례 사진을 보니 문득 어릴 적 내게 위로와 사랑을 가르쳐 준 ‘뭉치’가 생각나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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