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로가기
공공스토리
[공공story] 낭만 없는 캠퍼스
#대학가 군기 논란:전통이라는 명목하에 지속된 ‘악습’→선후배간 존중·배려 조직문화 만들기
김소영 기자 (114@00news.co.kr)  2020. 01. 15

[공공뉴스=김소영 기자] # ‘안타깝게도 대학 내 군기잡기 전통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나보다’ 30대 직장인 신모씨가 최근 대학군기 관련 뉴스기사를 읽은 후 처음 든 생각이다. 10여년 전 대학교 신입생 시절 신씨 역시 툭 하면 선배들에게 집합을 당하는 등 군기잡기 전통을 겪어왔지만, 어떻게 지성과 학문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에게 이런 저급한 전통이 생겼는지는 아직까지도 의문이 들었다. 대학 내에서 발생하는 후배 군기잡기는 내가 혹은 우리가 잘못한 경우도 있지만 그저 화풀이 대상으로 소비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신씨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에 인사를 할 때 90도로 하라던가, “안녕하십니까! XX학번 XXX입니다!”라는 인사법을 까먹지 말라고 윽박을 지른다던가 하는 식의 행태까지 자행됐다. 신씨의 기억 속 선배들은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삼수생에게도 욕을 했고 남다른 외모나 몸을 가진 동기에게 성희롱적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학과 관련 노동을 신입생에게 전가시키는 경우도 허다했고 먼 지역에서 통학하는 경우라도 학과행사에 출석할 것을 강요했다. 그때의 선배들이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신씨는 대학 1학년 시절을 망친 그들이 최대한 불행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이와 비슷한 사람들이 만든 기상천외한 전통들이 세간에 들통나 사회적 이슈가 될 때마다 신씨는 우리나라의 지성이 사실은 위태로운 상황인 것 같다는 우려도 들었다. 왜 지금의 시대에 이르러서도 일부 대학교와 학과 안에서 같은 일이 반복되는 건지 이유를 모르겠다는 신씨. 피해자들이 가해자로 돌변하고 악습을 계승하는 이런 상황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최근 논란이 된 전북 모 대학 신입생 공지글. <사진=SNS 캡쳐><br>
최근 논란이 된 전북 모 대학 신입생 공지글. <사진=SNS 캡쳐>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체벌, 기합, 군기잡기 등 대학의 지나친 선후배 문화가 폭로되면서 유쾌하지 못한 대학가의 인간관계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학문의 장이자 비슷한 또래가 모여 서로의 꿈을 이야기하는 곳인 대학에서 ‘후배’라는 이유로 선배에 의해 심리적, 언어적, 신체적 피해를 받는 사례가 매년 발생하고 있는 것.

실제로 교내에서 특정한 옷을 입지 못하도록 제한하거나 전화, 메신저를 보낼 때에도 규칙을 만들어 통제하기도 한다. 후배들이 규칙을 조금이라도 지키지 않으면 ‘집합’이라는 명목으로 한데 불러 모아 폭언을 퍼붓기도 한다. 심지어 폭행을 가하는 학생의 사례까지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다.

일부 학생들은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된다” “오래전부터 해 오던 학과 전통이다”라는 말로 대학 내 불법행위를 옹호하려 하고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학생들을 보복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회 통념과 현행법에 맞지 않는 행위를 전통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한 변명에 불과하다. 특히 폭언·폭행 등의 행동은 그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

# ‘신입생 군기 잡기’ 논란으로 곤혹 치른 전북 모 대학

최근 대학 커뮤니티와 SNS 등에 전북 지역 모 대학의 악습을 폭로하는 글이 올라와 논란이 인 가운데 해당 대학 측이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자체조사를 벌인 결과 문자를 보낸 사실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대학 측은 누군가 사실이 아닌 내용을 유포해 의도적으로 학교 이미지를 실추시키기 위해 한 행동으로 판단, 경찰에 수사 의뢰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 11일 전북 지역의 한 커뮤니티에는 ‘전북 모 대학의 신입생 공지 내용’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신입생 공지, 캠퍼스 내에서 지켜야할 것’이라며 단체 대화방 캡처 화면을 공개했다. 공지에는 선배들에게 연락하는 양식과 복장 양식, 인사 양식 등의 규칙이 담겨 있었다.

공개된 글에 따르면, 신입생이 선배에게 연락할 때에는 쉼표와 물음표, 느낌표 등 이모티콘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또한 0시∼09시에 연락 시에는 ‘이른 시간에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선배님’이라는 표현을, 21시∼0시에 연락 시 ‘늦은 시간에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선배님’이라는 표현을 쓰도록 했다.

날짜가 바뀌면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000입니다’라는 문장으로 말을 시작해야 하고 말끝마다 ‘선배님 혹은 교수님’이라는 존칭을 붙이도록 했다. 또 술을 마실 때면 반부대(반 부대표)에게 연락하고 반부대는 이를 선배에게 알리도록 했다.

복장 양식도 엄격했다. 찢어진 바지나 스키니, 슬랙스는 허용이 안 되며 키 높이 운동화와 구두 착용도 금지됐다. 캠퍼스 내에서는 에어팟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양말은 꼭 신어야 하며 머리는 귀가 보이게 묶어야 한다.

아울러 인사는 교수, 조교, 선배 순으로 해야 하며 3학년 선배가 있는 자리에서는 2학년에게 먼저 인사하지 말라고 했다.

해당 글은 SNS를 통해 순식간에 확산됐고 시대착오적이며 부조리한 내용에 많은 학생들이 분개했다.

사태가 커지자 대학 측은 곧바로 해당 글에 대한 진상파악에 나섰다. 각 학과 대표와 부대표 등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학내에 이러한 부조리가 행해지는 곳은 없었다는 게 학교 측 설명이다.

더욱이 이 같은 내용을 올린 사람이 해당 대학뿐만 아니라 타 대학 신입생 단체 대화방에도 똑같은 글을 올린 정황이 포착됐다.

이에 대학 측은 누군가 악의적인 의도를 가지고 허위사실을 유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일로 학교의 명예가 실추된 만큼 고소장을 경찰에 제출해 유포자를 반드시 잡아내겠다는 방침이다.

부산경찰청은 해마다 반복돼 사회 문제화 되고 있는 대학 내 악습 문화에 대해 대학생들이 스스로 고민하고 자정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대학가 악습근절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7년 4월30일 부산 남구 경성대에 설치된 대학가 악습근절 포스터를 구경하는 학생들의 모습. <사진제공=부산경찰청>

# ‘군기’라는 이름의 폭력, 대학가 젊은 꼰대들

전북 모 대학의 ‘신입생 군기 잡기’ 문자가 진위여부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해당 글의 파급력은 상당했다.

이 글이 누리꾼들의 공분을 사며 순식간에 퍼져나간 이유는 대학 내 군기잡기 문화가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돼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학 내 소위 ‘똥군기’로 불리는 악습은 잊을만하면 터지고 있다.

앞서 지난해 10월 충주의 한 대학에서는 에어팟을 길거리에서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는 글이 올라와 논란이 된 바 있다.

당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길거리 에어팟 금지”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게재됐다. 익명의 한 네티즌은 “저희 과 길거리 에어팟 금지”라며 “길에서 에어팟 사용하면 그 학번 전체 집합”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누리꾼들이 “진짜냐?”라며 믿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이자 에어팟이 금지됐다던 학생은 “기합 줄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무조건 죄송하다고 해야 한다”라고 했다.

2018년 3월에는 대학생 생활 앱인 ‘에브리타임’에 강원도 내 한 국립대학 예체능 학과의 군기 잡기 실태를 폭로하는 글이 잇따라 올라오기도 했다.

한 학생은 게시물을 통해 “억지로 춤을 시키고 춤 검사를 수시로 한다”며 “춤으로 선배들을 웃기지 못하면 분위기가 싸늘해지고 인사받는 것에 매우 집착한다”고 토로했다.

다른 학생도 “개강총회 때면 선배들 마음에 들 때까지 FM(큰 소리로 하는 자기소개)을 시킨다”며 “미리 공지도 없이 학교행사에 필참하라고 하고는 불참한다고 하면 열을 낸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다른 대학에서도 학번이 높은 선배를 대할 때 인사하는 매뉴얼과 염색, 화장 등에 대한 제한사항 그리고 모든 행사에 필수로 참석할 것과 선배에게 경어체를 쓸 것을 강조하는 메신저 대화 캡처본이 공개돼 많은 비판을 받았다.

또한 선배가 연락을 할 경우 5초 내에 모든 후배들이 답해야 하거나 후배들을 집합시켜 물리적 폭력까지 자행하는 경우도 있었다.

문제 인식은 있지만 보복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공론화가 쉽지 않고 ‘누군가 폭로해줬으면’ 하는 마음에 쉬쉬하는 사이 고질적 악습이 반복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진=알바천국>
<사진=알바천국>

# 인사·음주 강요에 복장제한까지..대학생 절반 ‘선배 갑질’에 당한 적 있다

한편, 폐단처럼 전해 내려오는 선배 ‘갑질’ 군기는 대학생의 절반 이상이 경험했다는 설문 결과를 통해 알 수 있듯 대학가에서는 공공연하게 자리잡고 있다.

알바천국이 2018년 2월19일부터 3월5일까지 전국 20대 대학생 회원 1028명을 대상으로 ‘대학 군기문화, 어떻게 생각하세요?’를 주제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대학생 79.6%는 대학 군기 문화에 대해 ‘어떤 이유에서든 사라져야 마땅하다’는 의견을 보였다. 반면 17.2%는 ‘조직생활에서 어느 정도 필요하다’, 3.1%는 ‘잘 모르겠다’고 응답했다.

대학생 10명 중 절반 꼴인 57.6%는 ‘대학교 입학 후 선배 갑질을 매우 경험했다’(13.9%), ‘어느 정도 경험했다’(43.7%)고 답했다. 선배 갑질을 ‘별로 느끼지 못했다’ 혹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라고 답한 응답자는 각각 24.1%, 18.3%였다.

가장 많이 경험한 선배 갑질 유형으로는 ‘인사 강요’(34%)와 ‘음주 강요’(18.4%)가 꼽혔다. 이어 ‘화장, 헤어스타일 등 복장제한 강요’(10.7%), ‘메신저 이용과 관련한 제재’(10.4%), ‘얼차려’(10.2%), ‘성희롱’(3.9%), ‘일방적인 폭행’(2.4%)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선배 갑질에 당한 적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 가운데 부조리 한 일을 직접 건의하거나 관련 기관에 신고한 이는 소수에 불과했다.

선배 갑질에 당한 후 대처 방법을 물어봤더니 54.1%의 응답자가 ‘선배가 무서워 어쩔 수 없이 참고 버텼다’고 답했으며 ‘동기들끼리 뭉쳐 해결했다’, ‘부조리함을 직접 선배에게 건의했다’, ‘학내·외 관련 기관에 신고했다’고 답한 응답자는 각각 15.7%, 8.1%, 3.9%에 그쳤다.

아울러 ‘선배 갑질에 당한 적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 중 88.8%는 선배 갑질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스트레스 정도에 대해 ‘스트레스는 받지만 이길 수 있는 정도’(60.8%), ‘학과생활(휴학) 및 공부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정도’(19.7%), ‘때때로 우울감을 느끼는 정도’(18.2%), ‘기타’(1.3%) 순으로 조사됐다.

대학 내 군기 문화는 서로를 동등한 인간으로 놓지 않고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원하는 일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생각에 기인한다.

또한 이 같은 갑질을 행하는 상당수가 문화, 관행이라는 미명 하에 ‘나도 당했다’라며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합법화하고 있는 상황.

그러나 관행이란 이름 아래 자행된 악습을 끊지 못한 채 사회인이 된다면 또 다른 갑질 문화에 순응하는 결과를 낳게 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상명하복 식 위계질서, 명령에 죽고 명령에 사는 폐쇄적인 군대식 관습이 한국 사회를 지탱하는 힘 중 하나로 작용하게 되는 것.

최근에는 대학 내 악습들이 활발하게 공론화되면서 점차 없어지는 추세지만 아직도 많은 학과들이 크고 작은 부조리를 후배들에게 강요하다가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매년 신입생이 겪는 ‘똥 군기’ 식 인권침해는 제도적, 인식적 자정이 절실한 상황이다. 부당한 일이라면 마땅히 질문하고 저항할 수 있다는 인식이 대학과 사회 전반에 필요한 때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대학 내에도 인권센터가 제도화돼 대학 내 군기 문화를 상시 고발 및 조사, 해결해야 하며 일반 교과목에서도 이 문제를 다룰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아울러 선배들은 적극적으로 군기문화라는 악습을 없애는데 나서야 할 것이며 대학생 스스로도 자신과 타인의 권리를 모두 존중하는 인권 의식을 높이는 한편 서로 연대해 부당한 권력에 대항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지성인의 자세를 갖춰 상호존중과 배려를 바탕으로 대학 문화를 만들어간다면 신입생과 선배들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캠퍼스 라이프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