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제2의 탈북모자 사망’ 막는다..탈북민 553명에 생계 지원

[공공뉴스=김수연 기자] ‘탈북민 모자 사망사건’을 접한 사람들은 어떤 생각들을 했을까. 그저 반복되는 비극 정도로만 생각했을까, 아니면 이 죽음에 대해 깊은 고민을 했을까.

살기 위해, 사람다운 삶을 살기 위해 위험을 무릅써가며 탈출해 도착한 대한민국에서 사고나 병으로 죽은 것도 아닌 만약 굶어 죽었다면, 우리나라는 사망한 탈북민이 꿈꾸던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니었다는 점을 방증한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탈북민의 사망사건이 반복되면서 새로운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탈북민 중 육아 과정을 겪는 여성의 비율이 적지 않은 만큼 여성 탈북민에 대한 정책·사업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무엇보다도 한국사회에서 동등한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탈북민에 대한 지속적인 정책 지원과 따뜻한 관심이 필요해 보인다.

지난해 8월2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 장애인과가난한이들의3대적폐폐지공동행동, 한국한부모연합 주최로 열린 ‘가난 때문에 세상을 떠난 관악구 모자의 추모제’에 참석한 이삼헌 무용가가 진혼무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해 탈북민 모자 사망사건을 계기로 탈북민 취약계층 전수조사를 실시한 정부가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탈북민 553명을 대상으로 긴급 지원에 나선다.

통일부는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탈북민 취약계층 전수조사’를 실시한 결과 국내에 거주하는 전체 탈북민 3만1000여명 가운데 긴급지원이 필요한 ‘위기의심자’가 총 553명으로 파악됐다고 21일 밝혔다.

이들이 필요한 지원 서비스는 총 874건이다.

정부가 탈북민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실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서울 관악구에서 발생한 탈북민 모자 사망 사건 대책의 일환으로 이른바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탈북민을 발굴, 필요한 지원을 하기 위해 실시됐다.

1차 조사는 지난해 9월 말부터 두 달간 전체 탈북민 가운데 생계·의료급여 수급자, 고용보험 가입자(정규직), 중복인원 등을 제외한 3052명을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373명이 위기의심자로 선정됐다.

같은 해 12월에는 보건복지부 취약계층 사각지대 발굴시스템에서 파악된 탈북민 위기가구 의심자 783명을 대상으로 2차 조사를 진행해 위기의심자 180명을 추가로 선정했다.

1·2차 조사 대상자(3835명) 가운데 약 14.3%가 긴급 지원이 필요한 위기의심자로 파악된 것이다. 국내에 거주하는 전체 탈북민을 기준으로 하면 약 1.7%가량이다.

하나재단과 지방자치단체 등에서는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긴급 지원 절차를 추진하고 있다. 위기의심자들을 대상으로 위기 정도에 따라 긴급 생계비나 의료비 등을 1인당 정해진 횟수와 한도 이내에서 지원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이달 중 복지지원 신청 여부를 점검하고 신청 누락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할 방침이다.

또한 통일부는 ‘찾아가는 상담지원’을 통해 정례적으로 위기가구 실태조사(연 2회)를 추진할 계획이다. 또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한 추가 대책의 일환으로 하나재단과 복지부의 탈북민 관리 시스템을 연계하는 등의 방안도 추진 중이다.

지난해 8월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탈북민 모자 아사’ 긴급 정책 토론회에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앞서 지난해 7월 말 서울 관악구에 있는 한 임대아파트에서 탈북민 한모(42)씨와 아들 김모(6)군이 숨진 채 발견되면서 탈북민 위기 가구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커졌다.

탈북민 모자 사망사건 뿐만 아니라 생활고 때문에 숨지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같은 해 8월에는 안양의 고시원에서 살던 40대 탈북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이 남성의 방에서는 ‘부모님 만수무강 바랍니다’라고 적힌 유서가 발견됐다. 그는 2005년 한국에 들어온 후 기초생활수급자 지원을 받아 생활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불과 며칠 전에는 60대 새터민(탈북자)이 산에서 숨진 채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탈북 후 10여년 동안 홀로 지내다 ‘사는 게 힘들다’는 메모를 남긴 채 돌연 잠적했던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대구 수성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17일 오전 10시20분께 수성구 한 공동묘지 인근 능선에서 A(62)씨가 숨져 있는 것을 중앙119구조본부 구조견이 발견했다.

A씨는 14일부터 지인들과 연락이 끊겼다. 숨진 A씨의 집 안에서는 ‘사는 게 힘들다’는 내용의 메모가 발견됐다.

A씨는 2008년 탈북한 후 별다른 직업을 갖지 못했고 가정도 꾸리지 않은 채 임대 아파트에서 생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A씨가 생활고 등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인을 조사할 방침이다.

한편, 긴급생계비를 지원받은 북한이탈주민의 수는 감소한 반면 1인당 평균 지원 금액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탈북민들의 건강‧생계 등 긴급한 상황이 더 악화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박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으로부터 제출받은 ‘긴급 생계비 지원’ 자료를 살펴보면 긴급생계비를 지원받은 북한이탈주민은 2016년 292명, 2017년 248명, 2018년 206명, 2019년(8월 기준) 99명으로 감소했다.

다만 지원금액의 총액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2016년 1억4392만9000원, 2017년 1억5250만원, 2018년 1억4913만2000원으로 연도별 지원금액이 1억5000만원 선으로 거의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이에 따라 1인당 평균 수급액은 2016년 49만3000원, 2017년 61만5000원, 2018년 72만4000원으로 증가했다. 북한이탈주민의 숫자는 줄었지만 상태는 심화된 셈이다.

박 의원은 “탈북민 정착지원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는 만큼 이제는 효율적인 운영에 신경 써야 한다”며 “상담 및 사례관리 강화, 탈북민 커뮤니티 지원 등 생활 밀착형 접근을 통해 위기 가늠자를 조기에 발굴하고 탈북민 고립을 예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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