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로가기
공공스토리
[공공story] 나도 잠재적 피해자
#택시기사 폭행:욕설에 폭행까지 반복되는 주취 범죄→배려와 이해로 악순환 끊어내기
김수연 기자 (114@00news.co.kr)  2020. 02. 16

[공공뉴스=김수연 기자] # 택시운전을 30년 동안 해온 베테랑 기사 허모씨. 그는 어느 날 만취한 승객을 태우고 운전을 하게 됐다. 그러던 중 승객 A씨가 술에 잔뜩 취해 허씨에게 계속 시비를 걸어왔고, 이에 허씨는 가볍게 대답해주며 다툼을 피하고 있었다. 그러자 A씨는 자신을 무시한다며 운전 중인 허씨에게 차를 세우라고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허씨는 A씨를 달래면서도 안전한 곳을 찾아서 차를 세우려고 했으나 A씨가 갑자기 뒤에서 허씨의 옆구리를 발로 걷어 차버리는 바람에 하마터면 큰 사고가 날 뻔했다. 황급히 도로변에 차를 세운 허씨는 폭행 뒤 차에서 내린 A씨를 뒤따라가 붙잡았지만, 돌아온 건 사과 대신 또 다른 폭행이었다.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술에 취한 승객들의 잇단 폭행으로 택시기사들이 불안과 공포 속에 운전대를 잡고 있다. 하루에 8명, 택시·버스 등 대중교통 운전자가 폭행당하는 평균 숫자다.

승객은 자신이 원하는 길로 가지 않았다며, 단지 기분이 나빴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별 다른 이유도 없이 대중교통 차량을 운전하는 기사들을 폭행하고 있는 실정.

승객으로부터의 폭언과 폭행에 시달려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생겨나면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으나 운전기사를 폭행해도 대부분 집행유예 등 솜방망이 처벌에 그쳐 악순환이 계속된다는 지적이다.

# 때리고 욕하고..만취 승객이 두려운 택시기사들

지난달 10일 전북 전주시 효자동에서 만취한 20대 승객이 택시기사를 무차별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고 이보다 앞선 8일에는 경기 남양주시 화도읍 한 주택가에서 만취 승객이 택시기사를 폭행하고 귀를 물어뜯어 40바늘이나 꿰매는 사건이 발생했다.

또한 1월 말 술에 취해 택시기사를 마구 폭행한 20대가 불구속 입건됐으며 폭행당한 택시기사는 얼굴 등에 전치 2주의 상처를 입었다. 이달 15일 역시 술에 취한 현직 경찰관이 택시기사와 경찰관을 폭행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만취한 승객이 택시기사를 무차별 폭행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지만, 폭행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집행유예에 그치는 경우가 허다했다. 실제로 운전 중인 택시기사를 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승객이 법원으로부터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의정부지법 형사합의11부(강동혁 부장판사)는 특가법상 운전자 폭행 등의 혐의로 기소된 B씨에게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사회봉사 40시간을 명령했다고 16일 밝혔다.

B씨는 지난해 9월 경기 남양주시의 한 도로에서 신호 대기 중인 택시 안에서 60대 택시기사 C씨를 마구 때린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 조사 결과 B씨는 택시에 탑승해 뒷좌석에 앉은 뒤 목적지를 돌아간다며 C씨와 시비가 붙었다. B씨는 운전 중인 C씨의 눈과 얼굴 등을 수차례 때렸고 이로 인해 C씨는 왼쪽 눈의 망막이 찢어져 수술을 받았다.

앞서 지난해 12월에는 신호를 무시하고 빠르게 달리라는 요구를 거부한 택시기사를 폭행한 50대 남성이 집행유예를 선고받기도 했다.

청주지법 형사11부(나경선 부장판사)는 지난해 12월26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운전자 폭행 등)과 재물손괴 혐의로 기소된 D씨에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2017년 6월10일 오후 8시25분께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에서 술에 취한 상태로 택시에 탄 D씨는 택시기사에게 “신호를 위반해 빨리 가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택시기사가 이를 거절하자 D씨는 택시기사를 수차례 폭행해 전치 2주의 상해를 입힌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또 D씨는 택시에 설치돼 있던 내비게이션을 주먹으로 부순 혐의도 함께 받고 있다.

재판부는 “운전자뿐만 아니라 다른 차량 등의 안전을 위협해 자칫 큰 인명피해를 일으킬 수 있었다는 점에서 죄질이 가볍지 않다”며 “범행 경위와 수법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판시했다.

아울러 황당한 이유로 폭행을 가한 이들에게도 집행유예 선고가 내려졌다. 지난해 7월 자신의 보행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택시기사에게 욕설 및 폭행을 가한 50대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고 같은 달에는 충전기가 없다는 이유로 택시기사를 폭행한 20대가 법원으로부터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 택시기사, 폭행에 울고 솜방망이 법에 또 운다

시민들의 소중한 발이 돼주는 고마운 대중교통. 그러나 이처럼 대중교통수단인 버스나 택시기사를 폭행하는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

실제로 최근 5년간 운행 중인 자동차 운전자에 대한 폭행이 1만4544건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운전자 폭행은 해당 피해자뿐 아니라 불특정 다수에 대한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죄를 엄중히 물어야 하는 심각한 범죄에 속한다. 대중교통 운전자에 대한 위협과 폭행이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어 지속적인 단속 및 강력한 처벌이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최근 5년간(2014~2018년) 운행 중인 자동차 운전자에 대한 폭행 건수는 1만4544건으로 집계됐다.

검거 건수는 1만4443건, 검거 인원은 1만5200명으로, 하루 평균 8건 가량 자동차 운전자 폭행 사건이 발생한 셈.

지역별로는 서울이 4652건으로 전체 사건발생건 중 32%로 가장 많았고 경기 2891건(19.9%), 부산 1396건(9.6%) 순이었다.

운전자 폭행 감소를 위한 지속적인 경찰의 노력으로 2017년 대비 2018년의 운전자 폭행 발생건수 증가율은 다소 감소했으나 광주(25.4%), 경남(13.6%), 전남(11%), 대구(4.1%) 등은 오히려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운행 중인 자동차 운전자를 폭행하거나 협박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상해에 이르면 3년 이상의 징역, 사망에 이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범죄의 심각성에 비해 처벌은 솜방망이에 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도로 한복판에서 운전 중인 기사를 때리거나 상습범이 아닌 이상 대부분 벌금 100만원 정도의 가벼운 처벌이 대부분이다.

버스도 문제지만 심야운행이 많은 택시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늦은 밤 술에 취해 귀가하는 승객이 많아 안전이 취약한 데다 가해자를 신고하더라도 목격자가 없어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운전기사 폭행 사건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자 이명수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달 20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이는 승객이 택시 또는 버스 운수종사자에게 정당한 사유 없이 폭언이나 욕설을 하는 경우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함으로써 택시 또는 버스 운수종사자를 무례한 승객으로부터 보호하려는 것이 골자다.

아울러 시내버스처럼 택시도 보호격벽 설치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기도 했다.

이에 서울시가 택시기사 보호를 위해 보호격벽 설치비용의 50%를 지원하는 사업을 펼쳐 택시 236대에 보호격벽을 설치한 바 있다.

하지만 이는 서울 택시 7만2000여대 가운데 0.3%에 해당하는 수치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참여율이 낮아 목표치를 다 채우지 못했고 결국 보호격벽 지원 사업은 보류됐다.

택시 격벽은 운전석과 승객이 타는 공간을 분리하는 투명 재질의 벽으로, 직접적인 접촉을 막아 폭행을 막는다. 미국과 일본, 유럽 등 해외 선진국들에서는 택시기사 보호를 위한 격벽이 대부분 설치돼 있으며 호주는 보호격벽 설치가 의무화돼 있다.

특히 미국과 캐나다의 사례를 보면 택시 격벽을 설치한 도시의 경우 운전자에 대한 가해범죄가 80~9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은 전체 택시의 70% 정도에 설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 치명적인 사고 유발하는 운전기사 폭행, 악순환의 고리 끊어내야

이미 몇 년 전부터 운전기사 폭행에 대한 사회적 문제 지적과 이에 대한 해결책에 대한 논의는 있어 왔지만 반짝 주목을 받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가라앉기 일쑤였다.

이 때문에 운전기사 폭행 사건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음에도 솜방망이 처벌에 머무는 현실이다. 이렇듯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상황에 운전기사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종사자들은 불만과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운전기사들은 자신들에 대한 폭행이 줄지 않고 있는 것은 처벌 수위에 비해 실제 처벌 수위가 너무 낮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즉, 실효성이 미약하다는 의미다.

끊이지 않는 폭행 사태에 대해 운전기사들 모두가 ‘잠재적 피해자’라고 말한다. 자신들이 아무리 모욕적인 말을 듣거나 안전에 위협을 받더라도 도로 위 교통안전을 위해서는 운전대를 놓을 수 없고 전방에서 시선을 뗄 수 없기 때문에 참을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는 것.

운전자를 폭행하거나 협박하는 행위는 단순히 운전을 방해하는 것보다 더욱 위험하다.

폭행 및 협박에 노출되면 사람은 누구나 불안감과 공포심을 느끼며 이러한 심리적 변화가 판단력, 대처능력, 순발력 등의 인지능력이나 신체능력을 크게 저하시켜 운전하기 어려운 상태가 될 수 있기 때문.

더욱이 폭행으로 운전자를 다치게 한 경우 시야 방해 등과 같은 위급한 상황으로 인해 사고 위험성이 크게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운전기사 폭행은 단순히 그 기사 한 명에게만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라 기사와 탑승자 그리고 불특정 다수의 운전자와 보행자에게까지 큰 위협이 되는 범죄다.

그러므로 운전 중에 폭행을 가하는 행위가 어떤 결과를 야기할 수 있는지, 교통안전을 얼마나 위협하는지 알고 매우 위험한 행위라는 것을 인식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나아가 택시기사를 보호할 대책 마련은 물론, 솜방망이 처벌이 아닌 확실한 법 제정으로 경각심을 일깨우는 등 보다 실질적인 안전 대책이 필요하다. ‘음주 시 심신미약’으로 보고 처벌을 경감해주는 관례와 법안을 올바르게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운전기사와 시민들의 인식 개선 역시 중요하다. 운전기사는 손님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준다는 프로 의식과 책임감을 가지고 서비스를 해야 하며 시민들은 이러한 운전기사를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가슴 깊은 곳에 새긴 채 서비스를 이용해야 할 것이다.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는 따뜻한 시선이 늘어날수록 운전기사 폭행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