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참위, 18일 ‘최초 가습기살균제 개발경위 등 조사결과 발표’ 기자회견
‘살생성분’ 원료 벤치마킹..국내 흡입독성시험 기준 있었으나 검토 전무

[공공뉴스=김소영 기자] 15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한 가습기살균제 참사 사건과 관련해 1990년대 최초 가습기살균제 개발 당시 국내 흡입독성시험 기준이 있었으나 제품을 출시한 기업 단 한 곳도 안전성 검토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사참위) 가습기살균제사건진상규명소위원회는 18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 18층 사참위 대회의실에서 ‘1990년대 국내 가습기살균제 개발 및 출시 상황과 시장형성 과정’에 대한 조사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날 사참위는 “1994년 유공에서 가습기살균제를 출시한 후 국내 가습기살균제 시장이 형성된 과정을 조사하고, 국내 굴지 생활용품 기업들이 잇따라 안전성 검증 없이 가습기살균제를 내놓으면서 제품 공급이 무분별하게 확대된 과정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18일 서울 중구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최초 가습기살균제 개발경위 및 제품공급 과정 조사결과 발표’ 참석자들이 기자회견에 앞서 묵념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유정 가습기살균제 조사1과 과장, 최예용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부위원장, 이하영 가습기살균제 조사1과 조사관. <사진=뉴시스>

사참위에 따르면, 1994년 국내 최초 가습기살균제인 ‘유공 가습기메이트’가 안전성 검토를 거치지 않은 채, 인체에 해가 없다는 허위광고를 통해 출시됐다. 이후 국내에는 다양한 살생성분을 사용한 가습기살균제 시장이 형성됐고, 2020년 현재까지 총 48종 제품이 판매됐다. 

가습기살균제를 원료에 함유된 화학물질별로 7개 군으로 분류하면 ▲CMIT·MIT 성분 제품 15개(전제 제품 수의 약 30%) ▲BKC 성분 제품 2개 ▲PHMG 계열 성분 제품 5개 ▲PGH 성분 제품 2개 ▲에틸알코올 성분 제품 2개 ▲NaDCC 성분 제품 3개 ▲산화은 등 기타 물질 성분 제품 10개 등이다. 성분 미확인 제품도 9개였다. 

사참위는 1994년 유공 가습기메이트 출시 이후, 옥시, LG생활건강, 애경산업 등이 이를 벤치마킹해 살생성분 등 가습기살균제 원료를 결정하고 제품을 출시한 과정을 확인했다. 

1994년 유공은 샴푸 등의 제품에 두루 사용되는 보존제인 CMIT·MIT가 1.5% 함유된 Kathon CG를 원료로 결정한 후 ‘가습기메이트’를 출시했다. 

1996년 옥시는 유공 가습기메이트, 독일의 기화식 가습기에 사용하는 세정제 등을 비교한 후 독일 제품에 함유된 화학물질 BKC를 선택해 ‘옥시 가습기당번’을 출시했다. 옥시는 이후 2000년 10월 BKC에서 PHMG로 살생성분을 변경했다. 

또한 LG생활건강은 1997년 유공 가습기메이트, 옥시 가습기당번 등을 비교한 후, 옥시 제품에 함유된 BKC를 선택해 ‘119가습기세균제거’를 내놨다. 애경도 1997년 타사 가습기살균제 제품을 비교한 후 CMIT·MIT를 선택해 ‘파란하늘 맑은 가습기’를 출시했다. 

사참위는 1990년대 초기 가습기살균제 시장형성 과정에서 이들 중 어느 기업에서도 제대로 된 안전성 검증과정을 거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제품에 대한 안전성 검증을 위해, 이들 기업은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이영순 교수실에 흡입노출시험 의뢰(유공)와 미국 연구소에 급성흡입독성시험 의뢰(옥시), 살균력 시험 및 유해물질 검사 의뢰(LG생활건강), 증기 테스트 실시(애경) 등을 거쳤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제대로 된 안전성 검증은 아니었다고 사참위는 지적했다. 

더욱이 유공, 옥시, LG생활건강은 해당 시험결과가 도출되기도 전에 제품부터 먼저 출시했다. 또 가습기살균제는 사용시 인체에 흡입되는 형태의 제품이므로 안전성 검증을 위해서 반드시 흡입독성시험을 실시했어야 했으나, 그 어느 기업도 실시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사참위는 “조사결과 1990년대 당시 과학기술 수준에 비춰 보더라도 기업들이 제품 출시 전에 흡입독성시험 등 인체 안전성 검토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며 “1990년대 이미 국내에 흡입독성시험에 대한 기준이 마련돼 있었다”고 말했다. 

1992년 국립환경연구원(현 국립환경과학원)은 OECD 시험지침 및 각국의 시험방법을 비교·검토해 시험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규정하고 시험방법(안)을 마련해 ‘화학물질의 환경위해성 평가연구(Ⅱ)’를 발간했다. 여기에는 급성 흡입독성시험 등에 대한 시험방법 원리, 시험보고서 작성방법 등이 제시돼 있었다.

또한 1990년대 해외에도 현재 국내수준과 같은 흡입독성시험기관이 있었다. 미국, 일본 등의 흡입독성시험 기관에서는 화학물질 흡입 시 흡수, 분포, 대사, 배출에 관련된 연구 등과 같은 다양한 연구가 수행되고 있었고, 흡입독성시험 관련 연구논문이 다양하게 발표됐다. 

유공 가습기메이트 라벨에 표기된 ‘인체에 해가 없습니다’라는 문구가 다수의 가습기살균제 제품에서 동일하게 또는 유사하게 적용된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 유공 가습기메이트를 포함해 총 19개 제품의 라벨에 “인체에는 전혀 해가 없습니다.”, “인체에 안전한”, “인체 무해” 등의 문구가 표기됐다.

최예용 가습기살균제사건진상규명소위원장은 “기업들은 ‘제품 개발당시국내에 제대로 된 기준이 없었다. 당시 과학기술 수준에 비춰 최선을 다했다’고 주장하지만, 1990년대 이미 국내에 흡입독성실험 기준이 마련돼 있었고, 해외에서는 흡입독성실험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1990년대 안전성 검증을 하지 않아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손해도 입지 않는다는 잘못된 경험이 결국 2000년대까지도 이어져 가습기살균제 시장이 더욱 확대되고 피해자가 증가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관련 기업들은 이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지 그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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