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 타깃 흉악범죄:신상공개 범죄자 급증..공포감 확산→엄격 잣대로 처벌 요구

[공공뉴스=김수연 기자] # 50대 여성 한모씨는 서울에서 홀로 자취를 하는 딸에 대한 걱정이 최근 더 많아졌다. 딸이 직장 때문에 혼자 살게된 지 10년이나 됐지만, 요즘 유난히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는 까닭이다. 특히 한씨의 딸은 과거 한 차례 ‘데이트 폭력’ 피해를 당한 경험이 있고, 전 남자친구가 헤어진 후에도 1~2년 동안 연락을 해오거나 집에 무작정 찾아오기도 해 엄마의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한씨의 딸은 전화 통화에서 엄마의 걱정 섞인 말에 “괜찮다”며 안심시켰고, 한씨는 그런 딸에게 문제가 발생할 경우 곧바로 경찰에 신고할 것을 신신당부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씨의 마음은 편해지지 않았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따르면,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범죄 사건 혹은 성폭력범죄이며 ▲피의자가 그 죄를 범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고 ▲국민의 알권리 보장 및 피의자의 재범 방지 및 범죄 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피의자가 청소년보호법상 청소년에 해당하지 않을 때 피의자의 얼굴 등 신상을 공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올해는 강력범죄 피의자 신상정보 공개 제도가 생긴 2010년 이래로 연간 기준 가장 많은 범죄자들의 얼굴과 이름, 나이 등 신상이 공개됐다.

지난 2009년 강호순 연쇄 살인사건 이후 흉악범의 얼굴을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고, 이듬해 4월 해당 규정이 신설됐다. 

# 잇단 강력범죄 사건에 공포감 확산

19일 경찰청에 따르면, 이날 현재까지 신상이 공개된 범죄자는 올해 총 10명이다. 특히 한 해를 즐겁게 마무리하는 연말, 흉악범죄 소식이 잇따랐고 최근 한달 새 3명이 범죄자 얼굴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경찰은 이달 10일 헤어진 여성의 어머니를 살해한 25살 이석준의 신상정보를 14일 공개했다. 서울경찰청은 내부위원 경찰 3명과 외부전문가 4명 등 총 7명으로 구성된 신상정보 공개심의위원회를 열고 이석준의 신상정보 공개를 결정했다. 

이석준은 10일 오후 2시30분께 전 여자친구 A씨 주거지인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한 빌라를 찾아 A씨 어머니와 10대 남동생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A씨 어머니는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숨졌고, 남동생은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당시 신상정보 공개심의위는 “유사범행 예방 효과 및 2차 피해 우려 등 공공의 이익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정”이라고 신상정보 공개 배경을 설명했다. 

이보다 앞선 9일에는 중년 여성과 공범을 연이어 살해한 권재찬(52)의 신상이 공개됐다. 권재찬은 4일 오전 인천 미추홀구의 한 건물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50대 여성 B씨를 살해한 뒤 B씨 카드를 이용해 수백만 원을 인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한 다음날 을왕리 야산에서 공범인 40대 남성 C씨도 둔기로 때려 살해하고 시신을 암매장한 혐의도 있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금품을 노린 계획적 범행으로 판단했고, 권재찬이 공범 C씨에게 뒤집어씌우기 위해 범행에 끌어들인 뒤 계획적으로 살해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지난달 24일에는 서울 중구에서 신변보호를 받던 전 여자친구를 살해한 김병찬(35)의 신상이 만천하에 드러나기도 했다. 

김병찬은 지난달 19일 오전 11시30분께 서울 중구 소재 한 오피스텔에서 전 연인이던 30대 여성을 흉기로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범행 직후 대구로 도주했던 김병찬은 다음 날 동대구역 인근 호텔에서 경찰에 체포됐다. 

김병찬은 전 여자친구를 스토킹하다가 접근금지 등 조치를 받았다. 이에 앙심을 품고 찾아가 살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노원 세모녀 살해사건’ 피의자 김태현(25), ‘인천 노래방 살인사건’ 허민우(34), ‘제주 중학생 살해사건’ 백광석(48)·김시남(46), ‘전자발찌 훼손 연쇄 살인사건’ 강윤성(56), ‘남성 1300명 몸캠 피싱’ 김영준(29),  ‘남자 아동 성착취물 제작·유사상간’ 최찬욱(26) 등의 신상이 공개됐다. 

신변보호를 받고 있던 전 여자친구의 집을 찾아가 어머니와 동생에게 흉기를 휘두른 혐의로 구속된 이석준이 지난 17일 오전 서울 송파구 송파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신변보호를 받고 있던 전 여자친구의 집을 찾아가 어머니와 동생에게 흉기를 휘두른 혐의로 구속된 이석준이 지난 17일 오전 서울 송파구 송파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신상공개 흉악범죄자 올해 ‘최다’

경찰은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근거로 피의자 신상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특정강력범죄 제8조의2에 따른 신상공개 목록을 살펴보면, 2010년부터 총 29명의 ‘강력범죄 피의자’ 신상이 공개됐다. 

특정강력범죄 외 성폭력특별법 제25조에 따라 공개된 ‘성폭력범죄 피의자’는 모두 9명이다. 이들은 대부분 ‘n번방 성착취물 제작 및 유포 사건’ 관련 피의자다. 조주빈을 시작으로 강훈, 이원호, 문형욱, 안승진, 남경읍의 신상이 지난해 잇따라 공개됐고, 미성년자 및 성인 성착취물 제작 유포 등 혐의를 받고 있는 배준환도 포함됐다. 

올해 신상이 공개된 범죄 피의자 총 10명 중 강력범죄자는 8명, 성폭력범죄자는 2명이다. 

특히 강력범죄 피의자의 경우 지난해에는 2명의 신상공개가 이뤄졌는데, 올해는 8명으로 대폭 늘었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흉악범죄가 들끓었다는 방증이다. 신상정보 공개심의위 운영지침이 마련된 2015년 이후 가장 많은 규모다. 

올해는 유난히 스토킹 관련 강력 범죄가 눈에 띄었다. 10월21일부터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됐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는 피해 당사자나 그 가족이 살해되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해 공포감을 키웠다. 

강력범죄는 폭력이나 무기를 사용해 저지르는 범죄를 의미한다. 살인, 살인미수, 강도, 강간, 방화 등이 강력범죄 범주에 포함된다. 이 같은 끊이지 않는 강력범죄에 대한 대응은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선 후보 공약으로 제시되기도 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17일 당선 즉시 ‘흉악범죄와의 전쟁 선포’를 공약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26년간 검사로서 형사법집행을 해온 전문가로서 제가 국민의 안전을 확실히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또한 윤 후보는 “영국 정치사상가 토마스 홉스가 말했듯 시민의 안전을 지키지 못하는 국가는 국가가 아니다”라며 “탁상·전시 행정이 아닌 현장을 중시하는 실사구시의 자세로 근원적 해결책을 모색하겠다. 흉악범죄와의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 ‘약자 범죄’ 강력 처벌..비겁한 사회와 작별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 얼굴 등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범죄자 스스로의 재범률을 낮추고 사회 경각심을 높여 범죄 예방을 기대하는 효과가 있다. 또 흉악범 신상을 알고 스스로 보호할 수 있도록 국민의 알권리도 중요하다.

그러나 신상공개가 결정됐음에도 피의자 방어권이 보장돼 있다는 점에서 비판 목소리도 적지 않다.

국가경찰위원회는 지난달 11일 신상공개 결정 전 피의자에게 사전 통보하고 본인 의견을 제출할 기회를 주기로 한 내용의 ‘피의자 얼굴 등 신상공개 지침 일부개정지침안’을 조건부 원안 의결했다. 

여기에서는 당초 경찰청이 상정한 지침안 중 ‘호송·송치 등 경찰관서 출입 또는 이동 시 모자나 마스크 등으로 가리지 않는 방법으로 자연스럽게 피의자 얼굴을 노출시키는 방법으로 공개’ 부분에서 ‘모자나 마스크 등으로 가리지 않는 방법으로’를 삭제하도록 했다.

이를 두고 신상공개 결정이 내려진 피의자가 얼굴을 가릴 수 있도록 여지를 준 것이라는 지적이 일었다. 

이와 관련, 한 누리꾼은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경찰이 신상 공개 전 피의자한테 말하고 공개·반대를 결정한다고 한다. 이건 말이 안 된다”며 “공익보다 피의자 인권 우선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주장했다. 

이어 “잔인하게 살해 당한 피해자 생각은 안 하고 피의자 인권만 생각하나. 잔인한 피의자 신상을 공개해야 국민들이 보고 알아서 피할 것 아닌가”라며 “(피의자가) 출소하면 또 다른 피해자 만들 것인가”라고 분노했다. 

월드통계 사이트 ‘NUMBEO’의 ‘2021년 중반 국가별 범죄지수’ 따르면, 세계 137개국 가운데 한국은 117위다. 범죄지수 26.68, 안전지수 73.32로 세계 21번째로 안전한 나라로 나타났다. 

이렇듯 한국의 치안은 전세계에서도 상위권에 속한다. 카페에서 노트북이나 휴대폰 등 고가의 물건들을 놓고 화장실을 가거나, 밤늦게까지 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다는 점도 치안이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강력범죄 사건은 한국의 이미지에 생채기를 내고 있다.

특히 문제는 강력범죄 대부분이 약자를 타깃으로 하고 있다는 점. 피해자들은 건장한 남성보다 여성, 어린아이, 노인 등이 대부분이다.

실제 그동안 발생한 사건들을 살펴보면 일면식도 없는 묻지마 범죄 또는 계획적 범죄의 범행 대상으로 피의자들은 대개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골라왔다. 

범죄자의 분노와 공격성이 사회적 약자에게 집중되고 있는 점은 상당히 비겁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자신보다 강하다고 느껴지는 사람에게는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사회에서 느끼는 박탈감과 분노 등을 약자에게 표출하며 피해를 입히고 있는 것.

범죄의 표적이 된 약자들을 제대로 보호하고, 약자들에게 자행된 범죄에 대해서는 더욱 강력하고 엄격한 잣대로 처벌이 이뤄져 비겁한 사회와의 영원한 작별을 맞이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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