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력 많은 대통령 배출해온 미국
비여의도 출신 대통령 선호하는 한국

[공공뉴스=장원윤 기자] 윤석열 대통령과 이준석 여당 대표 간 갈등이 극단을 치닫고 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예전에도 자주 일어났다. 김대중 대통령을 마지막으로 대통령이 여당 대표를 겸하는 관행이 끝난 2002년 이후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인사들은 항상 반목과 갈등을 반복했다. 당정분리가 정당 민주화를 낳을 것으란 기대와 달리 당정갈등을 일상화하며 우리 정치의 발전을 가로막는 모양새다. 어느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2002년 이후 우리 정치에서 반복됐던 당정갈등의 역사를 되돌아 보고 그 원인을 분석해본다.<편집자 註>

고 노무현 대통령 시절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전 대통령<사진=뉴시스, 문재인 캠프 제공>
고 노무현 대통령 시절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전 대통령<사진=뉴시스, 문재인 캠프 제공>

항상 불편했던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인사들과의 관계, 그런데 대통령의 출신 정당에 따라 양상은 달랐다. 상대적으로 국민의힘 계열 정당이 집권했을 때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인사들은 보다 직접적으로 그리고 격렬하게 갈등했다.

그렇다면 민주당 계열 정당이 집권했을 때는 어떠했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처럼 여당과 거리를 뒀다. 따라서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처럼 당정갈등 전면에 서진 않았다. 다만 대통령에 대한 조금의 문제제기도 허용하지 않고 문자폭탄으로 대응하는 지지자 그룹이 있었다.

그래서 현재 일부 야당 인사는 이런 분위기 때문에 당내 건전한 비판이 억제됐고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자정기능 마비를 불러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것이란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처럼 민주당 계열 정당이 여당일 때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인사들은 직접적으로 충돌하지 않았다. 최소한 표면적으로는 당정분리 원칙을 존중한다. 그 대신 대리전이 펼쳐진다. 대통령을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정치인 또는 지지자 그룹이 당 지도부를 비판하고 더 심해지면 지지자 그룹 간 여론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대통령을 편드는 사람들과 여당 주요 인사를 편드는 사람들로 나뉘어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논쟁을 펼치는 것이다. 이처럼 양상만 다를 뿐, 2002년 이후 모든 정권에서 당정갈등이 나타났다. 그리고 이것이 정권의 기반을 매우 취약하게 만드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도대체 이러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처럼 대통령 중심제를 운영하는 미국과 비교해보면 그 답이 의외로 쉽게 도출될 수 있다.

미국과 우리나라를 비교해보면 결정적으로 한 가지 차이가 발견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을 예외로 하면 미국은 거의 대부분 수십 년 이상 정치를 해온 정치베테랑이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클린턴이나 조지 부시 2세는 대통령이 되기 직전 주지사를 역임했다. 다시 말해 워싱턴 정가와는 좀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주의회의 권한이 막강한 미국의 정치구조에서 그들도 정치 베테랑이었다.

게다가 두 대통령 모두 워싱턴 정가에서 잔뼈가 굵은 정치인을 부통령으로 영입해서 약점을 보완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비여의도 출신, 그러니까 정치경력이 짧은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호하는 정치문화를 가지고 있다.

정치혐오 정서가 강한 우리나라에서 여의도 정가에서 오래 활동했다는 것은 대통령 선거에서 오히려 약점이 될 수 있다. 한마디로 때 묻은 정치인이란 것. 비여의도 출신 대통령은 아무래도 여의도 생활로 단련된 여야 중진 정치인들과 소통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일사분란한 집행을 미덕으로 아는 기업인 또는 행정가 출신, 타협이 아닌 칼날처럼 시비를 가르는 것이 습관이 된 법률가 출신 대통령의 입장에서 유리한 타협을 위해 밀고 당기기를 일삼는 여의도 정치인들은 자신을 무시 또는 권위를 침해하는 존재로 보일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정치는 이견을 다루고 갈등을 관리하는 기술이다. 대통령은 정치와 행정을 겸하는 정무직 공무원이다. 그러나 비여의도 출신 대통령을 선호하는 우리 정치 문화는 정치가 필요 없거나 심지어 정치를 하면 안 됐던 직업군의 사람들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놓곤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정치에 미숙한 대통령이 통합이 아닌 갈등의 주역으로 기능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이는 결코 개인적 성격 문제일 수 없다. 개인적 성격조차 구조와 문화 속에서 형성된다.

노무현 대통령이 여당과의 갈등을 자제했던 것, 심지어 자신을 향한 비판을 인내하고 수용했던 것도 그 자신이 가진 정치적 신념과 철학에 힘입은 것이었지만 그가 대통령이 되기 전 매우 오랜 시간 정치인으로 살며 축적한 경륜의 결과였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노 대통령 시절에는 당정갈등이 없지 않았지만 대통령과 여당 인사들이 서로를 공개 저격하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극단적으로 대치하는 현재의 상황은 어쩌면 매우 당연하며 필연적인 것일 수 있다. 인생의 대부분을 정치중립 의무를 지키며 살아야 했던 검사 출신 대통령, 그리고 0선의 당대표. 쉽게 해소되기 힘든 갈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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