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또다시 연고점 경신..FT “강달러 해법 없어”
정부 일각 경기둔화 대책 요청에도 환율 해법 절실
OECD도 최근 통화·재정정책 함께 구사 숙제로 제시

[공공뉴스=임혜현 기자] 한국은행이 연내 두 차례 ‘빅스텝(기준금리를 한꺼번에 0.5%포인트 올리는 것)’을 단행할 가능성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최근 정부에서 물가보다 경기 우려에 초점을 둬야 한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내놓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여전히 10월·11월에 빅스텝을 단행할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주열 전 한국은행 총재까지 고물가 상황을 ‘뉴노멀’로 설정하고, 합리적이고 신속한 대응을 하라는 주문을 보태 관심을 모은다. ‘이창용 한국은행호(號)’가 택할 ‘합리적 대처’를 둘러싼 해석이 분분할 수밖에 없는 국면이다.

강달러 현상에 글로벌 경제가 신음하고 있다. 우리도 환율 대책 때문에 기준금리 큰 폭 인상을 단행할 필요가 제기된다. <사진=뉴시스>
강달러 현상에 글로벌 경제가 신음하고 있다. 우리도 환율 대책 때문에 기준금리 큰 폭 인상을 단행할 필요가 제기된다. <사진=뉴시스>

고물가, 팬데믹 이전 복귀 불능..새 초점은 불황 대응? 

이 전 총재는 28일 ‘Korea Investment Conference 2022’에 참석해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앞으로 상당 기간 높은 수준을 지속할 가능성이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 등 지정학적 전개 양상에 따라 물가 상승세가 다시 가팔라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향후 물가가 안정돼도 팬데믹 이전의 저물가 추세로 돌아가긴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의견”이라며 “중요한 것은 리스크가 현실화될 때 두려움으로 주저하기보다는 합리적이고 신속하게 대응하는 것”이라고 당부했다.

이 리스크에 대응하는 합리적 금리 정책은 무엇일까. 우선 물가 상황에서 눈을 돌려 경기둔화 가능성을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 관점에서는 정부가 중앙은행에 금리 인상 속도조절에 들어가 달라는 신호를 보냈다고 해석한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 25일 KBS에 출연해 “우리도 (미국 금리를) 쫓아가자니 국내 경기 문제가 있다. 그리고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해 대출자들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동안 정부가 물가안정을 최우선 정책과제로 삼은 것에서 경기둔화 우려로 방점을 옮겨 찍는 게 아니냐는 풀이가 나온다. 

글로벌 경기침체 징후가 상당하다. 앞서 26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영국의 해운전문기관 드류리 자료를 인용해 상하이~LA간 컨테이너 운임료가 40피트 기준3779달러까지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물류난이 극심했던 때 1만2000달러까지 오른 것과 비교하면 3분의 1로 추락한 것으로, 물류 축소가 경제활동 경색을 나타내는 것으로 풀이된다. 

경제활동 위축으로 국제유가도 떨어졌다. 허리케인 북상 등 단발성 이슈와는 별개로, 주간 기준으로는 유가가 5주 연속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우리 물가 상승도 둔화, 정점에 조만간 도달할 것이라면 굳이 금리를 가파르게 올릴 필요가 없다는 관점에 힘이 실리는 것.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사진=한국은행>
금리 인상 폭을 놓고,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와 금융통화위원회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주열 전 한국은행 총재가 고물가 뉴노멀 관련 발언까지 내놔 주목된다. 사진은 현직에 있을 당시의 이 전 총재. <사진=뉴시스>

시장선 정책금리 3.75% 추정..물가 안정 내년 초 전망도 

이와 관련,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모호한 스탠스를 취한다. 그는 2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출석 발언에서 “여건 변화가 국내 물가와 성장 흐름, 금융·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점검하면서 통화정책을 결정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22일 발언보다는 한층 비둘기파 뉘앙스지만, 이날 그는 “소비자물가지수가 상당 기간 5~6%대의 높은 오름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환율이 높은 수준을 지속할 경우 추가적인 물가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부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시장에서는 연속 빅스텝 가능성을 점친다. BNP파리바는 27일자 보고서에서 한국은행이 10월과 11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연달아 0.5%포인트 인상해 올해 말까지 3.50%로 끌어 올릴 것으로 예상했다.

이어 내년 1월 기준금리를 3.75%로 0.25%포인트 추가 인상한 뒤 내년 말까지 이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윤지호 BNP파리바 연구원은 “금융 안정성에 대한 우려 증가와 계속되는 인플레이션 압력을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은행 향후 금리 안정성 리스크와 환율 하락 요소를 통화정책 성명서의 가이던스 부분에 이용할 것으로 예측하기도 했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도 같은 날 리포트를 통해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남은 두번의 회의에서 0.75%포인트, 0.50%포인트 인상을 예고하고 있어 한은도 10월과 11월 회의에서 연속적인 빅스텝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주장했다.

미 연준의 긴축 지속과 그에 뒤따른 환율 불안에 시선을 준 셈이다. 10월 물가 정점론도 있으나, 고물가 해결은 다소 시간을 두고 봐야 한다는 견해도 없지 않다.

윤 연구원은 “소비자물가지수가 내년 2월까지 5%를 상회할 것으로 본다”며 “실질적으로 상승세 방향이 바뀌는 건 내년 1월이 돼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환율 고공 행진은 여전하다. 이날 원·달러 환율이 오전 한때 1435.6원까지 올랐다. 26일 기록한 장중 연고점(1435.4원)을 2거래일 만에 다시 넘은 것이다. 장중 고가 기준으로 2009년 3월 17일(1436.0원)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영국 경제매체 ‘파이낸셜타임즈’에 27일(현지시간) 실린 칼럼은 “달러 강세가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지만 사실상 당장 강달러 현상을 해결할 묘수는 없기 때문에 가계든, 기업이든, 정부든 허리띠를 졸라매고 절약하는 수 밖에 없다”고 짚었다. 

OECD는 우리나라에 재정정책과 함께 코로나19 차원에서 처방된 과잉 유동성을 해결할 통화정책도 주문하고 있다. 사진은 시중은행에 공급하기 위해 한국은행이 준비 중인 현금. <사진=뉴시스>  
OECD는 우리나라에 재정정책과 함께 코로나19 차원에서 처방된 과잉 유동성을 해결할 통화정책도 주문하고 있다. 사진은 시중은행에 공급하기 위해 한국은행이 준비 중인 현금. <사진=뉴시스>  

韓 펀더멘탈 평가 양호..통화정책 정상화 여전히 중요

강달러 대책 차원에서 사실상 남은 대책은 기준금리를 활용한 금리역전 관리라는 점을 역설적으로 강조한 셈이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역시 19일 열린 ‘2022 OECD 한국경제보고서’ 발표 관련 포럼에서는 우리나라에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정상화를 함께 당부했다.

남은 문제는 우리 경제의 펀더멘탈이다. 일각에서 물가 관리보다 경기둔화 대응책을 주목해야 한다고 보는 것은 경기 상황이 나빠질 때 부양책이 마땅찮다는 우려를 전제로 한다.

다만 한국의 펀더멘탈에 낙관적 신호가 감지된다. 우리나라의 대외신인도를 보여주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8거래일 만에 하락했다.

27일(현지시간) 뉴욕시장에서 거래된 5년물 한국 CDS 프리미엄은 50.85bp로 전날보다 1.63bp 하락했다. 현재 영국의 대규모 감세 선언으로 인한 충격파가 상당한 가운데서도 한국 CDS 프리미엄은 지난 16일부터 26일까지 7거래일 동안 가파르게 오르던 흐름을 끊은 것이다.

유로존의 경우도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우리의 통화정책은 한 가지 목표, 물가 안정 책무를 다하는 것에 맞춰져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국은행도 경기둔화 우려까지 좌고우면하는 대신 ECB처럼 물가 및 환율로 문제를 집중할 가능성에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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