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 대응 필요하지만 정치권과 인플레 등 얽혀
예대율 규제 완화·지급준비율 인하 등 병행 필요
거시적 관점에서 결단 절실..골든타임 놓칠 우려

[공공뉴스=임혜현 기자] 고금리와 경기 침체로 기업이 고통을 겪고 있다. 자금시장 경색 국면으로 기업들의 내년 경영과 투자가 ‘시계 제로’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대기업의 약 절반조차 아직도 내년도 투자계획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국면에서 해법 검토가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자금 문제는 진행형 이슈다. 감내할 수 있는 만성 과제이기도 하지만, 자칫하면 경제의 체력이 약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 잠복 악재라는 뜻이다.

서울 중심가의 빌딩숲. 기업들이 느끼는 자금 부담이 더욱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우려가 제기된다. <사진=뉴시스>  
서울 중심가의 빌딩숲. 기업들이 느끼는 자금 부담이 더욱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우려가 제기된다. <사진=뉴시스>  

◆고금리 악재에..실질금리 고통은 심지어 미국보다 커

7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기업의 자금부족액 규모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기업의 전체 자금조달액은 지난 2017년 약 134조원에서 2021년에는 약 330조원까지 늘었다.

하지만 자금부족액 규모도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역설이 대두돼 2분기에 약 47조원 부족했다는 것이 한국은행의 설명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기업이 체감하는 금리 상황이 좋지 않다는 점은 우려를 낳는다. 심지어 다른 나라에 비해 체감 상황이 더 나쁘다는 것이 문제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5일 매출액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2023년 국내 투자계획을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100곳)의 48.0%가 ‘투자계획 없음’(10%) 혹은 ‘아직 계획 세우지 못함’(38.0%)으로 답했다고 밝혔다. 나머지 52곳도 대부분 올해와 비슷한 수준의 투자(67.3%)에 머물 전망이다. 

기업들은 투자 규모를 선뜻 늘리기 어려운 이유로 ‘금융시장 경색 및 자금조달 애로’(28.6%)를 가장 중요한 이유로 꼽았다.

실제로 금융 여건이 나빠지고 자금조달이 경색되는 기류는 다른 자료에서도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기준으로 기업어음(CP) 금리는 5.51%에 이르렀다.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에 달했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이날 ‘최근 기업금융 현안과 정책적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국내 기업들이 금리 인상과 경기침체에 느끼는 상황이 심각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보고서는 10월 말 기준 실질 기준금리는 한국(-2.7%)이 미국(-3.75%)보다 높아져 국내기업이 체감하는 금리는 미국 기업보다 높을 것으로 예상했다.

자금 부족액이 늘어나는 악화 국면을 좀처럼 풀기 어려운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는 뜻이다. 주요 기관들의 투자 여력이 약화되고 금리상승으로 인한 회사채 투자심리 위축 등에 체감도 악화까지 가중되고 있는 셈이다.

결국 기업들의 자금사정은 연말로 갈수록 더욱 악화할 것으로 한경연은 분석했다.

한경연은 미국 기준금리 인상 속도에 맞춘 국내 기준 금리 인상을 지속하는 것은 이미 악화한 기업들의 자금조달에 심각한 장애요소라고 지적한다.

이에 따라 한·미 금리역전이 발생하더라도 국내 경제주체의 금융 방어력을 고려해 금리인상 속도 조절을 검토할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법인세 인하 등 제도적 지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더해진다.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해 준비 중인 한국은행 직원들. <사진제공=한국은행>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해 준비 중인 한국은행 직원들. <사진제공=한국은행>

◆법인세 글로벌 상황에 역행, 기업 경쟁력 잠식

이규석 한경연 부연구위원은 “기업의 자금 확보를 위한 방안으로 법인세 인하, 연구개발 및 시설투자 세액공제율 인상 등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법인세로 인해 국내기업은 미국 업체들보다 한결 불리한 상황에 놓여 있다.  

대한상의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양국기업의 법인세 과세 전후 순이익을 비교한 결과 한국 기업의 세후이익 감소율이 미국보다 더 크다.

양국 법인세율 변동이 있었던 2018년 이후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등 우리 기업의 법인세 고통이 더 가중되는 양상이라는 것.

한편,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에서 발표한 우리 조세정책 경쟁력은 63개국 중 2017년 15위에서 2022년 26위로 11단계 하락했다. 법인세 세율 경쟁력은 2017년 27위에서 2022년 39위로 12단계 추락하기도 했다.

주요국 정책과 비교해도 상황이 기업에 불리하다. 미국 법인세는 법인세율이 15~39%로 총 8개의 과표구간을 가진 복잡한 구조를 2018년 트럼프 정부에서 대폭 단순화했다. 

세금감면 및 일자리법을 통과시켜 세율을 21%로 낮추고, 과표구간을 단일화한 효과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한국 법인세가 미국보다 불리한 것은 기업들이 잘 알고 있는 부분“이라며 “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법인세 인하는 기업들의 투자 집행이나 계획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부가 자칫 골든타임을 놓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높다.

현재까지 경제계와 학계에서 제시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회사채 시장 활성화와 예대율이나 지준율 조정 등을 통한 자금 여력 강화는 물론 기업금융 규제 완화, 법인세 인하 지원 등 다양한 방법이 제시된다.

한국은행이 인플레이션 등 다양한 문제상 내년 초반까지는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높아 이런 해법을 다양하게 선제적 투여하고 금리 정책 재논의를 할 필요가 높다.

하지만 법인세 등부터 논의는 당장 난관에 봉착해 있다.

정치권은 세법 개정 문제를 물밑 교섭 중이나, 금융투자소득세 유예, 종합부동산세 완화 방안 등과 달리 법인세는 첨예한 대립으로 논의 열외 상황이다.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낮추는 정부의 구상에 더불어민주당 반발이 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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