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자녀 양육비 지급 강제 ‘한국판 벤틀리法’ 발의
美 테네시 올해부터 시행..피해가정 다수 경제난
배승아양 사건 공분↑..‘중대범죄’ 인식 확산돼야

[공공뉴스=김소영 기자] 최근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망사고가 이어져 국민의 공분이 커지는 가운데 ‘한국판 벤틀리법’이 발의돼 이목이 쏠린다.

올해 초 미국 테네시주에서 통과된 ‘이든, 헤일리, 그리고 벤틀리법(Ethan’s, Hailey’s, and Bentley’s law, 이하 벤틀리법)’은 음주운전 가해자가 피해자의 미성년 자녀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도록 강제하는 법안이다. 

음주운전 가해자에 대한 처벌 강화 뿐만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에서 ‘한국판 벤틀리법’의 국회 통과 여부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데오역 인근 도로에서 강남경찰서 경찰관들이 음주운전 단속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데오역 인근 도로에서 강남경찰서 경찰관들이 음주운전 단속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與野 막론 ‘한국판 벤틀리법’ 발의 

19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최근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음주운전 사망사고시 가해자가 피해자 자녀의 양육비를 책임지도록 하는 법안을 각각 발의했다. 

여당에서는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이 음주운전 사망 피해자 자녀의 지원 강화를 위한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으며, 민주당에서는 박광온 의원이 같은 취지의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박 의원은 법안 제안이유와 관련해 미국의 ‘벤틀리법’을 언급하며 법원 배상명령 시 미성년 유자녀(遺子女)에 대해 경제적 필요·자원·생활 수준 등을 적극 고려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올해 1월1일 미국 테네시주에서 시행된 ‘벤틀리법’은 음주운전 가해자가 피해자의 자녀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도록 명시했다. 

음주운전으로 희생된 피해자에게 부양이 필요한 미성년 자녀가 있을 경우, 음주운전 가해자로 하여금 자녀가 18세에 이르러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양육비를 지급토록 규정한 것이 법안의 골자다. 

만일 피해자 자녀에 대한 양육비 지급 이행이 선고된 피고가 수감돼 양육비를 지급할 수없는 경우, 피고는 석방 후 1년 이내에 반드시 양육비 지급을 개시해야 한다. 현재 미국에서는 20여개 주 의회에서 법안의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벤틀리법’의 입법 운동을 추진하는 비영리단체 Mothers Against Drunk Driving(MADD)은 음주운전 가해자가 과거를 잊는 반면, 피해자에게 남겨진 사고의 여파는 평생 지속된다고 꼬집었다. 

이에 따라 MADD는 ‘벤틀리법’ 제정이 피해자와 생존자에게 정의를 되찾아주고, 가해자에게는 그들의 음주운전이 초래한 참극을 상기시키고 행동에 따른 책임을 부과하는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지난 10일 오전 대전 서구 둔산동의 한 초등학교 인근에 음주운전 사고로 사망한 9살 배승아양을 추모하기 위한 쪽지가 꽃과 함께 놓여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10일 오전 대전 서구 둔산동의 한 초등학교 인근에 음주운전 사고로 사망한 9살 배승아양을 추모하기 위한 쪽지가 꽃과 함께 놓여있다. <사진=뉴시스>

◆교통사고 유자녀 다수 경제난 시름

올해 초 국회 입법조사처는 한국교통연구원의 조사 결과를 인용하며 교통사고 유자녀가 어려운 양육 환경에 놓여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국교통연구원이 2018년 음주운전 사고를 포함한 교통사고 유자녀·보호자 157명을 조사한 결과, 교통사고로 인해 사망한 부모님이 아버지인 경우가 89.2%에 달했다.

또한 교통사고 유자녀 가정의 월평균 소득은 교통사고 이전 219.9만원에서 사고 이후 100.0만원으로 크게 감소했다.

이에 비해 유자녀 보호자가 보험회사로부터 받은 보상금의 평균 보상액은 8037만원에 불과했으며, 보상금의 평균 소비기한은 33.4개월이었다. 

응답자들 중 교통사고의 영향으로 주거형태가 바뀌었다고 답한 비율은 56.7%였다. 사고 이전 ‘자가소유’의 비율이 31.2%에서 사고 이후 17.8%로 감소했으며, ‘영구임대’는 사고 이전 8.3%에서 사고 이후 14.6%로 증가했다.

주거 형태가 변화한 이유에 대해 묻자 응답자의 74.2%는 ‘경제적인 형편이 어려워져서’라고 답했다.

교통사고 발생 이후 피해 극복 정도에 대한 조사 결과, 유자녀의 54%가 재기하지 못했다고 응답했으며 유자녀 보호자의 62.4%가 재기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묻자 ‘경제적으로 충분한 지원’이라는 응답이 72%를 차지했다.

이처럼 교통사고 사망자의 자녀들 중 다수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만큼 음주운전 피해 가정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찰관이 음주운전 단속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음주운전, 단순 실수 아닌 비극의 시작

도로교통공단의 음주운전 교통사고 빅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발생한 음주운전 교통사고는 총 8만6747건이었다. 하루 평균 약 48건의 음주운전 교통사고가 발생하는 셈이다. 

해당 5년 간 음주운전에 의한 사망자 수는 1573명이며 부상자 수는 14만3993명이었다.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는 매해 감소하는 추세이지만, 최근 따뜻해진 날씨와 더불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해제로 음주운전에 대한 경계심이 느슨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실제로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지난 7일까지 주간 음주운전 교통사고는 전년 같은 기간 대비 540여건 증가했다.  

이처럼 주간 음주운전 사고 증가 추세와 함께 이달 8일 대전 스쿨존에서 사망한 배승아(9)양 사고로 인해 음주운전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극에 달한 상황. 

이같은 분위기 속에서 음주운전 가해자에게 행동에 따른 무거운 책임을 지우는 ‘한국판 벤틀리법’의 통과 여부에 시선이 모인다. 

특히 법안 발의를 계기로 음주운전이 ‘단순 실수’가 아닌 한 가정을 파괴할 수 있는 비극적 범죄라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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