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불감 사회:묵살 당한 경고→관행 끊고 안전선진국 도약

공공뉴스=김수연 기자 # 저는 운전을 할 때면 아찔한 상황을 자주 목격해요. 가장 최근에는 마주오던 옆 차선 운전자가 빨간불이 바뀌는 찰나를 놓치지 않고 빠르게 가려다가 보행자를 칠 뻔한 상황을 봤죠. 교차로 진입을 앞두고 신호등이 노란불에서 빨간불로 바뀌면 많은 운전자들은 딜레마에 빠져요. 저 역시 빠르게 통과해야 할지, 브레이크를 밟아야 할지 고민을 하죠. 신호 위반의 문제도 있지만, 자칫 사고가 날 가능성도 있잖아요. 또 교차로 곳곳에 깜빡이는 황색 점멸등이나 적색 점멸등이 켜져 있지만, 이를 지키지 않는 운전자들도 많아요.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 설치된 신호가 무색하게 일시정지 하는 사람들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죠. 그리고 실제로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던 운전자가 사고를 낸 경우도 종종 봐왔어요. 결국 안전불감증 때문에 발생한 사고였죠. 지키라고 있는 신호를 운전자들이 서로 눈치싸움만 하며 준수하지 않는 상황들은 보행자는 물론 운전자 본인의 생명까지 위협하죠. 왜 그런 사실을 간과하는지 안타깝기만 하네요. (남·38·경기 안양시)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최근 들어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해 다치거나 심지어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의 소식들이 거의 매일같이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특히 대부분 안전에 대한 기본을 무시한 ‘안전불감증’이 사고 원인으로 꼽히고 있어 그 안타까움을 더한다. 

미리 위험을 감지한 이들이 선제적으로 경고하고 건의해왔다. 그러나 그 외침은 묵살당하기 일쑤였고, 결국 예견된 참사를 막지 못했다는 강한 비판을 받고 있다. 

사고가 터진 후에야 사과하고, 부랴부랴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실효성에 대한 의문부호가 꾸준히 달리고 있는 상황. 우리 사회에 깊숙이 자리잡은 안전불감증을 뿌리뽑기에는 상당히 오랜 시간과 노력의 투자가 필요해 보인다. 

# 동덕여대 등굣길 참변..10년 만에 분당선 에스컬레이터 역주행

12일 경찰 등에 따르면, 서울 동덕여대 재학생인 A씨(21)는 지난 5일 오전 9시께 캠퍼스 내 비탈길에서 쓰레기 수거용 화물차에 치여 뇌사 상태에 빠진 뒤 이틀 만이 7일 끝내 숨을 거뒀다. 

사고를 낸 80대 청소 노동자는 교통사고특례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학교 내에는 A씨를 추모하는 간이 분향소가 마련됐고, 학생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 그 와중에 재학생들은 이번 사고를 두고 ‘예견된 인재’라고 비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학생들은 이 사고가 발생하기 수년 전부터 ‘차도와 인도를 구분해 만들어 달라’는 내용의 건의를 수차례 했지만, 학교 측은 이를 묵살했고 안타까운 사망사고가 발생했다는 것. 

안전 우려에 대한 학교 측의 안일한 대처, 안전불감증이 불러운 참사라는 지적이다. 

또한 최근 지하철 내 에스컬레이터가 역주행하며 시민들이 다치는 사고도 있었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8일 오전 8시20분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지하철 분당선 수내역 2번 출구 상행 에스컬레이터가 갑자기 멈춘 후 역주행하면서 이용객 14명이 부상을 입었다. 

승객 3명은 허리와 다리 등에 중상을 입고 치료를 받고 있고, 비교적 가벼운 상처를 입은 11명은 치료를 받은 뒤 귀가한 것으로 파악됐다.

일부에서는 이번 사고를 두고 10년 전 발생했던 분당선 야탑역 역주행 사고와 유사하다고 말한다. 2013년 7월 오후 8시30분께 야탑역 4번 출구 상행 에스컬레이터가 갑작스럽게 역주행해 퇴근길 시민 39명이 부상을 당한 사고다. 

야탑역 사고 원인은 에스컬레이터 보수정비업체의 ‘짝퉁’ 부품 사용 때문으로 결론 났다. 이 업체 직원이 수리 과정에서 감속기와 모터를 연결하는 ‘피니언기어’를 교체할 때 정품을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이번 수내역 사고 당시 상황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이 공개되자 시민들은 더욱 충격에 빠졌다. 

영상 속에는 수십명의 이용객을 태우고 지상으로 이동하던 에스컬레이터가 일시 정지한 뒤 반대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이자 이용객들은 순식간에 아래쪽으로 구르거나 넘어지며 뒤엉키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마치 도미노가 무너지듯 사람들은 순식간에 우루루 무너져 내렸고, 깔림 사고를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옆 에스컬레이터로 넘어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포착됐다. 

경찰은 현장에서 누군가가 에스컬레이터의 수동 조작 장치 등을 가동시켰을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보고, 사고 원인을 기계적 결함으로 추정하고 있다.  

분당선 수내역은 한국철도공사가 운영 주체다. 하지만 에스컬레이터 운영 관리는 위탁업체에 맡기고 있다. 지하철사법경찰대와 한국승강기안전공단은 목격자 진술과 현장 분석 등을 통해 정확한 사고 원인 등을 조사 중이다. 

지난 5일 동덕여대 캠퍼스 안에서 등교하던 대학생이 언덕길에서 내려오던 쓰레기 수거용 화물차에 치여 뇌사 상태에 빠진 뒤 이틀 만에 숨졌다. 사진은 8일 서울 성북구 동덕여자대학교에 마련된 추모공간 뒤로 사고 현장이 보이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지난 5일 동덕여대 캠퍼스 안에서 등교하던 대학생이 언덕길에서 내려오던 쓰레기 수거용 화물차에 치여 뇌사 상태에 빠진 뒤 이틀 만에 숨졌다. 사진은 8일 서울 성북구 동덕여자대학교에 마련된 추모공간 뒤로 사고 현장이 보이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 ‘이상 징후’ 예견된 사고?..안전 관리 부실점검 또 도마 위

정부는 야탑역 사고 이후 2014년부터 7월부터 에스컬레이터 역주행 방지 장치 설치를 의무화했다. 하지만 의무화 이후에도 에스컬레이터 역주행 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2019년 7월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 2018년 4월 대전역, 2012년 2월 지하철 5호선 종로3가역 등에서 에스컬레이터가 역주행해 시민들이 다친 바 있다.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하고 이용하는 에스컬레이터 사고 소식이 잊을 만하면 터지자 안전불감증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의 재발방지 대책이 효과적인 대응책이 되지 못하는 가운데, 부실 점검 등이 화를 키운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국가승강기정보센터에 따르면, 사고가 발생한 에스컬레이터는 2009년 7월 설치된 후 지난해 9월 정기 검사까지 지속적으로 ‘합격’ 판정을 받았다.

또한 위탁 업체가 매달 안전 점검을 실시하고 있으며, 지난달 10일 실시한 안전 점검에서도 ‘이상없음’ 판정을 받았다고 철도공사 측은 전했다. 한 달 전 정기 검사에서도 이미 이상이 없다는 결과를 받은 상태다. 

그러나 MBC 보도에 따르면, 관리업체에서 진행한 월간 점검과 달리 외부 기관이 맡았던 연간 검사에서는 지속적인 결함이 확인됐다.

한국승강기안전공단의 2020년 검사에서 승객의 발이 끼거나 이물질이 빨려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부품 파손 사실이 드러났다. 또 에스컬레이터의 동력인 ‘구동체인’을 점검하는 스위치 상태 불량과 승강기 부품의 심각한 마모 등도 확인됐다. 

공단 측은 이 같은 점의 보수를 전제로 ‘조건부 합격’ 판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당시 공단 측 검사 하루 전 이뤄진 관리 업체의 월간 점검에서 해당 에스컬레이터는 ‘양호’ 판정을 받는 등 공단과 관리 업체의 점검 결과가 상이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향후 경찰 등 관계기관들의 합동 감식 결과에 더욱 이목이 쏠리고 있다. 

지난해 8월 정기 점검에서도 조건부 합격을 받았다가 보완 뒤 합격 통지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안전 점검이 형식적으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도 나왔다.  

뿐만 아니라 수내역을 이용하는 인근 주민들 사이에서는 사고 직전 이상 징후가 있었다는 주장도 있었다. 분당 지역 맘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이번 사고를 두고 ‘예견된 사고’라는 글들이 올라온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에스컬레이터를 둘러싸고 사고 한 달 전 소리가 나 주민들이 역무실에 민원을 넣었다는 주장과 몇 달 전에도 갑자기 멈췄다는 증언들이 잇따랐다. 

지난 8일 경기도 성남시 지하철 분당선 수내역 2번 출구 상행 에스컬레이터가 역주행하며 14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사진은 에스컬레이터 역주행 사고로 출입이 통제된 수내역 2번 출구 모습. <사진=뉴시스>
지난 8일 경기도 성남시 지하철 분당선 수내역 2번 출구 상행 에스컬레이터가 역주행하며 14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사진은 에스컬레이터 역주행 사고로 출입이 통제된 수내역 2번 출구 모습. <사진=뉴시스>

# 끊임없는 안전 무시 관행 뿌리뽑고 ‘안전 선진국’ 탈바꿈 

앞서 4월 발생한 분당 정자교 붕괴 사고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수내역 에스컬레이터 역주행 사고가 발생하며 인근 시민들의 불안감은 극에 달한 모습. 분당신도시의 노후된 기반시설 전체를 재점검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들린다.

이 같은 시민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제대로 된 확실한 점검이 이뤄져야 한다. 

일례로 정자교는 지난해 상·하반기 정기 안전 점검에서 두 차례 양호 등급을 받았지만, 붕괴 사고가 발생해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다쳤다. 

그리고 최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교량에 대한 유지보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다는 감정 결과를 내놨다. 안전 점검에서 양호 판정만 받은 채 문제점은 전혀 파악되지 못한 셈이다.

우리 주변에는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천재지변은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안전불감증이 빚어낸 ‘인재(人災)’는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고라는 점에서 더 큰 공분을 사고 있다. 

실제 건설이나 제조업 등 각종 산업현장만 해도 점검을 실시하면 안전 관련 시설을 보완하라는 지적 사항들이 쏟아져 나온다. 당국이 계속적으로 경고를 해도 쉽사리 고쳐지지 않고 있는 형국. 

4월 말 등굣길 어린이보호구역을 덮친 1.5톤의 대형 화물이 10살 초등학생 고(故) 황예서양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 역시 안전불감증이 불러온 사고였다.

작업자들이 안전장치 하나 없이 작업을 했으며, 지게차 운전자는 무면허였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국민들은 분노했다. 

불시에 발생하는 사고를 피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애초부터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개인의 부주의, 기계적 결함 및 오작동 등으로 인한 사고는 조금만 신경을 쓰면 충분히 방지할 수 있는 것들이다. 기계적인 문제는 철저한 관리와 점검으로 걸러낼 수 있으며 안전장치 설치 등 기본을 반드시 준수한다면 사망사고와 같은 큰 불상사는 줄어들 수 있다. 

정부에서는 심각한 인명 피해를 불러오는 사건사고 예방을 위해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번거롭고 귀찮다”는 이유로 안전을 등한시하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사람들 안에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는 안전불감증, 사회 곳곳에 여전히 만연한 안전 무시 관행을 확실히 제거하기 위해 세심한 관심과 끊임없는 노력이 절실한 지금이다.

무엇보다 우리나라는 경제 규모가 선진국 반열에 올랐음에도 ‘안전 후진국’이라는 불명예는 벗지 못하고 있다. ‘안전 선진국’으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실효성 있는 제도와 정책도 필요하지만 국민들의 근본적인 안전의식 변화가 뒷받침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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