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4명’ 서이초 교사 이후 잇단 극단적 선택..정신 건강 ‘빨간불’
거리로 나온 교사들의 울분, 진상규명·교권보호합의안 의결 촉구
교권회복 입법 드라이브..공교육 정상화 위한 조치 신속 시행 필요

공공뉴스=김소영 기자 최근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잇따르면서 교권 보호에 대한 목소리가 계속해서 커지고 있다. 

교사를 우습게 생각하는 학생의 행동, 학부모의 갑질 등을 감당해야 하는 교사들의 몸과 정신건강은 이미 피폐해진지 오래. 해외에서도 한국의 교권 침해 실태를 조명할 만큼 우리나라의 교권 붕괴는 도를 넘어선 상태다. 

결국 사지로 내몰린 교사들은 절박한 마음으로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교단을 묵묵히 지켜오던 이들이 거리에서 울분을 토해냈지만, 교권회복과 공교육 정상화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공교육 멈춤의 날’인 지난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교육대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서이초 사망교사 49재 추모 촛불집회’에서 참석자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사진=뉴시스>
‘공교육 멈춤의 날’인 지난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교육대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서이초 사망교사 49재 추모 촛불집회’에서 참석자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사진=뉴시스>

◆또 세상 등진 교사..정신 건강 ‘빨간불’

한 초등학교 교사가 또 극단적 선택을 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8일 대전 유성경찰서 및 대전교사노동조합에 따르면, 대전 지역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한 40대 여성 교사 A씨가 전날(7일) 사망했다. A씨는 5일 자택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뒤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로 24년 차 교사인 A씨는 2019년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 근무하면서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시달리고 아동학대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관계기관의 조사 끝 이듬해 아동학대 혐의에 대해 무혐의 판정을 받았지만, 일부 학부모들의 악성 민원은 계속된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대전의 다른 초등학교로 근무지를 옮겼으나, A씨는 트라우마를 호소해 왔다. 특히 최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을 접하면서 당시 트라우마가 다시 떠올라 많이 괴로워했다는 전언이다. 

최근 교권 침해와 교실 붕괴로 과도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다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교사들의 소식이 이어지는 가운데 또 한 교사가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다.

서이초 교사 사망사건 이후 지난 9일간 4명의 현직 교사들이 세상을 등졌다. 서울 양천구와 경기 용인시, 전북 군산시, 그리고 대전에서까지 현직 교사들이 연이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사회 근간마저 흔들리고 있다. 

교사들의 비극이 이어진 데는 심리적 동조에 따라 극단 선택이 전염되는 ‘베르테르 효과’도 무시할 수 없어 보인다. 특히 마음이 병든 교사들이 동료의 죽음을 접했을 때 그 영향력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실제 교사들의 정신건강 수준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과 녹색병원이 최근 발표한 ‘2023년 교사 직무 관련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달 16일부터 23일까지 전국 유·초·중·고교 교사 및 특수·상담·사서교사 3505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3.4%가 우울 증상을 겪었다고 답했다. ‘가벼운 우울 증상’이 24.9%, ‘심한 우울 증상’이 38.3%으로 집계됐다. 

일반인의 심한 우울 증상 유병률이 8~10%인 점을 감안하면, 교사의 우울 증상 유병률이 일반인보다 4배가량 높은 셈이다. 

또한 교사의 16%는 극단적 선택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구체적 계획까지 세운 교사도 4.5%나 됐다. 

교사들은 학부모 상담과 민원 업무(37.5%)가 가장 어렵다고 꼽았다. 이어 학생 생활지도 및 상담(28.4%), 행정업무(23.5%) 등 순이었다. 

아울러 교사 66.3%는 언어폭력을 경험했고, 18.8%는 신체 위협·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언어폭력의 가해자는 학부모가 63.1%, 학생이 54.9%를 차지했다. 

서울교대 학생들이 지난 7일 서울 서초구 서울교육대학교 정문에서 서이초 사망 교사 49재 추모 행진 전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서울교대 학생들이 지난 7일 서울 서초구 서울교육대학교 정문에서 서이초 사망 교사 49재 추모 행진 전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공교육 멈춤의 날..분노 폭발한 교단

이런 가운데 전국 교사들은 서이초 교사 사망 49재 추모일인 이달 4일 거리로 나섰다. 동료들의 계속되는 죽음에 무너진 교단의 현실을 고발하고 진실규명과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교사들은 이날을 ‘공교육 멈춤의 날’로 명명했다. 다수 교사들은 연가 및 병가를 내고 서이초 교사를 추모하기 위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집결했다. 

국회의사당 앞 대로변은 교사들의 검은색 복장으로 인해 검게 물들었다. 이들은 ‘진상규명이 추모다’ ‘교권보호합의안 의결하라’는 문구가 적힌 손피켓을 들고 서이초 교사 사망사건에 대한 진실을 밝힐 것을 요구했다.  

또한 ‘단체행동에 나설 경우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힌 교육부를 향해서도 규탄을 이어갔다. 

이 자리에는 국회 교육위원회 여당 간사인 이태규 국민의힘 의원과 권은희·정경희 국민의힘 의원,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김민석 민주당 정책위의장, 강득구·강민정·김영호·문정복·서동용·안민석·유기홍 민주당 의원, 이정미 정의당 대표와 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 이은주·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함께했다.

같은 날 경기도교육청, 대구시교육청, 광주 5·18 민주광장,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등에서도 교사들이 모여 단체 행동에 나섰다.  
 
아울러 오후에는 서이초 강당 서울시교육청 주최로 공식 추모제가 열렸다. 추모제에는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을 비롯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회장 등 교원단체 대표들이 참석했다.

이 총리는 추모사를 읊던 중 눈물을 보이며 “더 이상 선생님들이 홀로 어려움과 마주하지 않도록 함께할 것임을 약속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현장에 계신 선생님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교육 전반에 대해 면밀히 살펴보겠다”며 “더 이상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지 않는 모두의 학교, 선생님께서 그리셨을 이상을 위해 선생님, 학생, 학부모, 교육주체가 함께 온 정성을 쏟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서이초 사망교사 49재 추모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서이초 사망교사 49재 추모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무너진 교권회복 속도전

일선 교사들의 분노가 폭발하면서 당국에서는 교권 강화를 위한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정치권도 교권 보호를 위한 관련 법률 개정 작업에 착수한 상태. 그러나 교사들의 목소리가 입법화되는 과정은 쉽지만은 않다.  

여야는 ‘교권회복’이라는 큰 틀은 공감하고 있지만, 세부 쟁점을 놓고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까닭이다. 

국회 교육위원회는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 교육기본법, 초·중등교육법, 유아교육법 개정 등 ‘교권회복 4법’을 논의했으나 여야 이견으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특히 폭력행위 등 학생의 교권 침해 사례를 학생 생활기록부에 기재하는 것과 아동학대사례판단위원회(사례위) 설치를 두고 견해차가 컸다. 

여당은 교권 침해 학생의 생활기록부 작성이 필요하다는 입장. 이날 국회 교육위 여당 간사인 이태규 국민의힘 의원은 “학생이 선생을 기절할 때까지 폭행한 게 생활기록부에 기재가 안 된다면 도대체 아이들에게 어떤 가르침을 줄 수 있느냐”라고 따져 물었다. 

반면 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친구 폭행 건 때문에 징계를 받은 일이 생활기록부에 기재되면 학부모는 소송을 벌인다”며 “교권 침해 징계는 징계 사유를 생활기록부에 기재하지 않기 위해 몇 배의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소송을 벌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례위 ‘실효성’을 두고는 이 의원은 별도의 판단 기관이 필요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수사당국과의 역할 충돌로 새로운 기구 설립이 필요 없다는 것. 굳이 필요하다면 기존의 교권보호위원회가 이를 갈음할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민주당은 교권 보호와 아동학대는 다른 문제라며 별도의 위원회 도입이 필요하다고 맞섰다. 

사례위 구성 법안을 발의한 서동용 민주당 의원은 “지금도 정당한 교육활동은 다 무혐의가 되지만, 문제는 담당 교사가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사례위 판단에 따라 진행되면 학부모·학생 사이에 교사가 직접 소송 전선에 서는 일은 없어질 것”이라고 했다. 

결국 여야가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서 교권회복 4법의 교육위 소위 통과는 불발됐다. 9월 정기국회에서 해당 법안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다음 주 전체회의를 거쳐 16일까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해야 한다. 

국회 본회의가 21일 예정된 점을 감안해 여야는 14일 교육위 법안소위와 전체회의를 열고 재논의 하기로 했다.

교권 침해 사건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교사들은 묵묵히 교단을 지켜왔다. 하지만 이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점점 악화되는 현실뿐이라는 지적이다.   

교육자의 인권은 짓밟은 채 학생들의 인권만 챙기는 사회에서 교단에 서겠다는 사람들은 점점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교권회복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된 만큼 무너진 교실을 바로 세우고 학교를 학교답게 변화시킬 필요한 조치들이 신속히 시행돼야 할 것이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으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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