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가격은 동결하고 크기·중량 줄이는 전략
적극적 공지 없어 소비자들 인지하기 힘들어
논란 불거지자 구체적인 대책 마련 나선 정부
기업의 고물가 극복, ‘꼼수’로 해결해선 안 돼

공공뉴스=김소영 기자 세계적으로 고물가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제품 가격은 동결하고 중량을 줄이는 이른바 ‘슈링크플레이션(shrink flation)’ 현상이 확산하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같은 돈을 지불하고 더 적은 양의 식품을 구입하게 되는 셈인데, 문제는 기업이 이 같은 중량 감소를 적극적으로 공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에 정부는 슈링크플레이션이 일종의 ‘기만 행위’라고 비판하며 소비자들의 알 권리를 강화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 슈링크플레이션에 소비자 ‘울화통’ 

23일부터 한국소비자원 홈페이지에 슈링크플레이션 신고센터가 설치됐다. 소비자원 대표 홈페이지 및 ‘참가격’ 홈페이지 내 ‘슈링크플레이션 신고하기’ 팝업창을 클릭하면 제보 접수가 가능하다. 

접수를 위해선 휴대폰 인증 로그인이 필요하다. 로그인 후 신고하려는 상품명과 함께 변경 전·후 중량 및 개수, 구매 장소, 신고 내용 등을 기재하면 된다. 

또한 소비자원은 이달 말까지 슈링크플레이션 관련 73개 품목(209개 가공식품)에 대한 조사를 이달 말까지 진행한다. 조사 결과는 내달 초 발표될 예정이다. 

‘슈링크플레이션’은 양을 줄인다는 뜻의 ‘슈링크(Shrink)’와 물가 상승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다. 제품의 가격은 인상하지 않고 크기나 중량을 줄여 사실상 가격 인상 효과를 노리는 전략이다.  

최근 오비맥주, 풀무원 등의 기업이 제품 가격을 동결하는 대신 용량을 줄인 것으로 드러나 슈링크플레이션 논란의 중심에 섰다. 

풀무원은 올해 3월부터 자사 핫도그 한 봉지에 들어가는 개수를 1봉당 5개입에서 4개입으로 줄였다. 중량 역시 기존 500g에서 400g으로 감소했다.

오비맥주는 올해 4월 ‘카스 맥주’ 묶음 제품의 가격을 동결하는 대신 용량을 1캔당 기존 375㎖에서 370㎖로 5㎖씩 줄였다. 

이에 일각에서는 기업이 중량 감소를 적극적으로 공지하지 않아 소비자들이 이를 알아차리기 힘들다는 볼멘소리가 이어졌다. 사실상의 ‘꼼수 가격 인상’이란 지적도 나온다. 

논란이 불거지자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공정거래위원회 등 관계 기관과 함께 제품 내용물이 변경됐을 때 소비자에게 알리도록 하는 조치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추 부총리는 지난 14일 서울 용산구 이마트에서 물가 점검 이후 기자들과 만나 “가격을 인상하지 않고 내용물을 줄이는 것은 정직한 판매행위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는 회사에서 가격은 그대로 두면서 양을 줄여서 팔 경우에, 판매자의 자율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소비자에게 정당하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또, 소비자는 알 권리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래서 현재 (정부는) 공정위와 함께 (제품의) 내용물을 변경했을 때 그것을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알리는 방안에 관해서 검토 중에 있다”고 부연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4일 오후 서울 이마트 용산점에 방문해 주요 품목 물가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공동취재사진>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4일 오후 서울 이마트 용산점에 방문해 주요 품목 물가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공동취재사진>

◆ 정부, 내달 초 추가 대책 내놓는다

김병환 기획재정부 1차관 역시 이달 17일 ‘비상경제차관회의 겸 물가관계차관회의’를 주재하고 “슈링크플레이션은 정직한 판매행위가 아니며, 소비자 신뢰를 저해할 수 있다”며 “정부에서도 이를 엄중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소비자원을 중심으로 주요 생필품 가격 실태조사에 착수하는 등 구체적 방안 마련에 나섰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날(22일) 기재부, 농식품부, 산업부, 해수부, 식약처 등 관계 부처 및 소비자 단체, 한국소비자원과 함께 슈링크플레이션 대응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조홍선 공정위 부위원장은 슈링크플레이션이 일종의 ‘기만 행위’라고 질타하며, 소비자들이 정확한 정보에 기반해 합리적인 소비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정보제공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는 관련 소비자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온라인에 품목 정보를 공개한다는 방침이지만, 특정 사이트에 방문해 직접 제품 가격을 확인하는 방식은 다소 번거롭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정부는 내달 초 슈링크플레이션 관련 품목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추가적인 대책을 내놓을 예정이다. 

프랑스의 대형마트 까르푸처럼 가격은 동결됐지만 용량이 줄어든 상품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방안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현재 까르푸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용량이 줄어든 상품 진열대 바로 앞에 ‘#SHRINK FLATION’이란 문구를 써붙여 소비자들이 간편하게 정보를 알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용량별로 가격을 표시하는 ‘단위가격표시제’가 시행되고 있다. ‘100g 당 OOO원’과 같이 특정 단위 당 가격을 표시하는 제도인데, 품목 가격보다는 작게 표기돼 소비자가 슈링크플레이션을 직관적으로 알기 어려운 실정이다.

지난 22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서 슈링크플레이션 대응 관련 부처 간담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22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서 슈링크플레이션 대응 관련 부처 간담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 고물가 위기, ‘꼼수’로 해결해선 안돼

식품업계 일각에서는 원가 부담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물가 관리로 가격을 올릴 수 없게 되자 용량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는 항변도 나온다.

하지만 소비자에게 용량이 줄었다는 정보를 제대로 알리지 않고 조용히 넘어가려는 태도 자체가 문제라는 반박이 제기된다.

제품 가격을 올리는 대신 용량을 줄였다고 명확히 공지한 뒤 소비자의 선택을 기다리는 것이 올바른 시장 경제 작동 방식에 부합한다는 지적이다. 용량 감소에도 불구하고 해당 제품의 품질에 만족하는 소비자는 꾸준히 그 제품을 구매할 것이기 때문이다. 

제품 용량 감소로 인한 소비자의 질책은 피하고 싶고, 그렇다고 용량·가격을 동결해 기업이 손해를 보는 것도 싫으니 이 같은 ‘꼼수’를 쓴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된 상황.

고물가로 인해 원가 부담이 증가하는 기업의 고충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러나 소비자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방식으로 고물가 위기에 대처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기업 입장에서는 매출 감소로 이어질 만한 정보를 소비자에게 적극적으로 알리기 꺼려질 수 있다. 그러므로 정부의 적절한 개입이 필요하다. 

소비자가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하도록 눈을 가리는 슈링크플레이션을 방지할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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