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담벼락 낙서 테러 ‘시끌’..10·20대 男 2명 구속 기로
최응천 문화재청장 “일벌백계”..누리꾼도 강력한 처벌 요구
문화재 관리 강화, 시민의식 개선해 근본적인 변화 이끌어야

공공뉴스=김소영 기자 ‘경복궁 담벼락 낙서 테러’ 사건이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한국 대표 문화유산인 경복궁 담벼락이 하루아침에 스프레이 낙서로 훼손되고, 또 모방범죄까지 연이어 발생하면서 문화재 관리 강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

문화재 낙서나 훼손 문제는 어제오늘일이 아니다. 그러나 가벼운 솜방망이 처벌과 부족한 시민의식이 문화재 훼손 행위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되고 있는 모습이다. 

서울 종로구 경복궁 영추문 인근에 스프레이 낙서로 훼손된 담벼락 복구 작업을 위한 가림막이 설치돼 있다. <사진=뉴시스>
서울 종로구 경복궁 영추문 인근에 스프레이 낙서로 훼손된 담벼락 복구 작업을 위한 가림막이 설치돼 있다. <사진=뉴시스>

◆경복궁 담벼락 낙서범 10·20대 구속 기로

최근 경복궁 영추문과 담벼락 등에 낙서를 한 남성 2명이 구속 기로에 섰다. 

22일 서울 종로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16일 경복궁 담벼락을 스프레이로 훼손하고 도주했다가 체포된 A군(17)에 대해 문화재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20일 밤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2차로 경복궁 담벼락에 낙서를 한 20대 남성 B씨(28)에 대해서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B씨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는 이날 오전 10시30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진행됐으며, 15분만에 종료됐다. 

B씨는 오전 10시45분께 영장심사를 받고 나온 뒤 ‘범행을 저지른 이유가 무엇이냐’, ‘1차 범행을 보고 모방한 것이냐’, ‘아직도 예술이라고 생각하나’ 등 취재진의 질문에 “죄송하다”고만 답하고 호송차에 올랐다. 

B씨는 17일 오후 10시20분께 경복궁 영추문 왼쪽 담벼락에 스프레이로 특정 가수 이름과 앨범 제목 등을 쓴 혐의(문화재보호법 위반)를 받는다. B씨는 범행 하루 뒤인 18일 서울 종로경찰서에 자진 출석해 약 6시간가량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경찰 조사에서 B씨는 “관심 받고 싶어서”라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복궁 담벼락 낙서 테러 사건이 처음 발생한 것은 이보다 앞선 16일이다. 경복궁 영추문과 국립고궁박물관 주변 쪽문, 서울경찰청 담벼락 등에 스프레이 낙서가 발견된 것. 

낙서범은 16일 오전 1시42분께 해당 장소 3곳에 스프레이로 불법 영상 공유 사이트 등을 적었다. 훼손된 범위만 44m에 달했다. 

경찰은 경복궁 담벼락 등을 스프레이로 훼손하고 도주한 10대 남녀를 추적 끝 범행 3일 만인 19일 검거했다. 오후 7시8분께 경기도 수원시 주거지에서 A군을 체포했고, 이어 오후 7시25분께 공범인 C양(16)을 인근 주거지에서 검거했다. 

경찰은 20일 오후 1시30분께부터 문화재보호법 위반과 재물손괴 혐의를 받는 A군과 C양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으며, 직접 스프레이 낙서를 하지 않은 C양은 다음날인 21일 0시께 석방하고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신원불상의 인물로부터 “낙서를 하면 돈을 주겠다”는 의뢰를 받고 이 같은 일을 저지른 것으로 파악됐다. 장소와 문구 역시 이 낙서 지시자가 정해줬다.

신원불상의 낙서 지시자는 300만원을 제시했으나, 실제로 A군은 범행 전 두 차례에 걸쳐 5만원씩 총 10만원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낙서 지시자는 A군과 C양이 범행을 마친 뒤 ‘수원 어딘가에 550만원을 숨겨놓겠다’고 한 뒤 연락을 끊었으며, 수사가 시작되자 ‘망한 것 같다. 도망다녀라’라는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A군과 C양은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상에도 낙서할 것을 지시받았지만, 경찰에 발각될 것을 우려해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A군의 영장실질심사도 이날 오후 3시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다. 

경복궁 낙서 훼손을 모방해 2차로 훼손한 후 예술활동이라고 주장한 20대 남성이 22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후 대기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경복궁 낙서 훼손을 모방해 2차로 훼손한 후 예술활동이라고 주장한 20대 남성이 22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후 대기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문화재 훼손 문제 심각..시민의식 개선 필요

후손에게 오랫동안 물려줘야 할 문화재를 훼손하는 사건은 중대한 범죄다. 하지만 시민의식 부재로 인해 우리 문화유산들이 몸살을 앓고 있는 실정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2008년 2월 발생한 ‘국보 1호’ 숭례문 화재 사건이다. 600년 역사 동안 서울을 지킨 상징적이고 역사적인 문화유산이 방화로 전소한 사건으로, 숭례문 복원을 위해 3만5000명의 인원과 227억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방화범은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이처럼 훼손된 문화재를 복구하기 위해서는 많은 돈과 인력이 투입된다. 그러나 범행을 저지른 이들은 ‘기분을 풀기 위해’, ‘관심 받고 싶어서’, ‘돈 때문에’ 등 황당한 ㅇ유를 늘어놔 국민을 분노케 했다.  

경복궁 2차 낙서범 B씨도 범행 후 자신의 블로그에 “예술을 했을 뿐”이라는 글을 올려 공분을 샀다. 

그는 “미스치프가 말하는 짓궂은 장난을 치고 싶었다”며 “죄송합니다. 아니 안죄송해요”라고 적었다.

또한 “다들 너무 심각하게 상황을 보는 것 같다”면서 “그저 낙서일 뿐이다. 숭례문을 불태운 사건을 언급하면서 끔찍한 사람으로 보는데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고도 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젊은세대를 중심으로 확산된 자기과시와 그라피티 문화가 문화재 훼손 범죄를 예술 행위로 합리화하는 행태를 낳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번 경복궁 담벼락 낙서 테러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이미 수많은 문화유산들이 낙서로 도배된 지 오래라는 것.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번 경복궁 담벼락 ‘낙서 테러’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러운 상황”이라며 “안그래도 언젠가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낙서 테러’를 공론화를 하려고 했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큰 논란이 된 건 사실이지만, 경복궁 및 다양한 궁 내에는 이미 낙서로 도배된지가 오래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파 속 팀원들과 함께 경복궁을 방문해 조사했다는 서 교수는 “아직도 수많은 낙서들이 자행되고 있었다. 대부분이 한글 낙서였지만 영어, 중국어 등 다양한 언어로도 남아 있었다”면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에 이런 일들이 벌어져 왔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물론 경복궁 안팎으로 CCTV 설치 대수를 늘리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대안이 될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땐 어렸을 때부터 교육이 강화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시민의식 개선 필요성을 언급했다.  

서 교수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자부심 및 긍지를 가질수 있도록 교육 환경을 조성한다면, 이러한 낙서 테러는 현저히 줄어들지 않을까 한다”며 “무엇보다 시민의식을 개선해야 할 시점이다. 스스로가 우리의 문화재 보존을 위해 더욱더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16일 낙서 현장을 찾은 자리에서 이번 낙서 테러 사건에 대해 ‘일벌백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최 청장은 “문화재를 한 번 훼손하면 엄격한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경종을 울리게 하는 계기가 되도록 경찰과 공조해 일벌백계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누리꾼들도 교훈 차원에서라도 낙서범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문화재 낙서 행위에 대해 솜방망이가 아닌 수백만원의 벌금과 징역을 선고하는 해외 사례들처럼 수위 높은 처벌이 이뤄져야 재발을 방지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문화재 낙서 행위가 중대 범죄라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일벌백계도 중요하지만 시민의식이 개선돼야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단순한 재미를 위한 일탈, 추억을 새기는 찰나의 행위가 수천 년의 역사를 망가뜨릴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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