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뉴스=박주연, 황민우 기자] 몇 년 전 방송가로부터 시작해 불어닥친 ‘복고’ 열풍이 여전히 뜨겁다.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물건부터 먹거리, 그리고 그 당시 유행했던 패션과 문화까지..퍽퍽한 일상 속 감성을 자극하기 충분하다. 스마트한 시대에 사는 오늘, 특히 기기의 진화는 그야말로 눈이 부시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기업과 사회 곳곳의 시선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그러나 진화에 진화를 거듭한 디지털 혁신의 뒤를 밟아보면, 새삼 기본기가 탄탄했던 ‘원조’의 위대함이 느껴진다.

LP는 최근 아날로그 열풍에 힘 입어 '핫한 음악 트렌드'로 인기를 끌고 있다. 해외 팝스타들도 새 앨범을 발매할 때 음원과 CD 형태 외 LP로도 함께 내놓는 추세다.<사진=뉴시스>

불과 20여 년 전 만 해도 CD보다 몇 배는 커다란 LP음반을 턴테이블에 걸고 바늘을 올려 놓아 음악을 듣곤 했었다. LP음반을 통해 흘러나오는 노래는 귀에 거슬리지 않는 적절한 잡음과 가끔 판이 튀어 같은 구간의 노래가 계속 반복되는 아날로그의 멋을 고스란히 담아 냈다.

◆100년이 넘는 역사..한국 대중음악의 신세계를 열다

한국 대중음악은 1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한다. 우리나라에 음반 자체가 처음으로 들어온 것은 1920년대부터지만, 1950년대 국내에 첫 도입된 LP음반 이전 사용했던 축음기 음반은 양면에 1곡씩 단 2곡만 녹음할 수 있었고, 재질이 약해 보관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

미8군의 영향으로 1950년 초반 선보인 LP음반은 가히 신세계였다. 단단한 플라스틱 재질에 한 면에 노래를 다섯 곡씩 저장 가능해 대중들은 더 많은 곡을 듣고 즐길 수 있었다. 이때부터 오아시스, 신세계, 오스카, 신성 등 70여 개의 레코드사는 LP음반을 제작하며 활발하게 번성해갔다.

이렇게 LP음반이 대중들에게 알려지면서 1960년대 전성기를 맞게 된다. 이 당시에는 신금을 울리는 트로트와 록 앨범과 포크 앨범 등이 큰 사랑을 받았다.

특히 한국 대중음악사와 LP음반의 전성기에 있어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를 빼놓고 논할 수 없을 정도. 본격적으로 LP음반시대가 열린 당시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는 10만장 이상이 팔리면서 그에게 큰 인기와 부를 가져다 줬다.

음반을 내놓으면 팬들의 영향에 힘입어 몇 백 만장이 쉽게 팔리는 지금과 비교했을 때 10만장이라는 숫자는 매우 적은 것에 불과해 보이지만, 당시 우리나라가 극빈국의 위치에 있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그야말로 은혜로운 성적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제작한 지구레코드 역시 음반제작 재벌로 떠오르며 이후 남진, 나훈아라는 양대산맥 대스타의 음반을 제작해 소녀 팬들을 열광케 했다.

LP음반을 즐겨 듣던 시대에 가장 핫 했던 장소를 꼽자면 음악을 LP로 들려주는 LP카페 혹은 음악 감상실이 단연 떠오른다. 음반은 보급됐지만 오디오 시스템이 집집마다 다 갖추지는 못 했던 그 시절, 음악 감상실은 청춘들에게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음악을 즐길 수 있었던 낭만의 공간이었다.

DJ의 느끼한 멘트와 청춘들의 오고 가는 속삭임 또는 눈맞춤, 그리고 진한 커피 향기까지 설렘이 가득한 공간에서 청춘들은 시대를 살아가는 지친 마음을 달래곤 했다.

이 같은 LP음반 시장은 가요 사전검열이나 음반 판매 금지를 당하는 등 불운의 시대를 겪으며 위축되기도 했지만, 서태지와 아이들 신드롬으로 대표되는 1990년대까지는 그나마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 무렵 새로운 저장매체인 CD의 등장으로 LP음반 업계는 쇠퇴기를 맞게 된다. LP음반처럼 턴테이블 없이 작은 플레이어나 컴퓨터로도 재생시킬 수 있는 CD는 작고 간편함은 물론, 깨끗한 음질까지 제공해 순식간에 음반 시장을 장악하게 됐다.

이후 기술 및 음원시장 등의 발전으로 MP3가 성행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개인 따로 음원을 저장하지 않아도 개인 휴대전화 등을 통해 음원사이트의 스트리밍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 LP음반은 한 마디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다.

◆원조의 반격, 또다시 숨쉬는 LP시장

그런데 아날로그보다 디지털에 더 익숙한 2010년 이후 LP음반 시장이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하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우리사회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LP음반들이 속속 복귀하며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07년부터 시작된 ‘레코드 스토어 데이’는 한정판 음반 등을 할인해 판매하는 행사로 미국, 영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레코드 유통업계들이 LP음반은 물론, 카세트 테이프, CD등에 대한 공격적인 할인을 진행해 매년 판매량을 급증시키고 있다.

음악 마니아들 사이에서 일어났던 ‘레코드 스토어 데이’의 영향은 대단했다. 지난 2014년 영국에서 129만장의 LP음반이 팔리는 기염을 토했고, 이는 전년 대비 70% 급증한 물량이다. 이 같은 인기 수요를 따라가기 위해 일부 공장들은 생산량을 한계로 끌어올리기까지 했다고.

이후 국내에서도 몇몇 애호가들 사이에서 유통되던 LP음반이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국내 마지막 LP음반 공장이었던 서라벌레코드는 폐업 6년 만인 지난 2011년 9월 다시 문을 열어 LP를 찍어내기 분주했다.

이와 함께 LP 수집가들의 성지라고도 불리는 회현동 지하상가 등 음반 시장도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특히 故김광석, 패티김, 조용필 등 기성 가수들의 음반 외에도 브라운아이드소울, 빅뱅 지드래곤, 2AM, 아이유, 장기하와 얼굴들, 얄개들 등 아이돌이나 인디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도 LP음반을 꾸준히 발매하고 있는 추세다.

국내 음반시장의 이 같은 시대의 역행은 앞선 ‘레코드 스토어 데이’의 영향이 크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레코드 스토어 데이’를 표방한 ‘서울 레코드 페어’를 2011년 개최, LP 마니아층은 물론 아날로그 음악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까지 LP음반 시장으로 불러들였다.

국내 최초의 음반 축제인 ‘서울 레코드 페어’는 시작 첫 해 단 하루 동안 약 2000명의 인원을 모으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

한정판 음반 혹은 이제는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희귀 음반을 구입하기 위해 지방에서부터 발품을 팔아 서울까지 올라온 사람, 난생 처음 LP를 접하고 구매한 사람 등 이날 모인 사람들 모두에게 새 포맷의 음악축제는 특별한 즐거움으로 기억됐다.

음악 애호가들의 축제라고도 부를 수 있는 이 행사는 1년에 단 한 번이지만 매년 성황리에 개최되고 있으며, 단순히 과거로의 추억 여행이라는 의미 보다 변화하고 있는 음악 시장의 흐름을 직접 체험하고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가수 아이유가 지난 2014년6월 첫 리메이크 앨범 '꽃갈피'를 한정반 LP로 선보였다.

◆젊은세대들의 ‘소유욕’..쇠퇴하는 음반 산업 살리다

내리막길을 걷던 LP음반시장에서 특히 놀라운 것은 주 수요자의 변화다. 이제는 과거와 달리 기성세대뿐 아니라 20~30대가 중심이 돼 과거의 감성코드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인스턴트를 쫓던 이들이 새로운 아날로그 감성을 접하며 과거보다 음반시장에 활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셈이다.

확실한 것은 이 같은 현상이 그저 ‘추억’ 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젊은 세대들은 LP판보다는 MP3, CD플레이어 더 멀리 바라보자면 워크맨 정도를 과거라고 추억할 나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굳이 장당 적게는 몇 천원 많게는 수 백 만원의 대가를 지불하면서까지 LP음반을 찾아 나선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새로운 것에 대한 소유욕이 불러온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자신이 열광적으로 좋아하던 가수의 CD나 카세트 테이프, 또 브로마이드를 모았던 과거 기성세대들처럼 20~30대의 LP 수요자들은 노래를 그저 귀로만 듣는 것 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한정판·희귀 앨범 등을 소유하고 싶은 욕심이 큰 까닭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가수들의 신곡이 발표되고 있는 요즘, 누구보다 발 빠르게 소비자들에게 음원을 제공하다 보면 본래의 음원 일부가 깎여 나가거나 왜곡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러나 LP는 그럴 일이 전혀 없다. 물론 가끔 잡음이 섞여 들릴 수는 있지만 이것마저도 아무데서나 들을 수 없는 희소성 있는 잡음이다.

즉, 이것이 LP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맛’이다. 이런 맛 때문에 굳이 발품을 팔아서까지 LP음반을 찾아서 듣는 것 아니겠는가.

이는 결국 LP음반 시장에 제2의 전성기를 가져왔고, 젊은 층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하며 음반 산업 발전에도 한 몫을 해내는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저작권자 © 공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