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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스토리
[공공story] 왜 버리질 못하니
#저장강박증 : 외로움·고독 속 ‘마음의 병’이 부른 행동 장애→치유 해법은 주변의 따뜻한 관심
이승아 기자 (114@00news.co.kr)  2020. 10. 16

[공공뉴스=이승아 기자] # ‘저장강박증(compulsive hoarding syndrome, 貯藏强迫症): 사용 여부에 관계없이 어떤 물건이든지 버리지 못하고 저장해 두는 강박장애의 한 가지.’

50대 주부 A씨는 최근 남편과 다툼이 잦아졌다. 특별히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을 자꾸만 구매하면서 남편의 잔소리가 늘었기 때문. 평소 생활비를 절약하며 검소한 생활을 해왔지만, 언젠가부터 마트나 시장에서 장을 볼 때면 당장 필요 없어도 일단 사고 보는 습관이 생겼다. 이렇게 쌓인 식재료들은 쓰레기로 버려지기 일쑤였고, 찬장과 싱크대 수납공간은 접시와 냄비와 각종 주방 용품들로 가득 찼다. A씨의 이런 행동은 폐경 이후 심해졌다. 폐경에 따른 우울증 등 증상을 겪었지만 남편과 두 아들은 여자인 아내, 그리고 엄마를 완전히 이해하기는 부족했다. A씨 역시 본인의 달라진 점을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를 구매하고 저장하는 일이 심적으로 편안하고 안정감을 줬기에 이를 멈출 수 없었다.    

<사진=뉴시스>

# “쟁여둬야 안심”..쓰레기까지 모은다

최근 tvN 예능 프로그램 ‘신박한 정리’가 인기를 끌면서 비움과 정리에 대한 중요성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지난 6월29일 첫 방송된 ‘신박한 정리’는 ‘집이 바뀌면 삶이 바뀐다’라는 모토로 시작한 예능. 배우 신애라와 윤균상, 개그우먼 박나래가 집 정리를 의뢰한 연예인의 집을 방문해 물건들을 정리하고 공간에 행복을 더하는 노하우를 함께 나눈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여파로 ‘집콕족’이 증가하면서 ‘정리 신드롬’은 대한민국을 강타했고, 많은 사람들은 정리를 통한 ‘미니멀 라이프’ 매력에 빠지게 됐다.  

이처럼 비움의 미학이 강조되며 ‘미니멀 라이프’가 현재 트렌드로 자리잡았지만, 그러나 전혀 다른 세상을 사는 이들도 있다. 바로 저장강박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다. 

저장강박증은 정신질환으로, 명칭만 들어도 어떤 강박증의 일종인지 아주 쉽게 추리된다. 이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물건을 사용 여부에 관계없이 계속 저장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쾌하고 불편한 감정이 든다.

이는 습관이나 절약 또는 취미로 수집하는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심한 경우 병원적 치료가 필요한 행동 장애다. 

저장강박증이라는 질환이 알려지기 전까지 집안에 온갖 잡동사니를 쌓아두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대개 그런 사람들은 ‘게으르다’는 고정관념이 박혀 있었다. 

하지만 집안이 쓰레기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심각한 경우는 조금 다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 저장강박증이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저장강박증이라는 질환이 대중들에게 알려지면서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따가운 시선은 많이 사라졌다. 일상생활에 위협적인 이 질환을 앓는 사람은 도움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사진=TV조선 영상 캡쳐>

# 정신질환의 일종..구조 신호 보내는 뇌

저장강박증의 발병 원인은 확실하지 않지만, 현재로서는 가치판단 능력과 의사결정 능력이 손상됐기 때문으로 의사들은 판단하고 있다. 

이들은 어떤 물건이 자신에게 필요한 것인지, 보관해 두어야 할 것인지, 버려도 될 것인지에 대한 가치평가를 쉽게 내리지 못하고 일단 저장해 둔다.

의사결정 능력이나 행동에 대한 계획 등과 관련된 뇌의 전두엽 부위가 제 기능을 못할 때 이런 증상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저장강박증은 보통 치매, 강박장애(OCD), 우울증, 조현병 등과 함께 오는 질환이다. 흔히 고령의 노인에게 발병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2년 전 저장강박증을 앓는 근황을 알린 배우 김교순에 대해 정신과 전문의는 “조현병으로 생각된다”며 “환청이나 망상이 줄어들 수 있도록 약물치료가 우선돼야 한다”고 진단했다.

김교순은 1970년대 스크린과 안방극장을 넘나들며 큰 인기를 누린 배우다. 

그러나 2018년 6월 TV조선 ‘구조신호, 시그널’을 통해 오랜만에 공개된 김교순의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진하게 그린 눈썹과 새빨갛게 칠한 입술로 이른바 ‘펭귄 할머니’로 불리는 모습은 물론, 쓰레기로 난장판이 된 집은 보는 이들을 경악케 했다. 

20년간 쓰레기 집에서 생활했다는 김교순. 당시 자원봉사자와 아파트 입주민 등 20명은 김교순의 집을 대청소했고, 청소는 48시간이 지나서야 끝났다. 

특히 김교순의 집에서 나온 쓰레기는 무려 4톤에 달했다.  

뿐만 아니라 김교순은 방송에서 “내 주변에 신이 79명 있다. 신들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등 불안정한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저장강박증은 여러 가지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저장강박장애·저장강박증후군·강박적 저장증후군이라고도 한다. 혹은 디오게네스 증후군이라고도 불린다.

디오게네스증후군이라는 이름은 남과 어울리기 싫어하고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던 고대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디오게네스는 좀처럼 자신을 돌보지 않고, 가꾸지 않았으며, 그저 지팡이와 다 낡은 바가지만 들고 다닌 것으로 전해진다. 오직 자유만을 위해 살았다.

알렉산드로스가 페르시아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뒀던 아소스 전투를 떠나기 전 조언을 구했던 철학자로 알려진 디오게네스지만, 그는 후세에 자신의 이름을 ‘디오게네스 증후군’이란 정신질환명으로 남기게 됐다. 

<사진=뉴시스>

# 마음의 질병 치유 해법은 ‘주변의 관심’

TV 프로그램이나 뉴스를 통해 저장강박증에 시달린다는 사람들을 가끔씩 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우리 주위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질환으로 자리잡았다. 

이미 미국에서는 저장강박증을 하나의 정신질환 카테고리로 인정하고 있다. 과거 미국인 20명 중 1명은 이 증상을 겪고 있다는 조사결과도 나온 바 있다. 

호주에서는 정부기금으로 운영되는 건강관리시스템을 이용해 무료로 저장강박에 대한 상담을 받아 볼 수 있다. 

한국에서도 저장강박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여러 자치구에서는 조례를 제정·시행 중이다. 현재 저장강박증 지원 조례는 2018년 9월 부산 북구를 시작으로 전국 21개 기초자치단체에서 시행되고 있다.

최근 서울시 동작구에서는 저장강박 의심 가구 지원을 위해 관례 조례를 제정했다. 제주시도 저장강박증 노인 가구 주거환경개선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으며, 대구시 역시 저장강박 가구를 돕기 위한 조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군산의 저장강박증 독거노인 맞춤형 지원, 충북 청주시도 저장강박증 가구를 돕기 위한 지원에 앞장서고 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질환에 대한 정부의 케어는 여전히 한정적인 상황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확실한 물증을 원한다.

그러나 코로나의 시대에 접어들어 우리는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맞서 싸우고 있으며, 그에 뒤따라 코로나 블루도 우리 생활 깊숙히 들어와 자리 잡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전문의에 따르면, ‘마음의 질환’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상태에 대해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없다.

저장강박증의 치료는 다른 강박장애보다 더욱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고령자일수록 혹은 어느 통계에서는 생계가 어려울수록 더 쉽게 찾아온다고 한다.

때문에 코로나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혼자사는 독거노인, 사회적 취약 계층을 찾는 발걸음이 줄어들고 이들의 고립이 심화되고 있는 점은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코로나 위기를 빠르게 벗어나기 위해 거리두기의 생활화, 비대면 문화가 확산된 상태지만 취약 계층까지 외면하고 관심을 주지 않는다면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바이러스는 그들의 마음을 병들게 할지도 모른다. 

무관심에 따른 외로움과 고독 속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 때문에 자꾸만 무언가를 저장하는 것은 아닐까. 마음의 병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무엇보다 주변의 관심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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