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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스토리
[공공story] 심판할 수 없는 가치
#인종차별:애틀랜타 총격사건 등 亞 혐오범죄에 전세계 규탄→배타적 시선 멈추고 존엄성 인정
박혜란 기자 (114@00news.co.kr)  2021. 03. 28

[공공뉴스=박혜란 기자] # “엄마이기보다 친구였다. 엄마는 춤추는 것과 파티를 좋아했다. 클럽에 가는 것을 좋아했고, 꼭 10대 같았다. 엄마는 나와 동생을 위해 평생을 바친 싱글맘이다. 엄마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었고,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다. 그녀를 잃고 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증오의 렌즈를 끼게 됐다”

최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발생한 연쇄 총격 사건 이틀 후 희생자인 현정 그랜트씨 아들이 한 온라인 크라우드 펀딩 웹사이트 계정에 적은 글이다. 지난 16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는 전세계를 전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총격사건이 발생했다. 20대 백인 남성은 애틀랜타 일대 3곳의 스파와 마사지숍 등에서 무차별 총기를 난사해 총 8명의 무고한 생명이 목숨을 잃었다. 특히 이 사건으로 한인 여성 4명이 숨졌으며, 이들을 포함해 희생자 6명이 아시아계 여성으로 파악돼 혐오 및 증오범죄 논란이 일며 미국 도심 곳곳에서 규탄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애틀랜타 총격 사건 희생자인 현정 그랜트(김현정)씨와 아들들. <사진=고펀드미 캡처>

# 애틀랜타 연쇄 총격 희생자에 전세계 추모 물결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한인타운에서는 27일(현지시각) 아시아인에 대한 증오범죄 근절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LA 한인회 등 40여개 한인 단체가 주관한 이날 집회에는 2000여명의 인원이 참석했다.  

이들은 한인타운 인근 올림픽 대로를 행진하며 최근 애틀랜타 연쇄 총격 사건으로 숨진 한인 4명을 포함해 이사아계 여성 6명을 애도했다. 

특히 이날 한인 외에도 다른 아시아계와 흑인, 히스패닉 시민이 대거 동참하며 연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제임스 안 한인회장은 “한국인을 비롯해 수많은 아시아계 미국인이 인종차별과 증오범죄 피해를 보고 있다”면서 “’아시아인 증오를 멈춰라’ 운동은 이제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는 다른 인종 단체들과도 연대해 증오범죄와 인종차별을 근절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LA 웨스트 할리우드 등 도심 곳곳에서도 이날 관련 집회가 개최됐다. 

아시아태평양코커스(CAPAC) 의장인 중국계 주디 추 연방하원의원과 한인타운을 지역구로 둔 지미 고메스 하원의원, LA 지역 시의원들은 아시아인 증오범죄에 맞서 끝까지 싸우겠다고 약속했다.

전날(26일)에는 이번 사건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애틀랜타 총격 사건 피해자 전 세계 촛불 추모식’ 행사가 온라인으로 개최됐다. 

메트로 애틀랜타 한미연합회(KAC)가 주최한 이 행사에 참석한 연사들은 아시아계에 대한 폭력과 증오를 멈추기 위해 연대해서 싸울 것을 다짐했다. 

이날 온라인 추모식에는 불교, 기독교 등의 종교 지도자가 나와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고 유족을 위로했다.

세라 박 메트로 애틀랜타 한미연합회 회장은 “아시아태평양계(AAPI)를 향한 차별과 폭력, 증오의 문제는 미국과 세계의 문제가 될 것”이라며 “우리는 이를 극복할 때까지 멈추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한국계인 샘 박 조지아주 하원의원은 “내가 들은 가장 흔한 말은 ‘다음은 내 차례냐’하는 것”이라며 “여기는 우리 집이고 우리나라다. 우리는 우리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해 맞서서 싸울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백악관도 세드릭 리치먼드 선임 고문을 통해 보낸 성명으로 이들의 목소리에 힘을 보탰다. 

백악관은 성명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아시아계를 향한 폭력의 증가를 규탄하며 증오범죄는 미국에서 안전한 피난처가 없다고 분명히 했다”고 전했다. 

또한 주지사 26명은 인종주의와 폭력을 증오하며 아시아계를 보호하고 지지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공동 성명을 냈다. 미 연방하원의 한국계 하원의원 4명 역시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애틀랜타 총격 사건 범인 애런 롱. <사진=연합뉴스TV 캡처>

# 각계각층서 쏟아진 규탄 목소리..증오범죄 멈춰라!

“제발 빨리 와주세요” 16일 오후 5시45분쯤 911에 골드스파 마사지숍의 여성 점원으로부터 신고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강도를 피해 숨어 있다며 작은 목소리로 도움을 요청했다. 이곳에서만 한국인 3명이 숨졌다.

당시 백인 청년 로버트 애런 롱(21)은 세 군데의 마사지숍을 돌며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이로 인해 8명이 사망했다.   

LA 한인회는 즉시 성명을 내 “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기간 미국 전 지역에서 발생한 아시아계 대상 증오범죄임이 명백하다”라고 규탄했다. 

하지만 경찰은 롱이 주장한 성 중독에 의한 살인 쪽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해 비판이 일었다.

인종증오 범죄 논란이 커지자 바이든 대통령과 카밀라 해리스 부통령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겪는 고통에 공감한다며 정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앞서 밝혔고, 이후 19일 애틀랜타를 방문했다.

이에 한국계 의원인 샘 박 미국 조지아주 하원의원은 “위안이 되는 일이었다”라고 평가했다.

이와 함께 20여개 한인단체가 구성한 ‘애틀랜타 아시안 대상 범죄 범한인 비상대책위원회’가 이번 사건을 명백한 인종범죄라고 규탄하며 신속하고 공정한 수사를 촉구하는 내용을 담은 성명서도 이날 대통령 측에 전달했다.

한국계 의원인 영 김과 미셸 박 스틸 공화당 연방 하원의원도 최근 CNN에 함께 출연해 인종차별적 언행을 비판하고 나섰다.

김 의원은 “증오에 맞서 싸우는 것은 당파적인 문제가 아니다. 어떤 공동체에 대한 폭력이든 결코 용납될 수 없다”라고 지적했으며, 스틸 의원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비판과 차별의 표적이 되는 이 상황을 바꿔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두 의원은 18일 하원 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차별과 폭력’ 청문회에 증인으로도 참석한 바 있다. 

아시아 증오범죄에 대한 비판은 정치권에서만 머물지 않고 연예계로도 빠르게 퍼져나갔다.

나탈리 포트만, 킴 카다시안, 두아 리파, 아리아나 그란데, 저스틴 팀버레이크, 리한나 등 유명 할리우드 배우들과 가수들도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멈추라는 메시지를 담은 글을 올렸다.

국내에선 가수 씨엘, 박재범 등 자신의 SNS에 애틀랜타 총격 사건과 관련한 기사 캡처 사진이나 관련 문구 ‘STOP ASIAN HATE’가 적힌 팻말을 든 사진 등을 올려 인종차별금지운동에 대한 지지를 표시했다. 

애틀랜타 출신 한국계 가수 에릭 남은 미국 시사잡지 타임(TIME) 기고문을 통해 “애틀랜타 총기 난사에 인종적 동기가 없다고 가정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인종차별적”이라며 “이제는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달라”라고 호소했다.

미국 할리우드에서 활약 중인 영화배우인 샌드라 오 역시 최근 개최된 ‘아시안 증오 멈춰라’ 집회에 참석해 확성기를 직접 들고 “우리는 처음으로 (아시아 증오범죄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과 분노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 저는 아시아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라고 연설했다.

<사진=뉴시스>

# 다문화에 배타적으로 작용하는 인식 개선 필요

사실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은 서양국가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노골적으로 드러나며 사회적 문제로 번졌고, 그 파장인 일파만파 확대됐다. 

미국 뿐만아니라 최근 해외 여러나라에서도 코로나19 이후 인종차별적 공격을 당한 경험이 증가했다는 조사 결과가 이어졌다.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세계로 확산되며 1년 넘게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중국뿐만 아니라 아시아인 전반에 대한 혐오가 확산된 셈이다. 

그러나 인종차별 문제는 비단 서양국가들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아시안 혐오와 백인 우월주의에 저항하는 목소리가 전세계에서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우리는 얼마나 이타적이었는가를 되돌아보게 한다.  

한국 역시 코로나19 확산 초기 중국인에 대한 혐오를 정당화한 적 있고, 최근에는 서울 등 몇몇 지방자체들이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코로나19 진단검사를 의무화하면서 인종차별이라는 지탄을 받았다.

외국인을 코로나19 진단검사가 필요한 감염병 의심자 및 불법을 행한 범죄자로 인식하게 한다는 지적. 이와 관련, 외국인들은 혐오와 인종차별처럼 느껴진다며 국가인원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기도 했다.

우리 사회가 비한국계 집단에 대해 상당히 배타적이라는 점을 여실히 느끼게 하는 대목.

최영애 국가인권위 위원장은 “이주민을 배제하거나 분리하는 정책은 이주민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차별을 얘기할 수 있고 인종에 기반한 혐오범죄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라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차별적 관념과 태도가 생산되지 않도록 특별히 유의해 달라”라고 당부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 내 다문화 가족이 빠르게 증가하며 다문화 사회로 진입했지만, 그러나 다문화 가족에 대한 인식 개선은 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다문화가구는 약 35만4000가구로 2018년(33만5000가구)에 비해 1만9000가구 증가하는 등 다문화 가족이 우리 사회에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다.

또한 다문화 출생아 수는 지난해(4.5%)보다 늘어난 1만8000여명으로 전체 출생아의 5.9%를 차지하고, 다문화 학생수는 2020년 14만7000명으로 2019년 13만6000명에 비해 1만1000명으로 증가했다.

외국인과의 혼인도 지난해 2만4721건으로 전체 혼인 대비 10.3%로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아직 한국인들이 이주민을 차별하고 무시하는 경향이 생활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이주민 A씨는 “한국 사람들의 인종차별 기준은 경제적인 면에서 많이 보는 것 같다”라며 “못 사는 나라에서 온 사람을 무시하다가도 미국에서 고위급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하면 태도가 변한다”라고 꼬집었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가 발표한 2019년 4월부터 10일까지 이주민 338명 대상으로 설문조사 및 22명 대상 면접조사 결과 한국사회 인종차별 사유는 한국어 능력이 62.3%로 가장 높았고 한국인이 아니라서가 59.7%, 출신국가가 56.8%, 악센트(말투)가 56.6%, 문화적 차이 45.4% 등이었다.

차별 유형은 언어적 비하(반말, 욕, 조롱) 표현을 들었다가 56.1%, 사생활에 대해 지나치게 물어본다 46.9%, 다른 사람이 나를 기분 나쁜 시선으로 쳐다봤다 43.1%, 일터에서 승진·작업배치·임금·보너스 등에 관해 불이익을 받았다 37.4%, 채용을 거부당했다 28.9%, 다른 사람이 내가 하는 말을 믿지 않았다 27% 등이 있었다.

이외에도 신체적 폭력이나 협박을 당했다 10.6% 중 남성이 15.3%로 여성 7.6%보다 높았고, 성희롱이나 성폭력을 당했다는 7.1% 중 여성(8.1%)이 남성(5.7%)보다 많았다.

이에 인권위는 “국내 많은 법체계에서는 인종, 민족, 피부색, 종교 등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원칙을 두고 있으나 대부분 선언에 그치고 실질적 구속력을 갖지 못한다”라며 “인종차별 전반에 대한 실효성 있는 구제 절차를 마련하기 위해 포괄적 차별금지법 또는 평등법이 마련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차별금지법은 합리적 이유 없이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성적지향성,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언어 등을 이유로 고용, 교육, 행정서비스, 상업시설 이용 등에 있어 분리·구별·제한·배제·거부 등 부당한 차별을 금지하는 것.

차별 피해자는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할 수 있고, 시정권고를 받은 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권고 미이행시 3000만원 이하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다. 또한 배상금이나 증명책임전가 등도 가능해진다.

이한숙 이주와 인권연구소 대표는 이 같은 차별금지법 제정 움직임 자체가 유의미하다고 평가했다.  

이 대표는 <공공뉴스>에 “(차별금지법은)사회가 차별을 금지하는 것에 동의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법”이라며 “때문에 법 제정은 그 과정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다누리 상담 전주센터 관계자는 “이주노동자들 대상으로 임금체불·가정폭력 상담을 지원하는데 작년 코로나로 정부가 마스크를 지급 당시에 ‘우리에겐 마스크를 주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건 잘못 됐단 생각이 들었다”며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이지 않을까”라고 전했다. 

평등(平等)은 인간의 존엄성에 근거한 것이며, 권리와 인격 등에 있어 차별이 없이 같은 상태를 말한다. 인간은 누구나 존엄한 존재이며, 국가나 피부색 등이 다르다고 미워하거나 혐오의 대상으로 여겨서도 안 된다.

‘감히 범할 수 없고 높고 엄숙한 성질’을 지니는 존엄성을 그 누구도 함부로 훼손하거나 심판할 수 없다는 얘기다.

전세계가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다양한 교류를 많은 면면의 변화를 가져왔다고 해도 그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한 구성원으로서 뿌리깊게 박힌 차별적 시선은 나 자신은 물론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발전에도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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