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진머티리얼즈 인수·에너지솔루션 물적분할 등 박차
신성장동력 투자 방법·시기 놓고 승부수 띄우기 나서
IRA로 배터리 산업 파장..과감한 투자 중요한 요인 꼽혀

[공공뉴스=임혜현 기자] 배터리 산업을 한국 차세대 먹거리로 삼기 위한 기업들의 노력이 분주하다.

이런 가운데 주요 대기업에서 배터리 영역 투자를 위해 승부수를 띄우는 회장의 역할이 눈길을 끌고 있다. 다양한 문제가 부각되는 상황에서 불확실성을 고려해 결정을 짓기 위해서는 결국 판단력과 결단이 최종 관문이 되기 때문. 

미국 등 각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위시한 자국 우선주의와 첨단 기술영역 독점에 나선 상황에서 이런 미덕은 더 절실하다.

배터리 관련 과감한 결단을 내려 주목받는 그룹 총수들. 왼쪽부터 구광모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진제공=각사>
배터리 관련 과감한 결단을 내려 주목받는 그룹 총수들. 왼쪽부터 구광모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진제공=각사>

화학과 엔솔 한 몸..LG, 물적분할에도 ‘둘 다 발전’ 과제 해결

29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LG와 롯데의 배터리 투자가 눈길을 끌고 있다. 이들 그룹은 발전을 위해 올해 과감한 ‘변화’와 ‘쇄신’ 인사를 단행했다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LG그룹이 단행한 배터리 분할 수술이 안착 양상을 보이면서 주목받고 있다. 

LG화학은 지난 2020년 12월 배터리 사업부를 분리해 LG에너지솔루션을 설립했고, 올해 1월 상장했다.

기업이 사업부를 새 회사로 독립시키는 방식에는 ‘물적 분할’과 ‘인적 분할’이 있다. 물적 분할은 존속회사가 신설 회사의 지분을 100% 확보하는 방식이고, 인적 분할은 기존 주주들이 지분율대로 기존 법인과 새 법인의 주식을 나눠 갖는다.

LG화학 물적 분할의 경우 뜨거운 감자로 부각됐다. 신성장 사업인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분할하는 과정에서 기존 LG화학 주주들의 박탈감이 없을 수 없었던 때문. 

위의 분할 방식 설명처럼 알짜 성장 사업이 분리됐는데 LG화학 소액주주는 LG에너지솔루션 지분을 받을 수 없게 된다. 

기업 발전 과정에 적합한 방식을 택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지만, 논란이 커지면서 금융 당국은 상장사의 주주가 물적 분할에 반대하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게 소액주주 권익 제고 방안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결국 두 회사의 분할과 상장 등이 가져온 효과를 보면 갈등 가능성에도 이때 과감한 결정을 한 것이 큰 틀에서 미래를 내다 본 시너지였다는 평이 나온다.

LG화학은 특히 그룹의 모태 격인 회사다. 락희화학 시절부터 LG의 중심 역할을 해 온 회사에서 가치가 높은 사업을 떼어내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판단력도 의심을 받을 수 있는 상황.

반발보다 배터리 사업 본격화에 필요한 타이밍을 택한 것은 결국 두 회사 모두에 득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분할해서 떨어져 나온 배터리사업부 즉 LG에너지솔루션은 상장으로 확보한 자금을 투자밑천으로 활용, 성장 토대를 닦는다. 올해 6월 말 기준 수주 잔고가 300조원을 넘은 것으로 알려진다.

이달 22일 국제 신용평가회사 스탠다드앤푸어스(S&P)와 무디스는 LG에너지솔루션에 각각 BBB+의 신용등급과 긍정적(Positive) 전망, Baa1의 등급과  안정적(Stable) 전망 평가를 제시했다.

두 신평사의 등급 기준을 고려할 때 이들 등급은 동일한 수준으로 평가된다. S&P는 리포트에서 “LG에너지솔루션이 지배기업의 핵심 자회사라는 견해를 반영했다”고 설명했고, 무디스는 “LG에너지솔루션에 스트레스가 발생할 때 모회사인 LG화학으로부터의 강력한 지원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를 바탕으로 두 단계의 상향했다”고 평정 근거를 밝혔다.

이런 해석은 LG그룹이 화학과 에너지솔루션간 구도에서 둘 모두를 함께 띄워야 한다는 당연한 인식을 다시 확인한 것이라는 의미가 있다. 즉 배터리라는 차세대 먹거리가 아무리 탐나도, 둘은 한 몸인 만큼 분사 여파로 LG화학 본체가 흔들리는 건 전체적 구도에서 문제다.

이런 점에서 옳은 선택이었음을 입증해야 하는 과제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분사 후 현재 LG화학의 성적표를 보면 배터리사업부 없이도 발전과 투자에서 독보적인 아성을 확보하고 있는 점이 확인돼 구 회장의 결단이 만용이 아닌 적극적 투자였다는 점에 한층 무게가 실리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LG화학의 올해 2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7% 증가한 12조2399억원선.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878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9.0% 감소했지만 첨단소재 부문과 생명과학 부문이 견조한 실적으로 향후 기대감을 높였다.

첨단소재 부문 매출은 전지재료 출하 확대와 원재료 가격 상승에 따른 판가 인상이 지속되면서 분기 최대 매출을 달성했다.

생명과학 부문도 당뇨치료제와 성장호르몬 등 주요 제품의 판매 호조로 견조한 실적을 내 관심을 모았다.

이는 LG화학의 체질 변화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석유화학 부문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여전히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지만 신사업 부문에서도 진일보한 것이기 때문.

이런 상황에서 국내 최대 규모의 탄소나노튜브(CNT) 공장 증설도 추진된다. 최근 전기차 배터리 소재를 중심으로 급성장에 따라 연산 3200톤 규모의 CNT 4공장을 2024년 하반기 상업 가동을 목표로 하는 투자에 나선 것이다.

LG화학의 CNT는 LG에너지솔루션 등 배터리 업체에 양극 도전재 용도로 공급될 전망이라서, 협력 시너지 의미가 크다.

최근 유안타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LG화학의 3분기 예상 실적은 매출액 13조1000억원, 영업이익 8607억원, 지배주주 순이익 5303억원이다. 영업이익 추정치는 전년 동기 7291억원 대비 18% 증가하는 셈이다.

황규원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2022년 2분기 8790억원과 비슷한 수치”라고 말했다.

LG에너지솔루션 직원들이 자동차용 배터리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제공=LG에너지솔루션>
LG에너지솔루션 직원들이 자동차용 배터리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제공=LG에너지솔루션>

◆일진머터리얼즈 인수 본격화, 롯데 활로 개척에 묘수

롯데케미칼은 국내 2위 동박 제조업체인 일진머티리얼즈 인수를 적극 추진, 마무리 단계에 있다. 롯데케미칼은 28일 이사회를 열어 미국 배터리 소재 사업 투자기업인 ‘롯데 배터리 머티리얼즈 USA(LBM)’의 주식 100주를 2750억원에 추가 취득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롯데케미칼은 “추진 중인 해당 사업의 인수 건은 현재 시점에서 확정되지 않았다”며 “추후 확정때 관련 공시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인수 대금 확보를 위한 안건이 통과된 만큼 사실상 인수는 기정사실화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일진머티리얼즈는 2차전지 핵심 소재인 동박을 생산하는 기업이다. 동박은 두께 10㎛(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 이하의 얇은 구리 박을 말하며, 전기차와 에너지저장장치(ESS) 2차전지 음극집전체에 사용되는 핵심 소재로 꼽힌다.

롯데가 배터리 소재 분야에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동박 시장에서 13%의 점유율로 4위를 차지하고 있는 일진머티리얼즈 인수를 통한 시너지가 필요하다.

인수 추진 과정에 고심할 부분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인수 대금이 시장 예상치 대비 높다는 평가와 자금 유출에 대한 할인 이슈 등이 제기됐던 것. 

하지만 이는 롯데케미칼이 동박 사업육성 의지가 강하고 자금력까지 갖춘 유력한 인수후보자라는 점을 과시하면서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었다. 

딜 초반만 해도 가격이 3조원을 훌쩍 넘어서고 높은 몸값에 인수후보자들이 이탈하는 등 상황이 요동치는 상황에 오히려 롯데 측은 인수 본입찰에 사실상 단독으로 참여하는 등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글로벌 주식시장 침체 영향도 전혀 없진 않았겠으나, 이런 롯데 태도가 일진 측의 전향적 태도 변화와 계약 성사를 이끌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글로벌 전기차 소재업체로 본격 도약하기 위해 신동빈 롯데 회장이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평가하는 시각이 유력하다. 

앞서 6월 신 회장은 헝가리에 있는 롯데알미늄 양극박 공장을 방문하고 “유럽 전기차 시장을 선점할 수 있도록 1100억원을 추가 투자해 양극박 생산 규모를 2배로 늘리기로 했다”고 밝히는 등 배터리 관련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롯데케미칼의 이번 투자는 그룹 오너의 일방적 판단이 아니라 회사 차원에서의 다각화 필요 상황에서도 절묘한 한 수로 볼 수 있다. 경기 침체 우려와 고환율로 인해 비용 부담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사업 다각화를 통해 활로를 개척하고 있다는 평가다. 

최고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회사는 인도네시아 라인(LINE) 프로젝트와 같이 생산거점을 다각화하며 증설투자를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며 “2030년까지 배터리 소재와 수소 에너지 분야에 각각 4조원, 6조원을 투자할 방침으로 시간이 걸리겠지만 재평가 요인들은 유효하다”고 분석했다.

<사진=뉴시스, 롯데지주>

두 그룹 모두 빠른 의사 결정과 속도감 눈길..IRA시대 미덕

LG와 롯데는 배터리에 박차를 가한다는 점 외에도 모두 지난해 연말 윤곽을 드러낸 2022년 임원인사에서도 변화와 혁신을 택했다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LG는 미래신규 사업 발굴과 투자 등을 담당할 경영전략부문과 지주회사 운영 전반 및 경영관리 체계 고도화 역할을 수행할 경영지원부문을 신설해 미래 먹거리 확보에 속도를 낼 뜻을 분명히 했다. 

롯데그룹은 기존 비즈니스 유닛(BU) 체제를 대신해 헤드쿼터(HQ) 체제를 도입했다. 각 HQ가 1인 총괄 대표를 중심으로 움직이게 돼 의사결정 속도 문제를 해결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이런 맥락에서 배터리 분야에 대한 과감한 결정에 회장의 역할 모델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점은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우리나라 배터리 산업은 큰 격랑을 맞이하고 있다. 하지만 황경인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우리 배터리 기업들의 북미지역 생산 기반 확대 움직임이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짚는다.

그는 “우리 기업들의 북미 생산 확대 추세가 규모와 속도 양면에서 모두 경쟁국보다 확실히 우위에 있고, 미국에 제조시설을 갖고 있는 완성차 업체들과 협력 관계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IRA 발효가 중장기적으로는 수혜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갈수록 기술력만이 아니라 과감한 경영감각이 중요한 요소가 되는 이 같은 국면에서 두 그룹의 배터리 관련 결단 이슈들은 의미를 부여해 볼 필요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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