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농축산물 선물 가격 상한..“내수 활성화” vs “법 취지 훼손”
권익위, ‘20만원→30만원’ 조정 지난 21일 시행령 개정안 의결
공직자 등 부정청탁 금지 목적 2016년 9월 시행..실효성 물음표

공공뉴스=김수연 기자 명절만 다가오면 반복되는 장바구니 물가 상승과 함께 오르는 것이 또 있다. 바로 ‘김영란법’ 금액이다. 

공직자 등에 대한 부정청탁 및 금품 등의 수수를 금지하는 이른바 ‘김영란법’ 상한액이 명절 때마다 손질되고 있는 것.  

정부가 명절에 공직자 등이 받을 수 있는 선물 가격 상한액을 올리는 것에 대한 명분은 내수 촉진이다. 그러나 일시적으로 선물 한도액을 높이는 것에 대한 경제 활성화 효과는 미지수라며 생색내기용에 불과하다는 시선도 있다. 

일각에서는 공공부문의 투명성을 높이고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법 취지가 훼손됐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회원들이 지난 2016년 8월8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등 금지에 관한 법률' 입법취지 훼손 규탄 기자회견에서 김영란법 기준 완화 시도 규탄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회원들이 지난 2016년 8월8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등 금지에 관한 법률' 입법취지 훼손 규탄 기자회견에서 김영란법 기준 완화 시도 규탄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추석 앞두고 ‘김영란법’ 또 손질

24일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전원위원회 회의를 열고 공직자 등이 주고받을 수 있는 설·추석 농축산물 선물 가격 상한을 기존 20만원에서 30만원으로 상향 조정하는 내용을 담은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김영란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권익위는 농·축·수산업계와 문화·예술계 등을 지원하기 위해 청탁금지법상 공직자등이 예외적으로 받을 수 있는 농수산물·농수산가공품 선물 가액을 상향하고 공연관람권 등 온라인·모바일 상품권도 선물에 포함시켰다. 

청탁금지법 시행령 개정안 구체적 내용을 살펴보면, 기존 농수산물·농수산가공품 선물 상한액인 10만원(설날·추석 20만원)을 15만원(설날·추석 30만원)으로 상향한다. 

설날·추석 선물기간은 설날·추석 전 24일부터 설날·추석 후 5일까지다. 이번 추석은 내달 29일로, 농수산물·농수산가공품 선물 가액이 2배로 상향되는 추석 선물기간은 오는 9월5일부터 10월4일까지다.

또한 유가증권 중 물품 및 용역상품권에 한해 선물이 허용되며, 바로 현금화가 가능해 금전과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백화점상품권 등 금액상품권은 포함되지 않는다.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청탁금지법 시행은 2010년 일명 ‘벤츠 여검사 사건’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한 여검사가 수사 청탁을 대가로 벤츠 승용차 등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지만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국민적 공분을 산 사건이다.  

이와 관련, 당시 김영란 권익위원장이 2012년 8월 직무 관련성이 없는 금품을 수수한 공직자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한 청탁금지법 제정안을 발표했으며, 오랜 논의 끝 2015년 3월 국회 본회의에서 법안이 통과됐다. 이후 2016년 9월28일 시행됐다. 

권익위는 올해 시행 7년 차인 청탁금지법이 그간 우리 사회의 부정청탁, 금품수수와 같은 불공정 관행을 개선해 보다 투명한 청렴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당초 이 법은 공직 사회의 부정부패를 막고 국민적 신뢰도를 확보하겠다는 취지였으나, 입법 과정에서 사립학교 교직원과 언론인 등 민간부문까지 적용 대상이 확대됐다. 

특정 직업군에 한해 식사비와 경조사비, 선물 가액 등 범위를 규정한 법은 특히 매년 명절 때만 되면 주목을 받고 있다.

농어촌을 도와야 한다는 입장과 법 원칙 훼손 입장이 상충하며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는 것. 

실제 이번 청탁금지법 손질은 최근 이상기후로 인한 집중호우, 태풍·가뭄 등 자연재해, 고물가, 수요급감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축·수산업계 등에 대한 지원 목소리가 커진 데 따른 것이라고 권익위는 설명했다.  

앞서 이달 18일 농·축·수산업계와 문화·예술계 대표, 농림축산식품부·해양수산부·문화체육관광부 등 정부부처 관계자 등이 참석한 민·당·정협의회에서 농·축·수산업계 등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한 공감대 형성과 함께 청탁금지법 개정을 한 목소리로 요구한 바 있다.

이에 권익위 전원위원회는 청탁금지법 시행령 개정 필요성에 대해 다각적인 논의를 진행했다. 그 결과 변화하는 사회·경제적 상화, 비대면 선물 문화와 같은 국민의 소비패턴 등과 유리된 규제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법령 개정이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김홍일 권익위원장은 “이번 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농·축·수산업계, 문화·예술계 등의 피해 상황을 고려한 결정”이라며 “국민 여러분들께서 이해해 주시길 부탁드린다”라고 말했다.

지난 22일 서울 서초구 한 마트에 청탁금지법 시행령개정으로 인한 농축수산물 선물상한액 증가 관련 안내 현수막이 설치되어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지난 22일 서울 서초구 한 마트에 청탁금지법 시행령개정으로 인한 농축수산물 선물상한액 증가 관련 안내 현수막이 설치되어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부패 방지 취지 훼손”..시민단체 반발

그러나 시민단체는 “권익위가 제안해 만들어진 청탁금지법 취지를 스스로 훼손하고 있다”고 비판 목소리를 높였다. 

참여연대는 논평을 내고 “권익위와 정부는 청탁금지법 시행령 개정을 위한 절차를 즉각 중단하고 국민의 의견부터 들어야 한다”며 추석 선물 가액 상향조정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참여연대는 “과거 권익위는 농수산물의 선물가액은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상향한 바 있고, 국회는 아예 한 술 더 떠 명절에 주고 받을 수 있는 농수산물의 선물가액을 두 배로 늘렸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권익위의 의결이 국무회의까지 통과하면 공직자들은 이번 추석부터 30만원까지 민간인에게 선물을 받거나 공직자끼리 주고 받을 수 있게 된다”며 “도대체 30만원짜리 농수산물 선물이 어떻게 미풍양속이 되고 의례적 선물이라고 할 수 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또한 권익위가 주고 받을 수 있는 선물 범위에 온라인 모바일 상품권 등을 포함시킨 것을 언급하며 “사용내역에 대한 추적이 어렵다고 반대하던 권익위가 어떠한 근거로 입장을 바꿨는지, 충분한 검토의 결과인지 의문”이라고 질타했다. 

참여연대는 “정치권의 요구에도 부패의 방지를 목적으로 설립된 권익위는 달랐어야 한다”면서 “권익위가 앞장서 제안해 만든 청탁금지법을 형해화시키는 결정을 충분한 논의도 없이 진행하는 것은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권익위는 지금이라도 의결을 재고해 국무회의 부의를 중단하고 국민들의 의견부터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실효성 의문에 대한 지적은 매년 제기되고 있다. 접대문화 위축에는 기여했지만, 신고하지 않으면 처벌이 불가능하다는 한계는 존재한다. 

뿐만 아니라 부정부패 척결 취지가 무색하게 경기 침체 극복 대책으로 동원되고 있다는 점도 기형적인 모습이다.

추석을 앞두고 농·축·수산업계를 지원하겠다는 취지에는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지역 경제계도 환영하고 있다. 그러나 때만 되면 손질되는 법안에 대한 실효성은 다시 검증해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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