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링클러 없는 노후아파트 화재 연이어 발생
소방기본법 개정 후 강제처분 사례 전국 4건 뿐
집행 이후 겪을 불이익 우려에 현장 적용 안 돼
강제처분에 대한 국민의 적극적 이해·협조 필요

공공뉴스=김소영 기자 최근 스프링클러가 없는 전국의 노후 아파트에서 화재가 연이어 발생해 국민 불안이 커져가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소방차의 긴급출동을 방해하는 불법 주·정차 차량 강제처분제도의 실효성 확보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생명의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소방차 진입로를 가로막는 불법 주·정차 차량들은 화재진압 골든타임 확보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앞서 2018년 긴급출동을 방해하는 주·정차 차량에 대한 강제처분 및 손실보상 등을 명확히 하는 소방기본법 개정이 이뤄졌지만, 그러나 현장에서 제대로 적용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8월14일 대구 동구 괴전동 일대에서 열린 재난 현장 신속 출동 및 원활한 소방 활동 전개를 위한 불법 주·정차 강제처분 훈련에서 소방대원이 출동로 상 황색 이중 실선에 불법 주차된 차량을 소방차로 강제 돌파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해 8월14일 대구 동구 괴전동 일대에서 열린 재난 현장 신속 출동 및 원활한 소방 활동 전개를 위한 불법 주·정차 강제처분 훈련에서 소방대원이 출동로 상 황색 이중 실선에 불법 주차된 차량을 소방차로 강제 돌파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2017년 제천 화재 이후 개정된 소방기본법

2일 소방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는 2993건이다. 이는 2022년 2759건 대비 8.4% 증가한 수치이며 최근 5년간 가장 많은 수치이기도 하다. 

특히 올겨울 들어 아파트 화재로 인한 피해가 빈발했다. 지난 달 2일에는 경기 군포시 산본동의 아파트에서 불이 나 50대 남성이 집안에서 숨졌다.

같은 달 9일에는 충남 천안시에 위치한 아파트에서도 화재가 발생했으며, 18일에는 서울 강서구 방화동의 한 아파트에서도 불이 나 주민 95명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모두 지어진 지 20년이 넘은 노후 아파트이며 스프링클러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처럼 스크링클러 등의 초기 진압 장비가 없는 아파트에서 불이 났을 경우 빠른 화재 진압을 위해서는 소방차 ‘골든타임’ 확보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불법 주·정차 차량들로 인해 소방차가 화재 발생 지역에 제때 진입하지 못할 가능성이 여전히 높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017년 12월 충북 제천에 위치한 스포츠센터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해 사망자 29명 등 총 69명의 사상자가 나온 바 있다. 이 같은 참사의 원인 중 하나로 좁은 진입 도로에 불법 주·정차된 차량으로 인한 초기 인명구조 지연이 꼽혔다.

이후 2018년 소방차 출동로 확보를 위해 긴급출동을 방해하는 주·정차 차량에 대한 강제처분 및 손실보상 등을 명확히 하는 소방기본법 개정이 이뤄졌다.

개정된 소방기본법에 따르면, 소방대장 등은 소방활동을 위해 긴급하게 출동할 때 소방자동차의 통행과 소방 활동에 방해가 되는 주·정차 차량 등을 제거하거나 이동시킬 수 있다.

또한 종전에는 화재진압·구조 등 소방에 필요한 활동을 위한 처분으로 손실을 입은 자에 대한 구체적 손실보상 절차가 없었지만 법 개정으로 인해 소방이라는 공공필요에 의해 재산권을 제한할 경우 이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실질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지난해 8월14일 대구 동구 괴전동 일대에서 열린 재난 현장 신속 출동 및 원활한 소방 활동 전개를 위한 불법 주·정차 강제처분 훈련에서 소방대원이 소방 용수시설 앞 불법 주차된 차량 창문을 깨트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해 8월14일 대구 동구 괴전동 일대에서 열린 재난 현장 신속 출동 및 원활한 소방 활동 전개를 위한 불법 주·정차 강제처분 훈련에서 소방대원이 소방 용수시설 앞 불법 주차된 차량 창문을 깨트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 5년 간 주차차량 강제처분 사례 총 4건 뿐

하지만 법 개정이 이뤄진 이후 5년 간 소방차 긴급출동 시 방해가 되는 주차차량에 대한 실제 강제처분 사례는 전국에서 4건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불법 주·정차 차량에 대한 강제처분 강화훈련이 2022년에는 4095회, 2023년에는 5346회나 실시됐지만, 현장에는 제대로 적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

현장에서 강제처분 집행이 이뤄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로는 집행 이후 겪을 민·형사 소송과 불이익에 대한 우려 등을 들 수 있다.

국립소방연구원이 2020년 4월22일부터 5월15일까지 현장 소방공무원 1만45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강제처분 제도의 필요성에 대해 소방공무원의 91.6%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 중 ‘매우 필요하다’는 답변은 63.3%를 차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 소방공무원의 74.5%는 강제처분의 현장 적용이 ‘잘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 이유에 대해선 응답자의 42.5%가 ‘사후 처리 과정상 행정적‧절차적 부담’ 때문이라고 답했다. 강제처분 행위자에 대한 신분상 불이익을 우려하는 답변도 20.4%에 달했다.

구체적으로는 ▲불법 주·정차 등에 대해 강제처분 대상 차주의 민원제기에 대한 부담 ▲강제처분 사후 처리과정에서 소방대원 개인의 과실 등으로 밝혀져 구상권 청구 가능성에 대한 부담 ▲관련 증빙자료 준비 등 추가업무 부담 등이 꼽힌다.

이에 국회입법조사처는 ‘소방차 화재진압시 불법 주·정차 차량 강제처분제도의 한계와 향후 과제’ 보고서를 통해 강제처분을 장려하기 위한 방안으로 소방공무원에 대한 소송지원확대, 공무원 개인의 배상책임 제한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북 문경시 신기동 육가공업체에서 지난달 31일 저녁 화재가 발생해 4층 건물 전체가 불타고 있다. <사진=뉴시스>
경북 문경시 신기동 육가공업체에서 지난달 31일 저녁 화재가 발생해 4층 건물 전체가 불타고 있다. <사진=뉴시스>

◆ 강제처분 필요성에 대한 국민 이해 절실

그러나 제도 개선보다 중요한 것은 강제처분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의 이해와 적극적인 협조일 것이다.

지난달 31일 경북 문경시의 육가공 공장에서 화재를 진압하다가 건물 내에 고립됐던 구조대원 2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 같은 안타까운 사고에 정가는 물론 시민사회에서 애도의 목소리가 확산됐다.

이 처럼 소방공무원들은 공동체 구성원들을 지키기 위해 오늘도 목숨을 걸고 불길 속으로 뛰어들고 있다.

소방공무원 업무는 수 많은 스트레스와 체력적 한계에 직면함은 물론 수시로 동료를 잃는 슬픔을 마주해야 하는 일이다.

이들이 적어도 불법 주·정차 차량과 관련된 우려는 하지 않도록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돼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공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