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철 산불:부주의 人災→생명의 숲 지키는 ‘경각심’

공공뉴스=김소영 기자 # 지난 설 연휴, 시골에 있는 친정집에 내려갔을 때 눈살이 찌푸려지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앞집 할머님께서 집 마당에다가 쓰레기를 태우는 것을 본 일입니다. 탄내가 심하고 재가 날려서 숨쉬기 힘들었는데, 무엇보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서 산불로 번지진 않을까 걱정이 컸습니다. 제가 신고하려고 했더니 친정 엄마는 혹시라도 싸움이 날까 봐 말리셨습니다. 원래 시골에서는 다 저렇게 한다면서요. 도시에서는 종량제 봉투를 사서 쓰레기를 버리는 게 당연한 일인데, 시골에서는 아직도 쓰레기를 태워서 처리하는 관습이 남아있나 봅니다. 바람이 많이 부는 3월이 됐는데, 그 할머님이 아직도 그렇게 쓰레기를 태우고 계실지 걱정이 큽니다. (여·44·경상북도 안동시)

지난해 4월2일 오후 화재가 발생한 서울 종로구 인왕산에서 산림청 헬기가 화재 진화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지난해 4월2일 오후 화재가 발생한 서울 종로구 인왕산에서 산림청 헬기가 화재 진화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강한 바람이 불고 건조한 봄철을 맞아 산불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올해는 ‘선거가 있는 짝수의 해에 대형산불이 많이 발생한다’는 소위 ‘산불 징크스’에 해당되는 해인 만큼 관계 기관이 산불 예방을 위한 총력 대응에 나선 상황이다.

무엇보다 산불의 원인이 되는 잘못된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농촌의 경우 고령화로 인해 ‘쓰레기 혹은 영농부산물을 수거하는 것보다 소각하는게 편하다‘는 인식이 만연해 있는데, 이런 관습이 최근 10년 간 산불의 주요 원인이 됐기 때문이다.

산불은 이처럼 사람에 의해 일어나는 재난인 인재(人災)인 만큼, 우리 모두가 관심을 기울인다면 올해는 ‘산불 징크스’를 극복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 2024년, ‘산불 징크스’의 해

11일 산림당국에 따르면, 전날(10일) 충북 지역 곳곳에서 크고 작은 산불이 발생해 당국이 진화에 나섰다.

이날 낮 충북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 야산에서 불이나 20여분 만에 진화됐으며 같은 날 오후 옥천군 동이면의 한 야산에서도 불이 났다. 당국은 인근에서 주민이 쓰레기를 소각하던 중 불이 번진 것으로 보고 화재 원인을 조사 중이다. 

마른 낙엽 등이 쌓여있고 새순이 돋기 시작하는 3월에는 작은 불도 큰 산불로 이어질 위험성이 높다.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 간 산불은 한 해 평균 567건 발생했으며, 이로 인해 여의도 면적(290ha)의 14배인 4004ha의 산림이 소실됐다.

이 중 3월에는 연간 산불의 25%인 141건이 발생하였고, 이로 인해 전체 산불 피해면적의 절반을 넘어서는 2347ha(59%)가 불에 타 사라졌다.

특히 올해는 ‘선거가 있는 짝수의 해에 대형산불이 많이 발생한다’는 일명 ‘산불 징크스’에 해당되는 해이기 때문에 관계당국의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산불 징크스’는 제15대 총선이 있던 1996년부터 시작됐다. 그해 4월 강원도 고성군에서 산불이 발생해 3800ha 가량의 산림을 불태우고 180여명의 이재민을 발생시켰다.

이후 1998년부터 2007년까지 30ha이상의 피해가 발생했던 총 48건의 대형산불 중 73%(35건)가 공교롭게도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가 있던 짝수의 해에 집중됐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던 2018년에는 강원 삼척, 고성 등에서 산불이 이어져 그해 4월15일까지 430여㏊의 산림이 소실됐다. 20대 대선이 있던 2022년 봄에는 강원, 경북 동해안에서 산불이 연이어 발생했다.

이같은 ‘선거철 짝수해 산불 징크스’로 인해 이달 8일 강원도 영동지역에서는 무탈한 봄을 위한 대관령 산신제까지 열렸다.

산신제 참석자들은 강원도 전역에 산불 등의 재해가 발생하지 않기를 기원하며 대관령 성황제전에 축수를 드렸다.

지난해 3월16일 경북 상주시의 한 야산에서 산불이 발생해 소방대원들이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산림청>
지난해 3월16일 경북 상주시의 한 야산에서 산불이 발생해 소방대원들이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산림청>

# 잘못된 관행, 큰 산불로 이어져

정부 역시 봄철 극한 산불을 대비하기 위한 관계 기관 합동훈련 등 만반의 준비에 나선 상황이다.

산림청은 지난달 28일 대구시 군위군과 전남 곡성군 일대에서 봄철 산불재난에 대비해 산불진화헬기의 합동 진화훈련을 실시했다.

같은 달 29일에는 산불을 대비해 행정안전부, 국방부, 문화재청, 기상청, 지방자치단체, 한국전력공사 등이 참여한 합동 산불 진화 도상훈련 역시 실시했다. 

물론 이러한 진화훈련도 중요하지만, 그러나 무엇보다 산불 발생의 사전 차단에 주력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산림청에 따르면, 2014년부터 10년 간 산불의 주 원인은 입산자 실화(186건, 33%)가 1위를 차지했다. 또 쓰레기 소각(71건, 13%), 논·밭두렁 소각(68건, 12%)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올해 정부는 산불 발생 원인 2위에 해당되는 쓰레기 소각 문제 관리에 집중하고 있다.  

농촌 고령화에 따라 쓰레기 혹은 영농부산물을 수거하는 것보다 소각하는게 편하다는 인식이 만연해, 이런 행위가 산불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 까닭이다. 

실제로 이달 3일 충북 청주시의 한 야산 인근에서 한 주민이 쓰레기를 소각하다가 불씨가 산으로 번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산림청이 진화 인력 100여명을 투입한 끝에 불길이 잡혔고, 더 큰 피해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쓰레기를 함부로 태우는 잘못된 관행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로 번지는 만큼 정부는 불법 소각행위를 막기 위한 홍보 및 계도에 힘을 쏟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올해부터 전국 시·군 농업기술센터에서 고령 농업인 거주 비중이 높은 지역을 찾아 영농부산물 수거·파쇄 후 퇴비화하는 영농부산물 마을별 순회 파쇄지원단을 운영한다. 

또한 산림청은 산림 특별사법경찰관, 공무원 등이 일몰 전·후 불법 소각행위에 대한 집중 순찰에 나섰다. 17개 시·도에서는 지역별 담당 공무원이 마을회관 등을 찾아 불법 소각행위 금지를 직접 홍보·계도하기로 했다.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 산불 징크스, 관심 기울여 극복 가능

징크스(Jinx)란 단어는 고대 그리스에서 길흉화복을 점치는 마술에 쓰이던 새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이후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운명적인 일을 뜻하는 단어가 됐다. 

징크스는 일종의 미신이며, 논리적 인과관계보다는 우연이 낳은 결과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선거가 있는 짝수의 해에 대형산불이 많이 발생한다’는 ‘산불 징크스’ 역시 우리의 지나친 의미 부여로 인해 탄생한 속설일 터.

하지만 징크스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악재의 원인을 추측하고, 더 큰 화를 예방하기 위한 인간 나름의 노력으로도 볼 수 있다.

우리는 징크스의 존재로 인해 행동을 더욱 조심할 수 있게 되고 혹시 모를 사고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게 된다. 징크스가 일종의 경고등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를 단순한 미신이나 비과학적인 믿음으로 치부하기 보다 안전을 한 번 더 점검하는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 

최근 10년간 산불의 주 원인은 입산자 실화, 쓰레기 소각, 논·밭두렁 소각 등 인간의 잘못된 행동이었다. 이는 우리가 보다 주의를 기울이면 사전에 막을 수 있는 문제들이기도 하다.

올해는 ‘산불 징크스’가 있는 해이지만, 국민 모두가 신경을 쏟는다면 이런 징크스를 깨뜨리는 것 역시 가능하다는 의미다. 

산불 피해가 발생해 잿빛으로 변한 숲이 복원되기까지는 30년, 생태계 복원까지는 자그마치 100년이라는 시간과 큰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순간의 방심으로 산림을 잃어버리는 일을 반복해왔다.  

다음 세대에 물려줘야 할 귀중한 자산인 ‘생명의 숲’. 푸른 나무와 형형색색의 꽃, 새소리가 가득한 자연을 이제라도 경각심을 가지고 지켜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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