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한부모가족 양육비 선지급제 추진
채무 불이행자 명단공개 절차 등 간소화
法, 양육비 미지급 사건 중 첫 실형 선고
사적문제 아닌 사회적 과제란 지적 나와

공공뉴스=김소영 기자 최근 이혼한 뒤 자녀의 양육비를 주지 않는 ‘양육비 미지급 부모’ 문제가 재차 화두로 부상했다. 

이혼 후 양육비를 주지 않는 ‘나쁜 부모’가 처음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정부가 양육비 선지급제 추진 방안과 관련해 공식 논의에 나서는 등 해당 문제와 관련해 우리 사회가 변화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까닭이다.

양육비 미지급 문제가 사적 영역의 채무나 개인간 채무 문제와는 다르게 취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에서 보다 실효성 있는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 정부, ‘양육비 선지급제 추진’ 논의

29일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주재로 전날(28일) 열린 제3차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한부모가족 양육비 선지급제 추진방안’이 논의됐다.

양육비 선지급제란 이혼 후 홀로 아이를 키우는 한부모 가정에 미지급된 양육비를 국가가 먼저 지급해주고, 비양육자로부터 나중에 받아내는 제도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정부는 현행 ‘한시적 양육비 긴급지원’ 제도가 양육자와 자녀의 생존권을 지키기에는 불충분하다는 현장의 지적에 따라 그 지급 범위를 확대하기로 했다.

현행 ‘한시적 양육비 긴급지원’ 제도는 양육에 어려움을 겪는 중위소득 75% 이하의 한부모가족에게 최대 1년간 자녀 1인당 월 20만원의 양육비를 제공한다. 

양육비 선지급제가 시행된다면 그 지원 대상이 더 넓어지게 된다. 양육비 채권을 가진 중위소득 100% 이하의 한부모 가구라면, 자녀가 만 18세가 될 때까지 자녀 1인당 매달 20만원을 지원받게 되는 것.

국가 차원에서 선지급한 양육비는 비양육자에게 청구된다. 고지서를 받고도 양육비를 내지 않는다면, 정부 차원에서 강제 징수 절차에 착수한다.

정부는 이를 위해 채무자의 동의 없이도 금융정보를 포함한 소득·재산 조사가 가능하도록 법률 개정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이외에도 양육비 채무 불이행자 명단공개, 양육비 채무 불이행자 운전면허정지 등의 제재조치 절차도 간소화된다.

여가부는 양육비 선지급제 근거 규정 마련을 위한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의 조속한 입법을 추진할 예정이다.

이에 해당 개정안이 국회 입법 절차라는 관문을 원활히 통과할 수 있도록 정치권이 관심을 쏟아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양육비 채무 불이행자 제재조치 절차 간소화. <자료제공=여성가족부>
양육비 채무 불이행자 제재조치 절차 간소화. <자료제공=여성가족부>

◆ 한부모 가구 경제적 위험, 아동 빈곤으로 이어져

‘한부모가족 양육비 선지급제’의 추진 배경은 홀로 생계와 자녀양육을 책임지는 한부모 가정의 경제적 어려움을 덜기 위함이다.

2021년 여가부의 한부모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18세 이하 자녀를 양육하는 한부모가구는 35.5만 가구에 달한다. 

이 중 비양육자에게 양육비를 청구할 수 있는 ‘양육비 채권’을 보유한 가구는 6.5만 가구(이혼·미혼 가구의 21.3%)이며, 이 중 채권이 있으나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경우는 1.7만 가구다.

또한 한부모 가구의 월 평균 소득은 월 평균 소득은 245.3만원으로, 전체가구 대비 58.8% 수준에 불과하다.

이같은 가족 해체 상황 속에서 부모가 겪고 있는 사회적·경제적 위험에 아동 역시 빈곤, 정서적 학대, 방임 등에 그대로 노출될 우려가 크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1년부터 양육비 채무자에 대해 제재조치를 도입했지만 실효성이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제재조치 처분을 하기 위해서는 법원을 통한 이행명령, 감치명령 등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고, 감치명령까지 2~4년이 소요되며 감치 인용률도 낮은 까닭이다. 

감치란 법원 명령을 위반한 이를 재판부 직권으로 구치소 등에 가둬 두는 제재를 의미한다. 양육비를 지급해야 하는 이가 감치 명령을 받고도 1년 내에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았을 때 그제야 비로소 형사고소가 가능하다.

이달 27일에는 양육비를 주지 않는 이른바 ‘나쁜 부모’에게 처음으로 실형이 선고되기도 했다. 

인천지법 형사8단독 재판부는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40대 A씨의 선고 공판에서 징역 3개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A씨는 2014년 4월 이혼한 뒤 자녀 2명에게 지급해야 할 양육비 9600여 만원을 지급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다. 

이에 A씨는 심장 수술을 받는 등 건강이 좋지 않아 경제적으로 어려웠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2022년 7월 법원의 감치명령을 받고도 1년 안에 밀린 양육비를 주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양육비 선지급제 도입 후 변화된 모습. <자료제공=여성가족부>
양육비 선지급제 도입 후 변화된 모습. <자료제공=여성가족부>

◆ 양육비 미지급 사건에 첫 실형 선고

재판부는 양형 이유와 관련해 “전 배우자인 피해자는 이행 명령 청구와 강제집행 등 모든 방법을 동원했는데도 양육비를 받지 못했다”며 “피고인은 미성년 자녀들과 전 배우자에게 장기간 회복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양육비 미지급 사건 중 실형이 선고된 것은 A씨의 사례가 처음이다.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해 행정제재를 넘어 형사처벌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양육비 이행법이 개정된 2021년 7월부터다.

이번 판결 이후 한국여성변호사회는 ‘법원의 실형 선고가 매우 고무적’이라며 환영의 뜻을 표했다.

한국여성변호사회는 “이혼 후 비양육자의 양육비 채무는 최우선적으로 변제돼야 하는 채무”라며 “적시·정기적으로 지급될 경우에만 양육비 본래의 의미와 가치가 실현될 수 있으므로, 사적 영역의 채무나 개인간 채무 문제와 달리 취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특히 악의적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한 행정적·사법적 제재를 보완‧강화할 필요성이 시급한 시점에서 이번 법원의 실형선고는 매우 고무적”이라고 부연했다.

또한 한국여성변호사회는 미성년 자녀의 생존권을 적극 보호하고, 향후 동종 범죄를 억제하기 위해 악의적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한 법적제재의 강도는 계속 높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처럼 시대가 바뀌며 사회 일각에서는 양육비 미지급 문제에 대해 ‘사적 영역의 문제가 아닌 국가가 적극 개입해야 할 사회적 과제’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비양육 부모로부터 외면당하는 아동의 생존권 보장을 위해 국가적 차원의 체계적 지원이 시급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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