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자녀 양육비 미지급자 신상공개 사이트
대법, 4일 사이트 운영자에 명예 훼손 유죄 판결
구본창 대표, 제도 맹점 지적하며 안타까움 토로
‘자녀 생존권 vs 사적 제재’ 韓 사회에 던진 질문

공공뉴스=김수연 기자 이혼한 뒤 자녀의 양육비를 주지 않는 이들의 신상을 공개하는 사이트 ‘배드파더스(Bad Fathers)’의 운영자가 명예훼손 혐의로 최종 유죄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은 해당 운영자가 신상공개를 통해 양육비 지급 의무에 대한 여론 형성에는 기여했지만, 신상공개는 사적 제재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판결 이후 사이트 운영자는 양육비 문제와 관련된 현행 제도의 맹점을 지적하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미지급자가 양육비를 주지 않기로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지급하지 않을 수 있는 상황에서 양육자들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

양육비 채무 이행률이 지난해 기준 50%를 밑돌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대법원 판결이 우리 사회에 무거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지난 2020년 1월 구본창 배드파더스 대표가 양육비 관련법 통과를 촉구하는 피켓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양육비해결총연합회 제공>
지난 2020년 1월 구본창 배드파더스 대표가 양육비 관련법 통과를 촉구하는 피켓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양육비해결총연합회 제공>

◆ 배드파더스 운영자, 명예훼손 유죄 판결

5일 ‘배드파더스’의 운영자인 구본창(61)씨가 대법원에서 명예훼손 유죄 판결을 받은 사실이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배드파더스란 이혼한 뒤 자녀의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들의 신상을 온라인에 공개하는 인터넷 사이트다. 2018년 7월 개설됐으며 부모들의 이름과 얼굴 사진, 직장까지 공개하며 양육비 지급을 압박했다. 

해당 사이트는 양육비 미지급 부모 문제를 공론화하며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고, 논쟁이 이어지자 2021년 7월 ‘양육비 이행법’ 개정까지 이뤄졌다.    

하지만 같은 해 신상이 공개된 5명이 자신의 명예가 훼손됐다며 구씨를 고소했고, 검찰은 2019년 5월 그를 벌금 300만원에 약식기소했다. 약식기소는 범죄사실이 경미해 피고인 출석 없이 재판을 진행하는 것이다.

1심 재판부는 구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수원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이창열)는 2020년 1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구씨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내렸다.

당시 1심 재판부는 “양육비 미지급은 결국 자녀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행위로 단순한 금전 채무 불이행과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수의 부모와 자녀들이 양육비를 지급받지 못함으로 인해 고통받는 상황에 문제를 제기하고 양육비 지급을 촉구하는 것이 주된 목적으로, 그 주요 동기 내지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구씨는 항소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2021년 12월, 2심 재판부는 구씨의 행위가 ‘사적 제재’로 현행법에 어긋난다며,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벌금 100만원의 선고를 유예했다.

선고유예란 비교적 가벼운 범죄에 일정 기간 형의 선고를 보류했다가 면소(공소권이 사라져 기소되지 않음)된 것으로 간주하는 판결을 뜻한다. 

양육비 미지급 부모 신상공개 사이트 ‘배드파더스’의 운영자 구본창 씨가 지난 4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 벌금 100만원 선고유예 판결을 받은 후 입장을 말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양육비 미지급 부모 신상공개 사이트 ‘배드파더스’의 운영자 구본창 씨가 지난 4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 벌금 100만원 선고유예 판결을 받은 후 입장을 말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1심 무죄, 2심 유죄..이유는?

2심 재판부는 “양육비 지급과 관련한 문제는 개인 간의 채권·채무가 아닌 공적 관심 사안인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사인이 양육비 미지급자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차원을 달리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적 제재가 제한 없이 허용되면 개인의 사생활이나 인격권을 침해할 수 있다”며 “이 사건 신상정보에는 신원을 특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얼굴 사진을 비롯해 세부적인 직장명까지 포함돼 있는데, 과연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이런 정보가 필요한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대법원 판단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양육비 지급 의무에 대한 여론 형성에는 기여했지만, 신상공개는 사적 제재에 가깝다는 것.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전날(4일) 구씨에게 벌금 100만원의 선고를 유예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배드파더스에 대해 “결과적으로 양육비 미지급 문제라는 공적 관심 사안에 관한 사회의 여론 형성이나 공개토론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러나 이 사이트의 주된 목적은 양육비 미지급자의 신상정보를 일반인에게 공개함으로써 인격권 및 명예를 훼손하고 수치심을 느끼게 해 의무 이행을 간접적으로 강제하려는 취지로서 사적 제재 수단의 일환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이트를 통해 신상정보가 공개된 데에는 피해자들이 양육비를 제때 지급하지 않은 측면도 일부 있을 수 있지만, 피해자들은 공적 인물이라거나 자신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 등을 수인해야 하는 공직자와 같다고 보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또한 대법원은 특정인의 양육비 미지급 사실 자체는 공적 관심사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 자녀 생존권 vs 사적 제재 ‘딜레마’

이날 대법원 판결 직후 취재진을 만난 구씨는 양육비 지급과 관련된 현행 제도의 허점을 지적하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구씨는 “현행법은 변호사 상담 5분만 받으면 미지급자들이 양육비를 주지 않을 수 있게 돼 있다”며 “양육비 미지급자가 양육비를 주지 않기로 작정하면 얼마든지 안 줄 수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소송을 해도 (양육비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현행법이 양육비를 주지 않을 수 있게 돼 있는 상황에서 양육자들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이냐”고 토로했다.

또한 구씨는 여성가족부 양육비 미지급자 명단 공개 제도의 실효성이 낮다고도 지적했다. 얼굴 사진을 제외한 명단 공개로는 미지급자의 신상이 특정되지 않아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것.

여가부에 따르면, 양육비 채무 이행률은 정부의 제재조치 시행 이후 점차 높아지는 추세다. 양육비 이행률은 2021년 36.6%, 2022년 39.8%, 지난해 9월 기준 42.4%를 기록했지만 그러나 여전히 50%를 밑돌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가 발을 디디고 있는 현실은 복잡하고, 때로는 법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변하곤 한다. 이에 따라 모든 법과 제도에는 허점이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같은 법의 맹점을 사적 제재가 메꾸는 것이 정당한가’라는 질문에는 쉽게 답을 내리기 어려운 것도 사실.

정부는 이번 판결의 딜레마를 직시하고,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보다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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