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보다 아버지를 증오했다” 공장 전진하며 결국 6급장애 판정
1986년 28회 사법시험 합격 법조인 길..노무현 영향 인권 변호사로
2006년 열린우리당 정치인 첫 발, 혹독한 검증 거쳐 경기도지사까지
‘억강부약’ 내 건 전투형 노무현의 20대 대통령 출사표..대세론 ‘주목’ 

[공공뉴스=강현우 기자] 오는 2022년 3월 치러질 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제1야당 국민의힘까지 차기 대권을 노리는 대선 예비후보들이 연일 치열한 접전을 펼치고 있다. 정권재창출과 정권교체라는 지상 최대의 과제를 놓고 ‘숙명의 일전’을 벌일 수 밖에 없는 여‧야는 상호 견제도 치열하지만 못지않게 대선가도에 뛰어든 여‧야 후보군의 정책전과 네거티브전도 일지감치 과열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특히 내년 대선에는 제1야당 국민의힘 대권주자로 집권여당의 전직 검찰총장과 감사원장이 합류해 시들했던 국민들의 정치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상황. 이에 <공공뉴스>는 20대 대선에 출사표를 던진 여‧야 대선후보들의 면면을 살펴보도록 한다. 

[공공뉴스=강현우 기자]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현재 여권의 가장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로 손꼽히고 있다. 지난 1964년 경북 안동의 화전민 마을에서 태어난 이 지사는 중‧고등학교를 모두 검정고시로 마치고 중앙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후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로 법조계에 발을 내디딘 입지전적 인물. 5남4녀 중 일곱째로 태어난 그는 어린시절 가난한 집안형편에 초등학교를 마친 직후 경기도 성남시로 이사, 상대원 공단에서 소년공으로 일하게 됐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 7월1일 온라인을 통해 제20대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 7월1일 온라인을 통해 제20대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가난보다 아버지를 증오했던 청년..개혁 정치지도자로 ‘우뚝’

당시 이 지사는 공장일 대신 학교를 다니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반대, 결국 ‘가난보다 아버지를 더 증오했던’ 시절이었다. 

염산과 황동을 다루는 목걸이 공장을 시작으로 여러 공장을 전전하던 이 지사는 글러브 공장에서 프레스기에 왼쪽 손목 관절이 으깨지는 골절을 입게 됐고 이로 인해 6급장애 판정을 받게 됐다. 

이로 인해 제2국민역 판정을 받아 병역이 면제됐고 종종 이 지사의 병역문제가 도마위에 오를때마다 그는 굽은 왼팔을 공개해야만 했다. 

암울한 어린시절을 보낸 이 지사였지만 중학교 검정고시를 합격하며 점차 자신감을 갖기 시작, 고등학교 과정 역시 검정고시로 통과한 뒤 1982년 중앙대학교 법학과에 진학했다. 

대학 입학금과 등록금 면제는 물론 매월 일정액의 생활비를 지원받는 조건으로 대학에 진학한 그는 1986년 28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본격적인 법조인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1988년 사법연수원생 시절 당시 노무현 변호사의 강연에 감명을 받은 이 지사는 곧장 변호사 활동에 뛰어들었다. 당시 그의 사법연수원 성적은 지방권 판사 임용 내지는 상위건 검사 임용이 가능한 수준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는 이를 거부하고 변호사의 길을 선택한 것. 이후 노동운동이나 인권과 관련된 변호 활동을 위주로 했으나 변호사로서의 이재명은 평범한 삶을 이어왔다. 

1995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그는 본격적인 시민운동가로 변신을 하게 된다. 이후 2002년 분당아파트 특혜분양 사건, 2004년 성남시 공공의료원 설립 주민발의 조례 등의 사건을 거치며 점차 이 지사는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경기도 성남시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던 그는 2006년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에 입당해 정치인으로서의 첫발을 내딛게 된다. 당시 지방선거에서 그는 당시 한나라당 이대엽 후보에게 패하며 낙선의 고배를 마시게 된다. 

이후 2년 뒤인 2008년 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선거구에 공천을 신청했지만 당시 조성준 후보에 밀려 공천에 탈락한 직후 당시 통합민주당이 약세였던 성남시 분당구 갑 지역에 전략 공천을 받아 나서게 됐다. 

하지만 이 지사는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이었던 한나라당의 고흥길 후보에 밀려 한 번 더 낙선의 아픈 경험을 하게 된다. 이후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경기도 성남시장 선거에 출마해 세 번째 선거만에 정치적 성과를 거두게 된다. 

당시 51.2%의 득표율로 당선된 그는 2014년 치러진 지방선거에서는 55.1%의 득표율로 재선 성남시장이 된다. 서울 강남권과 함께 보수정당의 강세지역으로 분류되던 분당구에서도 높은 득표율을 얻어 새누리당 신영수 후보를 제쳤다. 이 지사는 성남시장 재직 시절 재정건전화에 착수해 이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점차 개혁적 정치지도자의 이미지를 정착시켜왔다. 

30일 오후 6.2지방선거를 2일 앞두고 민주당의 수도권격전지중 한곳인 이재명 성남시장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정동영 선대위원장이 다시 성남시 수정구에 위치한 중앙시장을 찾아 지원유세를 가졌다. 이 자리에는 조성준,김태년 전국회의원,김선임,박창순 시의원(비례)후보등이 함께 자리했다 한편,정동영 위원장은
이재명 지사는 지난 2010년 세번째 도전만에 민선 경기도 성남시장에 당선된다. 사진은 2010년 5월 30일 당시 민주당의 수도권 주요 격전지 중 한곳으로 손 꼽혔던 성남시장 선거전에 정동영 당시 선대위원장 등 주요 인사들이 지원유세에 나서고 있는 장면. <사진=뉴시스>

◆ 성남시장 거쳐 경기도지사까지..혹독한 '검증의 시간' 겪어 

19대 대선 이후 이 지사는 차기 대권주자로 급부상하며 정가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사이다’라는 세간의 평가와 달리 ‘포풀리즘’이라는 정치공세에 시달려 온 그는 집권여당내 뚜렷한 자신의 세력도 구축하지 못했지만 꾸준한 지지율을 기록하며 중앙정치무대에 진입하고 있었던 것. 

급기야 2018년 3월 성남시장직을 사퇴하고 곧장 7대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 선거에 나섰다. 당시 야권에서는 자유한국당의 남경필 전 의원이 대항마로 나섰지만 그는 넉넉히 앞선 득표율로 경기도지사에 당선됐다. 

하지만 선거과정에서 혹독한 검증을 거치며 차기 대선에서 멀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섞인 평가가 나오는 등 이 지사로서는 말 그대로 치열한 선거를 치러냈다. 

이 지사는 20201년 7월1일 “억강부약-강한자를 누르고 약한자를 도와줌-정치를 하겠다”라며 공식 대선출마 선언을 하고 본격적으로 20대 대통령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그는 젊은 진보계열과 장애인 및 저소득가구 등 사회소외계층으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다. 또한 민주당 내 비문, 진보성향 지지자들의 호감도 역시 높다. 

성남시장 재직 이후 경기도지사를 지내며 굳건한 기본 지지율을 확보한 여권내 확실한 대선주자로 손꼽혀 왔다. 특히 지난 재보궐 선거 패배 이후 그동안 거리감이 있었던 일부 친문 진영과의 거리감도 많이 줄어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기에 국민의힘 지지율이 바닥을 칠 즈음에는 거꾸로 이 지사 지지율이 상승하는 모양새를 보이며 일찌감치 ‘이재명 대세론’을 굳히는 듯 보였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 8월 5일 서울 여의도 ‘열린캠프’에서 열린 ‘성희롱·성폭력 예방 교육’에서 인사말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 8월 5일 서울 여의도 ‘열린캠프’에서 열린 ‘성희롱·성폭력 예방 교육’에서 인사말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20대 대통령선거 출사표 던진 전투형 노무현의 ‘억강부약’ 通할까

대선후보 경선이 시작되면서 험악한 네거티브전이 펼쳐지며 잠시 주춤했던 이 지사의 지지율은 ‘네거티브 종식’을 선언하며 점차 회복세를 보여주고 있다. 

험난하고 고달팠던 삶의 여정을 딛고 ‘서민들의 아픔을 함께 느끼는 정치인’이라는 인식을 굳히며 진보진영은 물론 보수층에서도 나름 고른 지지를 얻고 있는 이재명 경기지사. 

‘전투형 노무현’ ‘사이다’라는 긍적적인 평가와 ‘한국판 두테르테’ ‘찢/찢재명’이라는 얄궂은 평가를 나란히 받고 있는 이 지사가 대세론을 이어가며 2023 대선 본 궤도에 진입할지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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