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소작농의 아들에서 자력으로 ‘스타 검사’까지
‘모래시계 검사’, ‘막말 의원’ 혹은 ‘무대홍’으로 기억돼
‘반값 아파트 법’, ‘강성 귀족 노조 방지 3법’ 등 발의
대선을 향한 또 한 번의 도전, 이번엔 결실을 맺을까

[공공뉴스=정혜경 기자] 2022년 3월 치러질 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제1야당 국민의힘까지 차기 대권을 노리는 대선 예비후보들이 연일 치열한 접전을 펼치고 있다. 정권재창출과 정권교체라는 지상 최대의 과제를 놓고 ‘숙명의 일전’을 벌일 수 밖에 없는 여‧야는 상호 견제도 치열하지만 못지않게 대선가도에 뛰어든 여‧야 후보군의 정책전과 네거티브전도 일찌감치 과열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특히 내년 대선에는 제1야당 국민의힘 대권주자로 집권여당의 전직 검찰총장과 감사원장이 합류해 시들했던 국민들의 정치적 관심을 다시 모으고 있기도 하다. 이에 본지는 오는 20대 대선에 출사표를 던진 여‧야 대선후보들의 면면을 살펴보도록 한다. 

국민의힘 대권 주자 홍준표 의원은 1953년 경상남도 창녕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소작농이었고 어머니는 문맹이었다. 집안 사정이 어려웠던 탓에 국민학교 시절 다섯 번이나 전학을 다닐 정도였다.

그럼에도 학교 성적이 뛰어났던 홍준표는 ‘대구에서 중학교를 다녀야겠다’고 부모님을 설득, 공납금 6년 치를 면제받는 장학생으로 대구시 영남중·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과로 진학했다.

그는 당초 ‘의사’라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경북대학교 의대에 진학하려 했지만 결국 학비와 생활비가 들지 않는 육군사관학교에 지원해 최종 합격 통지까지 받았다.

하지만 당시 자신의 아버지가 시장에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도 항변하지 못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결국 그의 아버지는 경찰서로 연행되며 고생한 끝에 누명을 벗었지만 홍 의원은 이때 경찰의 횡포에 시달리는 자신의 아버지를 보고 ‘순경을 이기려면 순경보다 더 높은 검사를 해야겠다’며 자신의 진로를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대구·경북 합동토론회에서 리허설 중인 홍준표 후보 <사진=뉴시스>

◆ 가난했던 소작농의 아들에서 충직한 검사가 되다

대학 졸업 후 사법고시에 매진한 그는 수차례 고배를 마신 뛰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를 마치고 청주지방검찰청에 임관한 뒤 초임 검사 시절부터 소신 있는 검사로 이름을 알렸다. 1988년 서울지방검찰청 남부지청 특수부 검사로 부임한 뒤에는 군부 정권 비리를 집중 수사했다. 

하지만 당시 5공 실세들까지 수사에 포함되자 청와대와 검찰 수뇌부는 사건 종결을 압박했고 수사를 강행한 홍 의원은 결국 형사부로 좌천 돼 1991년 광주지검 강력부 강력계 검사로 부임한다.

광주지검 시절에 국제 PJ파 수사에 착수, 일본 야쿠자와 연대하는 것을 포착, 이들을 일망타진하며 그 성과를 인정받아 이듬해인 1992년 서울지방검찰청 강력부 검사로 돌아온다. 

서울지검 강력부에서 그는 파키스탄인 폭력조직 ‘주비파’ 두목 외 13명 체포, 제6공화국 ‘황태자’로 불리던 박철언 전 정무장관 등 권력실세들을 구속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당시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이른바 ‘슬롯머신 사건’은 이내 드라마 ‘모래시계’의 작품 소재가 돼 홍 의원은 이때부터 ‘모래시계 검사’라는 애칭을 얻게 된다.

이처럼 성역 없는 수사를 강행한 그는 결국 검찰 내에서 고립되고, 좌천이 이어지자 1995년 마침내 사표를 제출하고 변호사 개업에 나섰다.   

검사시절 정의로운 이미지로 국민들에게 각인되어 방송 출연도 잦았던 홍준표는 그 인지도에 힘입어 정계의 러브콜을 받게 된다. 여ㆍ야 양당제안을 받게된 그는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직접 통화를 한 뒤 여당이었던 신한국당에 입당, 1996년 서울 송파 갑 지역에 신한국당 총선후보로 나서 제15대 국회의원으로 여의도 정가에 입성한다.  

하지만 1999년 3월, 선거법 위반으로 국회의원 직을 상실하게 되자 대법원 판결 전 의원직을 자진사퇴한다. 당시 피선거권을 박탈당한 그는 2000년 광복절 특사로 사면돼 이듬해인 2001년 실시된 서울시 동대문구 을 보궐선거에 당선돼 정계복귀에 성공한다.

이후 그는 김대중 대통령의 3남 김홍걸 의원의 미국 은행 입출금 내역 공개를 통해 검찰의 수사를 촉발했고 이는 김대중 정권의 레임덕을 불러온 ‘최규선 게이트’로 이어졌다.

대구 중구 서문시장을 찾아 지지자들에게 인사말을 하는 홍준표 후보<사진=뉴시스>

◆ 국회의원에서 당 대표, 도지사, 대선후보가 되기까지

2004년 실시된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3선고지에 오른 홍 의원은 ‘보수정당의 몇 안 되는 서울 다선 의원’으로 주목받게 된다. 당시 그가 발의했던 법안 중 주목받았던 안으로는 ‘국적법 개정안’과 ‘토지임대부 분양주택 공급 특별법(반값 아파트 법)’을 들 수 있다.

특히 ‘이중국적자는 병역의무를 마치기 전까지 한국 국적을 버리지 못한다’는 ‘국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며 세간의 눈총을 받아왔던 이중국적자들의 병멱면제가 불가능해지게 됐다. 그동안 미국이나 캐나다 등 속지주의를 채택한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이중국적을 유지하다가 병역 이행 연령이 되면 한국 국적을 포기해 병역을 면제받았던 행태를 보여왔던 것이 현실이었다. 

또한  ‘반값 아파트 법’이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토지임대부 분양주택 공급 특별법’은 법안 통과 후 토지임대부 주택이 서울 강남구 서초동과 자곡동 등에서 성공적으로 분양되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하지만 토지는 임대하고 건물만 분양함으로써 시중가보다 저렴하게 주택을 공급하는 내용의 이 법안은 건설업계 반발 등으로 인해 2015년 말 폐지된다.

지난 2006년 당시 한나라당 서울시장 예비경선에 나섰다가 오세훈 시장에 밀려 석패한 그는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 한나라당 경선에 출마했지만 4위라는 성적표를 받아들고 다시 한번 고배를 마신다. 

2008년 제18대 총선에 당선된 그는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돼 민생 경제 법안 입법을 주도한다. 2010년에는 사회취약계층의 대학 등록금을 차등 지급하는 ‘등록금 차등제’ 법안을 발의하고 한나라당 서민정책특별위원장을 맡기도 한다. 

2011년 7월 한나라당 전당대회서 14대 한나라당 대표에 당선됐다. 당시 한나라당 내부에서 이렇다 할 계파를 형성하지 못했던 홍 의원의 당대표 당선은 정계의 최대 이슈로 급부상하기도 했다.

2012년 치러진 19대 총선에서 낙선한 그는 당시 대선후보 출마로 사퇴한 김두관 경남도지사 후임 보궐선거에 새누리당 후보로 나서 범야권 단일후보였던 권영길 전 의원을 여유있게 제치고 지방자치단체장으로 정계에 복귀한다.  

그는 경남도지사 시절 1조 4천억 원에 달하는 경상남도의 채무를 행정·재정개혁만으로 청산했다. 경남은 전국 최초의 흑자 광역지자체가 됨과 동시에 항공우주 산업단지, 나노 산업단지, 해양 플랜트 산업단지를 유치하는 등의 성과를 올린다.

하지만 세상을 떠들썩 하게 만들었던 진주의료원 폐업과 무상급식 지원금 중단 등으로 인해 ‘홍준표 지사 퇴진을 위한’ 주민소환 운동이 벌어지는가 하면 국정조사까지 결정되며 비난 여론에 직면했지만 그럼에도 그는 소신 있게 자신의 뜻을 관철시킨다.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홍준표는 당내 경선 군소 후보들 중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율을 얻으며 제19대 대선 자유한국당 후보로 출마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에 석패한 그는 같은 해 자유한국당 대표로 선출된다. 2018년 6월 자유한국당이 지방선거에서 참패하자 홍 의원은 ‘선거참패’의 책임을 지고 당대표직을 사퇴한다. 이후 2020년 실시된 제21대 총선에서 그는 무소속으로 대구 수성구 을에 당선돼 다시 여의도로 돌아온다. 2021년 6월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의 복당결정으로 야당에 복귀한 뒤 지난 8월 17일에 대선 출마를 공식선언하고 20대 대선 국민의힘 경선가도에 합류했다.   

홍준표 후보가 '오징어 게임' 의상을 입은 지지자들과 기념촬영 중인 모습 <사진=뉴시스>

◆ ‘홍카콜라’를 넘어 ‘20대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긴 정치 세월 동안 소신 있는 법안 발의와 국익에 기초한 정책 수행을 보여준 홍준표. 하지만 국민들은 그의 업적보다 ‘막말’에 더 집중하곤 한다. 

2016년 당시 정의당 여영국 의원이 경남도 의회 앞에서 그의 사퇴를 요구하는 농성을 벌이자 홍준표는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라고 비난한다. 2021년 4월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윤석열과 이재명 대선 후보를 겨냥해 “조폭 리더십이 형님 리더십으로 미화되고, 양아치 리더십이 사이다 리더십으로 둔갑한다”는 글을 쓰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발언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난 피아를 안 가린다. 우리 측이라고 잘못된 거 덮어주고 그렇게 하지 않는다.”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는 발언은 쾌감을 주기도 하지만 정치인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기도 하다. 유권자들이 그의 공약을 기억하기보다 ‘센 말’을 소비하는데 그치기 때문.

‘무대홍(무조건 대통령은 홍준표)’, ‘홍카콜라(홍준표와 코카콜라의 합성어. 직설적인 언행이 청량음료처럼 시원하게 느껴진다는 의견에서 유래)’등의 유행어를 탄생시키며 2030의 표심을 잡고 있는 대권 주자 홍준표 의원. 또 다른 국민들은 그를 ‘모래시계 검사’, ‘막말 의원’으로 기억하기도 한다.

이제 국민들은 홍준표를 ‘제20대 대통령’으로 기억할 수 있을까? 며칠 앞으로 다가온 국민의힘 마지막 경선에 세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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