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역 난동’ 유가족, 피해자 실명 공개한 이유
정부, 치안 역량 강화 총력전..대대적 조직 개편
근본 원인 파악해 사회안전망 마련하란 지적도
“좋은어른이 되고 싶다” 무거운 책임 남은 사회

2023년은 국민을 불안감에 떨게 한 ‘이상동기 범죄’가 빈발했던 해다. 이상동기 범죄란 명확하지 않은 동기로 인해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폭력적 범죄를 의미한다. 흔히 ‘묻지마 범죄’로 불리기도 한다. 올해 신림동 칼부림·성폭행 사건, 서현역 흉기난동 등이 연달아 발생한 뒤 ‘온라인 살인예고’까지 속출하며 사회적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전문가들은 지난해에 비해 묻지마 범죄가 늘어난 이유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비대면 사회의 장기화를 지목한다. 묻지마 범죄 가해자들은 모두 고립된 상태에서 은둔해 왔다는 공통점을 지니는데, 코로나19가 이들의 소통 단절을 심화시켰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외로운 늑대형’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경찰은 최근 대대적인 ‘조직개편’ 카드까지 꺼내들었다. 또한 근본적 대책 마련 방안이 20여일 앞으로 다가온 국정감사에서 집중적으로 다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공공뉴스>는 ‘이상동기 범죄’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며 예방을 위한 미래를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註>

지난달 3일 경기도 분당 서현역 일대에서 발생한 흉기난동 사건으로 부상을 입어 치료를 받다 같은달 28일 세상을 떠난 고(故) 김혜빈씨. <사진=이기인 경기도의원 페이스북 화면 갈무리>
지난달 3일 경기도 분당 서현역 일대에서 발생한 흉기난동 사건으로 부상을 입어 치료를 받다 같은달 28일 세상을 떠난 고(故) 김혜빈씨. <사진=이기인 경기도의원 페이스북 화면 갈무리>

공공뉴스=김수연·김소영 기자 미대생 김혜빈(20)씨는 그날도 아르바이트를 위해 미술학원에 갔다. 혜빈씨는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기 위해 일해 온 성실한 학생이었다. 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길에 그는 갑작스럽게 인도로 달려든 차에 치였다. 이후 뇌사 상태에 빠진 혜빈씨는 치료를 받던 도중 지난달 28일 숨졌다.  

같은 시각, 동일한 차량에 치여 세상을 떠난 이가 있다. 바로 고(故) 이희남(65)씨다. 이씨의 남편은 KBS와의 인터뷰에서 “(아내는) 대학교 1학년 때 만난 제 첫사랑”이라며 “제 아내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내가 완전히 미쳐버렸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김혜빈씨와 이남희씨가 치인 차량은 바로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의 가해자 최원종이 몰던 차량이었다. 이들의 원통한 이야기는 어쩌면 내 부모, 내 아내, 내 친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사연이었고 또 사연일 것이다.

◆ 서현역 사건 유족, 딸 영정 공개한 이유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으로 희생된 김혜빈씨의 실명과 얼굴 사진은 유가족에 의해 지난달 29일 공개됐다. 유가족은 범인보다 희생자를 더 기억해줄 것을 호소했다. 

사건이 일어난 분당구 서현동이 지역구인 이기인 경기도의원은 이날 유족의 동의를 얻어 SNS에 김혜빈씨의 사진을 게재했다.

이 의원은 “유가족은 더 이상 혜빈이가 익명으로 알려지길 원하지 않는다”며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더 기억되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들어 이렇게 혜빈이의 빈소에서 직접 알린다”고 전했다.

김혜빈씨는 지난달 발생한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의 피의자 최원종(22)이 몰던 차량에 치여 뇌사 상태에 빠졌다. 이후 사고 발생 25일 만인 같은 달 28일 사망했다.

김혜빈씨의 사진 공개와 함께 그가 SNS에 올렸던 글이 알려지며 안타까움은 더욱 컸다.

이 의원에 따르면, 혜빈씨는 생전에 “고비가 있을 때마다 좋은 어른들이 있어준 것이 감사하다”며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좋은 어른이 되고 싶어서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는 글을 남겼다.  

이어 “그분들이 나에게 구원이었던 것처럼 어쩌면 나도 누군가에게 기적처럼 느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사람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윤희근 경찰청장이 지난 18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기자실에서 ‘경찰청 조직개편 추진, 일선현장 치안역량 강화’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희근 경찰청장이 지난 18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기자실에서 ‘경찰청 조직개편 추진, 일선현장 치안역량 강화’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정부, 치안역량 강화 총력전..잠재적 범죄자 잡을까

이상동기 범죄 피해자들의 사연이 알려지며 국민적 공분은 줄지 않고 있다. 이에 정부는 치안역량 강화를 위한 본격적인 대책 마련에 나섰다.

22일 경찰에 따르면, ‘묻지마 칼부림’ 등이 연이어 발생하자 경찰청은 최근 범죄예방과 대응 등 일선현장의 치안역량을 높이기 위해 조직 재편안을 발표했다.

이번 조직 개편에 따라 모든 경찰관서에 범죄예방과 대응을 총괄하는 ‘범죄예방대응과’가 신설된다.

또한 경찰 내부의 행정관리인력을 감축해 총 2900여명 가량이 치안현장으로 재배치될 예정이다. 감축된 인력은 국민일상의 평온을 지키기 위한 범죄예방 활동에 집중적으로 활용된다. 

경찰청은 감축된 관리인력을 활용, 전 시도청에 기동순찰대를 설치해 ▲다중밀집장소 ▲공원·둘레길 등 범죄취약지에 집중 배치한다는 방침이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이번 조직 개편의 핵심은 경찰조직을 범죄예방과 대응이라는 본질적 치안업무 중심으로 재편하고 현장의 대응역량을 극대화하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조직개편으로 경찰의 범죄예방·대응 기능이 강화되면서 국민 일상의 평온을 지켜가는 데 더욱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전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치안역량 강화 외에도 이상동기 범죄가 발생하는 근본적 원인을 파악해 잠재적 범죄자에 대한 사회 안전망을 사전에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백종우 경희대 의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지난달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연이은 이상동기 범죄의 근본적 원인으로 사회적 단절을 꼽았다.

백 교수는 “시민에 대한 무차별 테러로 보는 시각에서는 해외에서도 ‘외로운 늑대’라고 표현을 했지 않는가”라며 “고립된 위험한 개인으로 분석하는 시각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어딘가에서 고립되고 절망하는 사람이 늘고 있는 사회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이 아닌가”라고 진단했다.

또한 백 교수는 이 같은 사회구조 변화 외에 이상동기 범죄의 원인으로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활동의 증가를 지목했다. 올해 유달리 ‘묻지마 흉기난동’이 증가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백 교수는 “이번에 특히 피의자가 20~30대가 많고 (흉기난동) 예고글을 올린 청소년들도 많았다고 들었다”며 “이게 코로나 시기에 청소년·청년이 정신건강 측면에서 피해가 제일 컸다. 코로나는 지났는데 그동안 축적된 문제가 정신건강, 자살, 경제적 어려움이 폭발하는 걸 경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진행자가 ‘코로나19로 인해 소통이 단절돼 나타난 결과라는 말인가’라고 묻자, 백 교수는 “맞다”고 못박았다.

그러면서 “아무래도 이런 재난이 왔을 때 자원이 없는 사람들이 더 큰 타격을 받기 때문에, 젊은층이 더 타격을 받고 고립되고 어디선가 분노·절망을 감추고 있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역시 같은 달 YTN 라디오 ‘신율의 뉴스 정면승부’에서 이상동기 범죄가 코로나19와 밀접한 상관이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 교수는 “왜냐하면 장기간의 비대면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사회화되는 과정이 결핍된다”며 “여러 가지로 참고 있다가 대면 사회가 되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던 것들이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란 예견들은 다 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7월26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역 묻지마 칼부림 사건 현장 인근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추모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는 모습. <사진=뉴시스>
지난 7월26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역 묻지마 칼부림 사건 현장 인근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추모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는 모습. <사진=뉴시스>

◆ ‘좋은 어른’이 되고 싶었던 혜빈이, 그리고 어른들의 숙제

전문가들의 이 같은 지적에 정부가 고립 청년들에 대한 현황을 파악하고 체계적인 사회안전망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혜빈씨의 유족은 고인의 사진과 실명을 공개하며 가해자보다 피해자를 더 기억해달라고 당부했다. 이는 가해자에 대한 관심을 쏟기 보다, 세상을 떠난 피해자를 기리며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 마련에 힘써달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 사회에 남겨진 숙제는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어쩌면 나도 누군가에게 기적처럼 느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사람이 될 것 같다’던 혜빈이의 소박하지만 너무도 어려운 꿈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일 터.

좋은 어른이 되고 싶었고, 누군가에게 기적이 되고 싶었던 혜빈이는 좋지 못한 어른, 또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히는 사람 때문에 결국 너무 일찍 홀로 먼 길을 떠나게 됐다.

자극적인 ‘묻지마 범죄’ 가해자들의 서사보다 그저 너무 선한 우리 이웃이었던 피해자들의 억울한 희생이 헛되지 않게 정부 및 사회는 무거운 책임감을 잊어선 안될 것이다. 적어도 혜빈이가 그토록 되고 싶었던 ‘좋은 어른’으로 우리 스스로가 당당히 서기 위해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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