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그룹 오너 일가 사재 출연, 계열사 SBS 지분 매각 언급 無
산은 “약속 안지켜 유감”..금융당국도 “남의 뼈 깎는 방안” 압박
11일 결정 전 추가 자구안 제시 미지수..워크아웃 불발 가능성↑

공공뉴스=이민경 기자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개시 여부가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모습이다.

정부는 지난해 말 워크아웃을 신청한 태영건설의 경영 정상화 지원에 ‘대주주의 강도 높은 자구 노력’을 전제했지만, 그러나 태영건설 측이 최근 내놓은 자구안이 ‘맹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 

태영인더스트리 매각대금 지원, 에코비트·블루원 등 계열사 매각 등 내용이 담겼으나 정작 태영그룹 오너 일가의 사재 출연이나 핵심 계열사인 SBS 지분 매각 내용이 빠지면서 워크아웃 불발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주 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은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 자구안에 대해 “대단히 유감”이라고 지적하는 한편, 금융당국도 비판 목소리를 높이며 추가 자구안을 압박하고 있는 상태다. 다만, 태영 측이 추가 자구안을 내놓을 지는 미지수라는 평가다. 

서울 영등포구 태영건설 본사. <사진=뉴시스>
서울 영등포구 태영건설 본사. <사진=뉴시스>

◆금융당국, ‘11일 데드라인’ 추가 자구안 압박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5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서민금융지원 현장 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이 정도면 워크아웃 한번 해볼만 하다’는 판단이 들 수 있는 자구안을 빨리 제시해줬으면 하는 게 채권단의 바람”이라며 추가 자구안 필요성을 언급했다. 

김 위원장은 “워크아웃 속성상 밀고 당기기는 불가피하다”면서도 “워크아웃 출발의 기본점은 ‘대주주가 진정성 있게 기업을 살리려고 하는구나‘라는 믿음을 채권단이 갖는 것인데, 상호 간 신뢰 형성이 안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1월11일까지 날짜가 많이 남지 않았다”면서 ”양 당사자가 머리를 맞대고 협의를 해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전날(4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관련 “태영측이 워크아웃을 신청할 때 뼈를 갂는 자구 노력을 언급했는데, 채권단 입장에서 보면 남의 뼈를 깎는 노력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고 비판했다.

이 원장은 “협력업체, 채권자, 수분양자의 손실 최소화를 위해 지원하기로 한 기본적인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총수 재산 핵심인 TY홀딩스 지분을 지키는 데 쓰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또한 “심하게 얘기하면 태영건설 자구 계획이 아니라 오너 일가 자구 계획”이라며 “오너 일가는 자회사 매각 등으로 수천억원의 현금 유동자산이 있음에도 워크아웃 계획에는 단돈 1원도 포함되지 않았다. 바인딩한(구속력 있는) 형태로 공헌할 계획조차 포함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원장은 “오는 11일이 지나더라도 이슈를 끌고 갈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오산이다. 11일 어떻게든 이슈가 끝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왼쪽부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김주현 금융위원장. <사진=뉴시스>
(왼쪽부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김주현 금융위원장. <사진=뉴시스>

◆산은 “태영, 진정성 유감..채권단 동의 어려울 것”

앞서 지난 3일 태영건설은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서 열린 채권자 설명회에서 워크아웃 개시를 강력하게 요청했다. 

이날 설명회에는 91세 고령의 윤세영 태영그룹 창업회장이 직접 나와 “태영이 이대로 무너지면 협력업체에 큰 피해를 남기게 돼 줄도산을 피할 수 없다”며 워크아웃 승인을 눈물로 호소했다. 

그러나 태영 측이 제시한 자구안을 두고 ‘알맹이가 빠졌다’는 쓴소리가 이어졌다. 자구안에는 ▲태영인더스트리 매각대금 1549억원 지원 ▲에코비트 매각 추진 ▲블루원 지분 담보제공 및 매각 추진 ▲평택싸이로 지분 62.5% 담보제공 등 내용이 담긴 반면 오너 일가 사재출연과 SBS 지분 매각 등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는 점 때문이다. 

특히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은 채권자 설명회 이후 백브리핑에서 “태영건설 상황은 기본적으로 태영건설 및 대주주의 잘못된 경영 판단에서 비롯된 만큼 태영건설과 대주주가 책임 있는 자세와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데, 태영 측이 당초 약속한 자구 계획을 이행하지 않고 있는 것은 매우 유감”이라고 말했다.

태영 측은 산업은행과 워크아웃 관련 협의를 진행하며 앞선 네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그러나 태영그룹과 대주주는 당초 조건과 달리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대금 중 400억원만 태영건설에 지원했고, 블루원 지분을 담보로 한 자금은 TY홀딩스 재무를 갚는 데 활용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강 회장은 “네 가지 자구안 이행 확약과 채권단 설명회에서 이를 공표해주길 요청했으나, 태영그룹은 그저 열심히 노력하겠으니 도와달라고만 했다”면서 “채권단 75%가 이 자구안에 동의한다고 기대하기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평가했다. 

강석훈 KDB산업은행 회장. <사진=뉴시스>
강석훈 KDB산업은행 회장. <사진=뉴시스>

◆‘채권단 vs 태영’ 팽팽한 줄다기리..법정관리 가능성 고조

한편,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개시 여부는 11일 채권단협의회에서 결정된다. 워크아웃은 채권단 75%의 동의를 받아야만 시작되며, 부결 시 법원이 주도하는 법정관리(회생 절차)에 들어가게 된다.

이런 가운데 태영 측이 자구계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서 워크아웃 무산 가능성이 커지는 분위기다. 법정관리로 들어가면 협력업체는 물론 수분양자 등 연쇄 피해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현재 태영 측과 산업은행은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대금을 두고 상반된 해석을 내놓으며 갈등을 빚고 있다. 

태영그룹은 매각 대금 모두 태영건설에 지원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산업은행은 “워크아웃 기본 원칙과 절차를 이해하지 못하는 잘못된 내용”이라며 태영건설에 지원하기로 한 1549억원 가운데 890억원을 즉시 투입할 것을 촉구했다. 

TY홀딩스는 산업은행에 약속한 자회사인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대금 1549억원 중 잔액 259억원이 3일자로 태영건설에 지원됐다고 밝혔다. TY홀딩스에 청구된 연대채무 중 리테일 채권 상환에 890억원, 나머지 259억원이 태영건설에 지원됐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산업은행은 태영그룹 주장은 경영권 유지를 목적으로 TY홀딩스의 연대보증 채무에 사용한 자금을 태영건설 지원으로 왜곡하는 것이라고 봤다. 

산업은행은 “실사 및 기업개선계획 검토 기간에 회사가 정상적으로 영업을 영위하기 위해 상당한 유동성 확보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대주주의 책임 있는 부족 자금 조달 방안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채권단들은 워크아웃 개시에 동의하기 매우 어렵다고 판단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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