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졌지만 잘 싸웠다” 지구촌 곳곳 누빈 총수들·오너家 3·4세 경영 시대
高물가, 부실시공, 금융사고까지 서민들 ‘불안’..전경련 위상 찾기 시동

공공뉴스=이민경·정진영 기자 숨 가쁘게 달려온 계묘년(癸卯年)이 어느덧 저물고 갑진년(甲辰年) 새해가 밝아오고 있다. 올 한 해 경제·산업계는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러웠고 우여곡절이 많았다. 고(高)물가 장기화로 서민 경제가 더욱 팍팍해진 가운데 꺼지지 않는 중대재해 불씨와 아파트 부실시공 논란, 금융권 내부통제 부실 문제 등은 서민들의 불안감을 더욱 가중시켰다. 이런 가운데 재계는 오너 3·4세를 경영 일선에 내세우면서 세대교체를 단행, 오너경영을 통해 안팎에서 불거진 위기 상황을 극복하는 한편 내년에도 경기 불확실성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자 ‘책임 경영’을 펼치겠다는 취지다.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농단’ 사태로 위상이 추락한 전국경제인연합회는 55년 만에 한국경제인협회로 이름을 바꿨고, 탈퇴했던 삼성·SK·현대자동차·LG 등 4대 그룹도 복귀했다. 국민에게 인정받는 경제단체가 되기 위해 쇄신에 나선 상태다. 특히 국내 주요 그룹 총수들에게는 유난히 바쁜 1년이었다.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부산 유치를 위해 지구촌 곳곳을 쉴틈 없이 발로 뛰어다니며 전력을 다했지만, 사우디아라비아의 막대한 자본력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그래도 폭넓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성과를 거두는 등 총수들의 활약은 빛났다는 평가다. 이처럼 2023년에도 다양한 이슈가 부각된 가운데 <공공뉴스>는 올 한 해 경제·산업계 현황을 결산해 봤다. <편집자 註>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이 지난 6월20일(현지시간) 파리 이시레물리노에서 열린 제172차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진행된 2030 세계박람회 경쟁 프레젠테이션(PT)에 참석해 있다. <사진=뉴시스, 공동취재>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이 지난 6월20일(현지시간) 파리 이시레물리노에서 열린 제172차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진행된 2030 세계박람회 경쟁 프레젠테이션(PT)에 참석해 있다. <사진=뉴시스, 공동취재>

# 부산엑스포 ‘홍보맨’ 자처..세계 누빈 총수들

민관 합동으로 엑스포유치위원회가 꾸려진 지난해 7월부터 국내 주요 그룹 총수과 기업인들은 전 세계를 돌며 유치전 총력을 다했다. 

재계는 부산 엑스포유치위원회 민간 위원장을 맡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필두로 ‘홍보맨’을 자처하며 18개월 동안 지구 197바퀴를 넘게 뛰었다.

삼성과 SK, 현대차, LG, 롯데 등 5대 그룹이 전체 교섭 활동의 89.6%를 담당했으며 교섭 활동을 위해 개최한 회의의 절반 이상인 52%에 총수 및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참석했다. 

이들은 175개국 3000여명의 고위급 인사들과 만났고, 전세계 고위급을 만나기 위해 개최한 회의만 1645회에 달한다. 

이처럼 정재계가 ‘코리아 원팀(Korea One Team)’으로 모여 총력전을 펼쳤지만, 2030엑스포 부산 유치는 끝내 불발로 돌아갔다. 한국은 마지막까지 대역전극을 노렸으나 ‘오일머니’ 자본력을 앞세운 사우디아라비아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엑스포 유치전 과정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재계 총수들은 개인 인맥까지 동원하며 표심 얻기에 사활을 걸어 더욱 아쉬움이 남았다. 

비록 엑스포 유치는 불발됐지만 재계의 활약상은 대한민국의 국가 경쟁력을 한단계 더 끌어올렸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강화했다는 측면에서는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왼쪽부터)최윤정 SK바이오팜 사업개발본부장,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 전무 겸 롯데바이오로직스 글로벌전략실장,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전략본부장. <사진제공=각사>
(왼쪽부터)최윤정 SK바이오팜 사업개발본부장,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 전무 겸 롯데바이오로직스 글로벌전략실장,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전략본부장. <사진제공=각사>

# 오너가(家) 3·4세 앞으로 앞으로

올해 연말 정기인사에서는 오너가(家) 3·4세들의 전진배치가 눈에 띈다. 3040세대 젊은 오너 기업인들이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세대교체’에 나선 것.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장녀 최윤정(34) SK바이오팜 전략투자팀장은 사업개발본부장(부사장)으로 승진하며 그룹 최연소 임원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아들인 신유열(38) 롯데케미칼 상무도 전무로 승진해 롯데지주로 자리를 옮기고 그룹의 미래 먹거리 발굴을 주도하는 중책을 맡았다. 또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3남인 김동선(34) 한화갤러리아 전무는 파이브가이즈 도입 등 성과를 인정받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HD현대그룹은 정기선(41) HD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본격적인 3세 경영 개막을 알렸다는 평가다. 정 부회장은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으로, 내년 CES 2024에서 기조연설에 나서는 등 글로벌 보폭을 넓히고 있다.

이웅열 코오롱 명예회장의 장남인 이규호(39) 코오롱모빌리티 사장도 지주사 대표이사 부회장에 올랐다. 이밖에 박세창(48) 금호건설 부회장과 정대현(46) 삼표그룹 부회장, 홍정국(41) BGF리테일 부회장 등이 3040대에 부회장 직함을 달았다.

GS그룹은 올해 정기 임원 인사를 통해 ‘홍’자로 끝나는 오너가 4세들을 대거 전면에 내세웠다. 허윤홍(44) 사장은 GS건설 대표로 등판했고, GS엠비즈 대표인 허철홍(44) 전무는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또 허주홍(40) GS칼텍스 기초화학 부문장과 허치홍(40) GS리테일 MD본부장은 각각 전무에 올랐다.

GS그룹 신성장 동력 발굴과 투자전략을 지휘해 온 허서홍(46) ㈜GS 미래사업팀장(부사장)은 GS리테일 경영전략서비스유닛장을 맡았다.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을 비롯한 내빈들이 지난 9월19일 서울 여의도 FKI타워 앞에서 열린 ‘한국경제인협회 표지석 제막식’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현준 효성 회장, 류 회장,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 김창범 한경협 상근부회장. <사진제공=한국경제인협회>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을 비롯한 내빈들이 지난 9월19일 서울 여의도 FKI타워 앞에서 열린 ‘한국경제인협회 표지석 제막식’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현준 효성 회장, 류 회장,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 김창범 한경협 상근부회장. <사진제공=한국경제인협회>

# 한경협 새출발 전경련, ‘재계 맏형’ 위상 찾기 시동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9월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로 간판을 바꿔달았다. 한때 ‘재계 맏형’으로 불린 전경련이지만, 2016년 박근혜 정부 시절 기업들을 상대로 K스포츠·미르재단 후원금 모금 사실이 드러나 논란을 빚으며 위상이 급격히 추락한 뒤 1968년부터 55년간 사용해 온 명칭을 버리고 새 출발을 선언한 것.

‘국정농단 사태’ 이후 전경유착 창구라는 불명예를 얻은 가운데 이름을 바꾸고 지위와 신뢰도 회복에 나선 것이다.

한경협은 ‘싱크탱크형 경제단체’를 표방, 류진 풍산그룹 회장을 신임 회장으로 추대했다. 특히 한경협 산하 연구단체인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 통합으로 한경연 회원사로 있던 삼성과 SK, 현대차, LG 등 국내 4대 그룹도 한경협에 복귀했다. 4대그룹은 국정농단 사건을 계기로 전경련을 탈퇴한 바 있다.

류 회장은 최근 서울 영등포구 FKI타워에서 ‘한경협 출범 100일 성과와 미래’ 기자간담회를 열고 “올해 한경연 합병과 함께 글로벌 싱크탱크 도약에 집중했다”며 “새해에는 우리 경제가 G7 수준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한경협이 신뢰받는 싱크탱크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 고물가에 서민 허리 ‘휘청’..슈링크플레이션 꼼수 ‘눈살’

고물가 장기화는 올해 서민 경제에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켰다. 월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4~4.7%를 기록했고, 대표 서민 음식으로 여겨졌던 김밥과 짜장면 등 주요 외식 메뉴 가격 등도 치솟았다.

서민들의 시름이 깊어지자 정부는 외식업계와 가공식품 기업들에게 가격 인상 자제 협조를 요청하며 현재까지도 물가 안정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이다.

식품업계는 고물가, 원재료비 상승 등 악조건 속에서도 이 같은 정부 기조에 발맞추기 위해 당초 세웠던 가격 인상 계획 등을 철회하기도 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가격은 그대로 둔 채 용량만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이라는 꼼수 가격 인상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고, 정부는 슈링크플레이션과 같은 소비자 눈속임을 방지하기 위해 용량 변경 사실 표기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서울 동대문구 한 주택재건축현장 모습. 사진은 기사와 무관. <사진=뉴시스>
서울 동대문구 한 주택재건축현장 모습. 사진은 기사와 무관. <사진=뉴시스>

# 부실시공·중대재해 말많고 탈많은 건설업계  

건설업계는 올 한해 유난히 다사다난했다. 부실시공과 중대재해 이슈로 얼룩지면서 국민적 불신이 극에 달했다.

인천 검단에서 시작된 철근 누락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해 정부는 전수조사에 나서는 한편, ‘건설 카르텔 혁파 방안’ 등 고강도 대책을 내놨다.

또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이나 10억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는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기업 대표가 처음으로 실형 선고를 받고 법정 구속되는 사례가 나왔지만, 그럼에도 중대재해 사고는 곳곳에서 끊이지 않았다.

내년부터는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도 중대재해법이 확대 적용될 예정이지만, 정부가 2년 유예 카드를 또다시 만지작거리면서 노동계는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 끊이지 않는 금융사고..구멍난 내부통제 골머리

금융권은 올해도 내부통제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대규모 횡령, 주가조작, 고객 동의 없는 증권계좌 부당 개설 등 임직원 비위 사건이 끊이지 않으면서다.

주식시장에서 잇단 주가조작 사태가 발생하자 검찰과 금융감독원, 공정거래위원회는 증권사들에게 대한 전방위 조사에 착수했다. 또 금감원은 은행권 금융사고 예방을 위한 내부통제 혁신방안 개선안을 발표하고, 준법경영 문화 정착을 위한 노력을 당부했다.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금융회사 지배구조법)은 금융사와 임원의 내부통제 의무 강화가 골자다. 특히 각종 금융사고에 대해 임원별 내부통제 책임을 부여하는 ‘책무구조도’가 내년 하반기 도입될 예정이다.

금융사에서 조직적이고 장기간, 반복적으로 광범위한 문제가 발생할 경우에는 내부통제 시스템적 실패에 대해 대표이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 배에 올라탄 닭..HMM 인수 후보 하림

올해 인수합병(M&A) 시장 최대어로 꼽힌 HMM(옛 현대상선) 인수전은 하림그룹의 승리로 끝났다. 하림 측은 인수 희망가로 6조4000억원을 제시, 경쟁자였던 동원그룹보다 1000억원 안팎으로 앞서면서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계약 대상은 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가 보유한 HMM 지분 57.9%(3억9879만156주)다. 매각 측은 연내 주식매매계약(SPA)을 맺고, 기업결합 심사 등을 거쳐 내년 상반기 인수 작업을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하림그룹은 국내 최대 해운사인 HMM 인수 9부 능선을 넘은 상태다. HMM 인수에 성공하면 국내 1위 벌크선사 팬오션과 함께 국내 1위이자 세계 8위 컨테이너선사 HMM까지 모두 거느리게 된다. 재계 서열도 현재 27위에서 13위로 껑충 뛴다.

다만 기업 규모가 HMM이 더 커 ‘승자의 저주’ 우려도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고, 또 HMM 노동조합은 하림 측이 유보금을 노리고 HMM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하림 측은 “HMM 유보금은 현재 업계 불황에 대비하고 미래 경쟁력을 키우는데 최우선적으로 사용돼야 한다”며 유보금을 타 용도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공식 입장을 밝힌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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