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최태원 등 18개월간 지구 197바퀴..막판까지 동분서주 행보
2030 엑스포 부산 유치 결국 불발..경재계 “국가 위상 높이는 성과”

공공뉴스=이민경 기자 정재계가 ‘코리아 원팀(Korea One Team)’으로 모여 총력전을 펼친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EXPO) 유치가 무산됐다. 한국은 마지막까지 대역전극을 노렸으나 ‘오일머니’ 자본력을 앞세운 사우디아라비아의 벽을 끝내 넘어서지는 못했다. 

재계는 부산 엑스포유치위원회 민간 위원장을 맡은 ‘재계 맏형’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필두로 18개월 동안 정부와 발을 맞추면서 지구 197바퀴를 넘게 뛰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재계 총수들이 개인 인맥까지 동원하는 ‘세일즈 외교’로 막판 표심을 얻는데 집중했다는 점에서 더욱 아쉬움이 남는 결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졌지만 잘 싸웠다는 평가다. 이번 유치전을 통해 대한민국의 국가 경쟁력을 한단계 더 끌어올렸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강화했다는 측면에서는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지난 6월21일(현지시간) 파리 인근 이시레물리노 팔레 데 스포 로베로 샤팡티에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30 부산세계박람회 공식 리셉션에서 최 회장의 목발을 들고 대화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지난 6월21일(현지시간) 파리 인근 이시레물리노 팔레 데 스포 로베로 샤팡티에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30 부산세계박람회 공식 리셉션에서 최 회장의 목발을 들고 대화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2030 엑스포 부산 유치 불발..경제계 “졌지만 잘 싸웠다”

국제박람회기구(BIE)는 2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팔레 데 콩그레’에서 제173차 총회를 열고 2030 엑스포 개최지 선정 1차 투표를 진행, 이날 사우디 리야드가 119표를 받아 1위를 차지했다. 한국 부산은 2위(29표), 3위는 이탈리아 로마(17표)는 3위를 기록했다. 

사우디는 참여국의 3분의 2 이상의 표를 얻어 2차 투표 없이 2030년 엑스포 개최지로 선정됐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개최지 선정 직후 논평을 통해 “국민들의 단합된 유치 노력은 대한민국의 국가경쟁력을 한단계 끌어올렸을 뿐 아니라 한국 산업의 글로벌 지평도 확대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해 마지막까지 총력을 다한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부산시, 국회, 기업인 그리고 국민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전했다. 

또한 “부산엑스포가 제안한 문제 해결 플랫폼은 ‘각 나라별 당면과제를 맞춤형으로 풀어보겠다’는 인식에서 출발해 세계인들의 많은 지지를 얻었다”면서 “경제계는 정상들의 긍정적 피드백과 세계인들의 자발적인 아이디어를 계속 발전시켜 한국과 지구촌이 공동 변영하는 모델을 만들겠다”라고 밝혔다. 

한국경제인연합회는 “전 국가적 노력과 염원에도 불구하고 2030년 부산 세계박람회 유치가 좌절된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며 “비록 이번에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준비 과정에서 정부는 물론 경제계, 국민 모두가 원팀이 돼 보여준 노력과 열정은 대한민국이 하나로 뭉치게 된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엑스포 유치 노력 과정에서 이뤄진 전 세계 다양한 국가들과의 교류 역시, 향후 한국 경제의 신시장 개척의 교두보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우리나라는 엑스포 유치 후발주자라는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그동안 정부와 기업들이 원팀으로 합심해 전 세계를 누비며 부산 유치전에 총력을 기울여 왔다”며 “비록 우리가 바랏던 2030 부산 엑스포 유치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유치 활동은 경제·문화적으로 발전된 대한민국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고 아쉬움을 달랬다. 

경총은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많은 정상들과 만남을 통해 폭넓은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등 국가의 위상을 높이는 큰 성과가 있었다”며 “앞으로 경영계는 정부·기업·국민이 한마음으로 뭉쳐 유치 활동에 전념한 값진 경험과 정신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경제주체로서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사진=공공뉴스DB>
<사진=공공뉴스DB>

◆지구 197바퀴..막판까지 동분서주 발로 뛴 총수들

민관 합동으로 엑스포유치위원회가 꾸려진 지난해 7월부터 재계는 동분서주 움직였다. 그동안 175개국 3000여명의 고위급 인사들과 만난 기업인들은 이른바 ‘홍보맨’을 자처하고 세계 무대를 직접 발로 뛰었다. 

올림픽, 월드컵과 더불어 ‘3대 국제 행사’로 꼽히는 엑스포 유치를 위해 한마음 한뜻으로 유치전에 총력전을 펼친 것. 

대한상공회의소 등에 따르면, 국내 주요 대기업 12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내 기업인들이 전세계 고위급을 만나기 위해 개최한 회의는 1645회에 달한다. 

삼성과 SK, 현대차, LG, 롯데 등 5대 그룹이 전체 교섭 활동의 89.6%를 담당했으며 교섭 활동을 위해 개최한 회의의 절반 이상인 52%에 총수 및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참석했다. 

SK그룹은 최 회장이 엑스포유치위원회 민간 위원장을 맡은 직후 그룹 내 부회장급 최고경영진이 전면 포진한 ‘WE(World Expo)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하기도 했다. 

당시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이 전체 팀장 겸 아시아 담당을, 유정준 SK E&S 부회장이 현장지원팀장, 장동현 SK㈜ 부회장이 기획홍보팀장, 박정호 SK스퀘어 부회장이 미주·일본·서유럽 담당,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이 중동·아프리카·대양주·동유럽 담당을 각각 맡았다.

최 회장은 가장 많은 나라인 180여개국 고위급 인사들과 1100회에 달하는 면담을 했다. 6월 ‘4차 프레젠테이션’ 당시에는 ’목발 투혼’을 보여줬으며, 최근에는 촉박한 일정에 시간 확보를 위해 이노코미석에 탑승하는 열정으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최 회장은 개최지 선정일이 다가오면서 해외에서 거의 모든 시간을 보냈다. 윤 대통령의 영국 방문 경제사절단에도 동행하지 않고 파리에 ‘메종 드 부산(부산의 집)’이라는 공간을 마련한 최 회장은 이달 13일부터 23일까지 중남미와 유럽 등 7개국을 수시로 오가며 막판 강행군을 펼쳤다.

재계 1위 삼성의 활약도 대단했다. 삼성전자는 부산 전역 디지털프라자에 2030 부산엑스포 유치를 응원하는 광고를 선보였고, 파리를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응원 광고를 집중적으로 실시했다. 계열사 경영진들도 직접 발로 뛰며 지지 호소에 역량을 총동원했다. 

약 일주일 간의 유럽 출장을 마친 뒤 27일 귀국한 이 회장의 감기 투혼도 빛났다. 이날 공항에서 취재진과 만나 엑스포 유치전 분위기를 묻는 질문에 “다들 열심히 하고 계신다”라고 쉰 목소리로 짧게 말했다. 

이 회장은 윤 대통령 경제사절단에 동행,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를 잇달아 방문하며 엑스포 막판 유치 홍보에 힘을 보탰다.  

연초부터 아랍에미리트(UAE), 스위스, 일본, 중국 등을 방문한 이 회장은 현지에서 주요 인사들과 면담을 가졌고, 개최지 투표에서 ‘캐스팅 보트’ 역할로 평가받은 카리브해 연안국, 아프리카 국가 등 태평양도서국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기도 했다. 

(왼쪽부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3월17일 도쿄 게이단렌 회관에서 열린 한일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왼쪽부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3월17일 도쿄 게이단렌 회관에서 열린 한일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사업 기반 강화, 신규 비즈니스 기회 확보 성과

정 회장과 구 회장, 신 회장도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한 전방위 활동을 펼쳤다. 

정 회장은 2021년 8월 국내 대기업 중 가장 처음으로 엑스포유치 지원 전담 조직(TF)를 꾸리는 열정을 보였다. 20여차례 해외 출장 때마다 유치 지지를 요청했고, 마지막까지 파리에 머무르며 홍보전에 집중했다. 

또한 현대차그룹은 엑스포 부산 유치 기원 메시지를 담은 특별 제작 아트카 10대를 BIE 총회장 주변에 배치하는 특별한 홍보 마케팅도 벌였다.  

현대차그룹은 각국 BIE 회원국 정상 및 주요 인사들과 접촉해 부산 지지를 요청하는 과정에서 비즈니스와 사회공헌활동(CSR)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상호 협력을 추진하고 지속적인 관계를 구축하는 등 그룹의 사업 기반과 경쟁력을 강화하는 효과를 거뒀다고 자평했다. 

아울러 일부 저개발 국가에서는 현대차그룹이 보유한 첨단 기술과 미래 사업을 상세히 소개하는 등 그룹 인지도를 높이는 계기도 됐다는 설명이다. 동시에 다수 국가를 대상으로 고속철과 경전철 등 철도사업과 소형모듈원전(SMR) 신규 참여를 타진하는 등 신규 비즈니스 기회도 확보했다. 

LG는 케냐, 소말리아, 르완다 등을 집중 공략했다. 구 회장은 지난해 10월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와 만나 부산 엑스포 지지를 호소했고, 윤 대통령의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하며 유치 활동에도 전력을 다했다. 

이달 23일에는 ‘BIE 대표 초청 만찬’ 행사에서 파리 주재 BIE 대표단들을 상대로 부산엑스포 지지를 강조했다.

신 회장은 롯데그룹의 본거지가 부산이라는 점을 앞세우며 승부수를 띄웠다. 부산 지역 행사를 지원하고, 대통령 경제사절단 활동 이후에는 파리에서 BIE 회원국 주요 인사들과 만나 부산의 매력을 강조했다.  

이밖에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과 정기선 HD현대 부회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조현상 효성그룹 부회장 등도 부산 엑스포 유치를 밀착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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